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 애국지사 박용신

이장춘 2009. 9. 21. 16:32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 애국지사 박용신
 
 
1942년 12월 8일!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을
벌리단 경성방송국 박용신 아나운서는
경찰에 끌려갔습니다.  제일먼저 끌려가 
제일 오랜 기간 예심을 받으며 죽음보다
더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감옥은 호텔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심기간은 그렇게 가혹했습니다.
1년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지냈습니디.
그리고 1943년 7월에야 기소되어 11월에
1심 형량 언도가 있었습니다.
 
1년 6개월의 형 언도가 있어 항고를
했고 상고심에서 형기는 6개월로 단축되었지만
그것은 명목상의 형기단축이고 실제로는  예심기간
합해서 2년 6개월을 유치장, 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해방되기 두달전에 풀려났고
해방된후  이승만박사가 돌아와  님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었습니다.  미군 사령관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경성전기 (한전의 전신) 으로  옮긴후 상무로
활동했으며  취체역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님이 독립운동을 한 박용신이라는
것을 몇 사람만 알았을뿐 사람둘은 잘 몰랐습니다.
그 얘기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님이 
 2005년 3.1절을 맞아 건국포장을 받아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강원도 홍천 (지금은 양평군이라고 함)에서
1916년 1월 25일에 태어난 박용신님은 경성 제1 고등
보통학교 (뒤날의  경기중·고) 를 거쳐 경성 법학 전문학교
( 지금의 서울대학교 법대)나와 1940년 8월 12일
그 유명하던  민재호아나운서와 함께 경성중앙
방송국에 들어 오셨습니다.
 
아나운서로 활동을 하던 님은
선배 송진근 아나운서, 양제현 편성원,
또  1년 후배인 손정봉 아나운서, 그리고 기술자들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여서  단파방송에 가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 기술자 들이 몰래 들은  내용과 본인이  직접들은  내용을 종합,
독립운동을 벌리던 인사들을 비롯해서 본인의  주변사람들에게
비밀리에 전달하면서 독립운동을 돕던중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지 못한체  1924년 12월 8일  경기도 경찰부
고등계형사들에게  채포되었습니다.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으로
아나운서들은 거의다 채포되어 오랜기간
갖가지 고문을 받으면서 고역을 겪은끝에 결국
풀려 났지만  박용신님을 비롯해서 송진근. 손정봉
세분이 징역형을 받으셨고  또 형량
미상인 분도 있습니다.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 해당자가
출소되면 또다시 그 운동을 벌려나갈 것을 우려한
일제는 미결기간을 형기에 산입시키지 않았음은 물론
어떻게 던지 조사기간을 늘려 감옥에서 오랜 기간을  보내도록
  간교한 술책을 썼고  면회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재판 방청도
 허용되지 않는 상태로   심지어 변호인의 변론도  어떤
명분으로던지 배제된 상태로 재판이 진행되었고
상고도 대부분 받아 들여지지 않고
기각되었습니다.
 
 
단파방송 연락운동에 참여 하셨던
유일한 생존자로 올해 연세 94세로 이제는 
 건강이 많이 쇄진 해 지셨다는 소식입니다. 은평구
 응암동에서  아드님이신 박상억님과 같이 하십니다.
내내 건강 하신가운데 행복 하심을 빕니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성명

박용신

생존기간 1916. 1. 25 ~ 2010. 5.28
출생지 경기 홍천
운동계열 국내항일
훈격(연도) 건국포장 (2005)
공적내용 1941년 경성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재직하고 있었다. 송진근 등과 함께 해외 단파방송을 비밀리에 청취하고 이를 녹취(錄取)하여 임시정부 소식과 구미외교위원부의 활동, 연합국의 승전, 광복군의 활약, 그리고 국제정세의 추이 등을 문서로 작성하여 송진우·김병로 등에게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1942년 12월 체포되어 1943년 11월 소위 보안법 및 형사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註·楊濟賢 제2회 訊問調書(京城地方法院:1943. 6. 24)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 제13권 314·550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878면 ·朝鮮日報(1964. 9. 20) ·한국방송인물지리지(김성호, 나남출판사, 2002) ·서대문형무소근현대사(김삼웅, 나남출판사, 2002) ·송건호 전집 2-한국근현대사 2(송건호, 한길사, 2002) ·韓國放送60年史(한국방송공사, 1987) 72∼73면 ·韓國放送70年史(한국방송공사, 1997) 163∼165면 ·韓國電氣通信100年(한국전기통신공사, 1985) 452∼453면 ·신동아(1988. 3월호) 589∼595면 ·愛山餘滴(李仁, 文善社, 1965) 237∼239면 ·단파방송연락운동(兪炳殷, kbs문화사업단, 1991) 33∼37면 ·나의 방송시절(成基錫) 64∼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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