방송음악 백년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와 봉선화 동요회

이장춘 2010. 1. 5. 03:28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찾는데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와 봉선화 동요회 

 

1947년 3월 1일 3.1절 특집 방송극에서

처음 불리기 시작한 이래 남과 북을 초월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국내, 외 동포들에게 사랑을 받는

 동요! 우리의 소원은 동요라기보다도 국민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남북이 넘나들며 함께 손잡고 소리 높여 부르고 다 같이

통일을 외칩니다. 이 노래가 처음 불려진지 60여년 !

지금도 통일은 우리민족의 염원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어린이 노래회도 전쟁이
격화되면서 다 사라졌습니다.  해방되면서 처음 선을
보인 것이 1945년 10월에 생긴 봉선화 동요 회였습니다.
 뒷날 공보부장관을 지내신 오재경선생님의 부인 신재덕 여사,
안병원선생님, 권길상선생님이 힘을 기울여 이끌고 나가시던
 봉선화 동요회는 방송국에   자주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 같이 하시던 신재덕 선생님은 이 동요회의 기초가
다져진 뒤 다른 두 선생님에게 물려 주셨습니다.)
 
 방송국에서는 해방된 후 1945년
10월부터 15분간의 어린이 시간을 편성하고
 1946년 10월부터는 30분간의 프로그램을 편성했습니다.
동요회가 하나밖에 없던 시절에 봉선화 동요 회는
방송국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안병원 선생님은 방송국의 한 식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1947년이 되면서 두 번째

맞는 3.1절에 특집방송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방송국 어린이시간 담당 배준호님은 안병원 선생님과

 얘기를나누었습니다.  25분간의 특집 동요극을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방송국사정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를 실천하기로 하고 열곡의 동요를 새로 쓰고 작곡해서
 동요와 함께 극을 만들어 방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작비도없고 글 쓰고 작곡하실 분을

 만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병원선생님의 선친
안석주선생님에게 글을 무료봉사로 쓰시도록
 부탁드리고 안병원선생님이 곡을 붙이기로 해서 

1947년 3.1절에 열곡의 노래와 극이 방송되었습니다. 

 다른 곡들은 그동안 많이 사라졌지만 우리의 소원이라고도

불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리고도 불리는 이 노래는 갈수록

 국민들의 사랑을받고 있습니다. 안병원선생님은 그 뒤에도 KBS어린이

합창단을지휘하시고 6.25때 부산피난시절에도 KBS와 같이 생활하시는 등

 방송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오셨습니다. 아래 사진은 부산 피난시절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하던때의 사진입니다. (이 합창단원 중에서

 뒷날 유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습니다, )

 

 

 

1.정민영, 2.송현식, 3.이희춘, 4.정명근, 5.윤여민,

6.노대흥 13.전영자, 14.정명화, 17-1.최승자, 20.떨똘이 모험 복남이,

22.이규도, 23. 안희복, 25.지휘 안병원 님입니다. 그때의 어린이 합창단

단원으로는 위분 외에도 이성호, 이여진, 김혜진, 박경원, 김기정, 김미라,

최희숙, 서옥자, 최애자, 조연자, 김성희, 김성애, 신유미,

서윤자, 이숙영님 등이 함께 했습니다.

 

 

안병원 선생님은 지금도 국내 또는 미국,

카나다 등지에서 공연을 하시는 등 활동을 하시고

계십니다. 성악가로 활동하는 박인수님은 안병원님의

 메제이기도 합니다. 다음 사진은 2006년 4월 21일

안병원선생님 출판기념회때 찍은 사진입니다.

 

 

 

 

안병원님은 KBS어린이 합창단 두번째
지휘자였고 1949년부터 1954년까지 6.25전쟁 전후
오랬동안 계셨습니다. 김규환님은 여덟번째 KBS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님으로 1969년부터 1971년 까지 계셨습니다. 두 분 모두 동요

작곡가이자 지도자  이셨습니다.  삶과 꿈 발행인 신갑순님은 봉선화

동요회 회원이셨습니다.  부인은 노선영님이고 박인수님은 동생

안희복님의 남편이지요, 최영섭님은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작곡가 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동요곡 제작 회상기 / 배준호님
 
 

 

 

 

이 노래가 불리기 시작 한 것은 1947년
3월 1일 오후 5시 반 어린이 시간부터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연유를 얘기하면 어린이사간을 어떻게 편성할
것인가 하고 궁리하다가 당시 유일한 어린이 동요회인 
봉선화 동요회를 이용해서 무엇인가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봉선화 동요회의 지도자인
안병원씨와 의논을 했다.  두 사람이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조금 모험일지는  모르지만   노래극을
만들어 봄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당장의 방송국사정으로는 원고료, 작사료, 작곡료등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뿐더러 반주가 피아노만으로 흥미롭지 못하니
 기왕이면 현악 4중주 정도로는  해야 되겠음으로
그에 따르는 편곡료 지불도 문제였다.
 
그러나 한번 모험을 해보자,
한번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의욕에서 안병원씨의 가친인 안석주씨께 무료봉사
해 주십사고 우리의 뜻을 말씀드리고 간청을 드려
원고 청탁을 했다. 이렇게 억지로 얻어낸 원고가
바로 우리의 소원이라는 25분짜리
노래극 원고였다.
 
다음은 작곡이 문제였다.
어차피 봉선화 동요 회 어린이들이 방송 할
것이니 안병원씨가 직접 작곡을 해 보겠다고 해서
작곡을 맞기고 반주 할 현악 4중주의 편곡은 봉선화 동요회의
 반주자인 권길상씨가 맡아서 편곡하기로 했다.
 
이렇게 의욕하나로 어린이 시간에
처음 시도해 본 노래극이 바로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가 나온 것이다. 노래 극중에 나오는 독창곡, 합창곡이
 모두 10여곡이나 되나 유독 이 노래만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방송국에서 만들기는 했어도 작사,
작곡을 위촉한 것도 아니요, 정식으로 작사료,
작곡료가 지불 된 것도 아니다.
…….이하 생략..........
 
 
 봉선화 동요회 회원명단
 

 

<1945년 10월 조직>
 

1.신갑순 2.장영신 3.김경순

4.안명자 5.오현주 6.정옥숙 7.박효숙

8.손동숙 9.홍성애 10.김혜원 11.김은수

12.최미연 13.김석남 14.김석인 15.손덕님

16.김순영 17.서일순 18.홍옥자 19.박순자

 20.박문희 21.김은숙 22.한정혜

 23.안영희

 

 

1949년 설날특집 방송을 마친 봉선화 동요회 기념사진입니다.
 

 

봉선화 동요회를 창설하셨던

신재덕님의 부군 오재경님은 뒷날 두번의

공보실장과 공보부 장관을 지내시며 남산방송촌 건립,

 KBS-TV방송을 창설하셨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우리 소원.mp3

 

우리 소원.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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