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남산시절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7)-초기 중계방송-

이장춘 2009. 5. 9. 18:18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7)

 

-초기 중계방송-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 중계방송은

 1962년 3월 1일에 최초로 이루어졌다. 중계방송차를

도입 할 여력이 없던 방송국은 1957년에 이동방송용으로

들어와 포항에서 방송을 하고 있던 이동방송차를 개조해서

 TV중계방송차로 활용했다. 이 얘기는 당시 정동의 제2라디오에서

 근무하고 있던 정항구님이 텔레비전 개국을 전후해서 그 일에

직접 참여한 일이 있어 필자에게 일러준 것이다.

 

 

 

 

포항에서 옮겨온 중계방송 차는 순수

우리 기술진으로 배선 등의 설치가 이루어져

 큰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했다. 이때 비디오 배선은

 조찬길님이 맡았고, 오디오 배선은 정 항구님이 맡아

재작한 것으로 군 무전기를 연락용 링크로 활용하고

한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서 간이식으로 제작한

 중계방송 차였지만 개국 후 어려울 때

그 효용성은 컸다고 들었다.  

 

 

 

중계방송 차의 카메라가 가는 곳이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각종행사나 기념식

실황, 공연실황등도 중계 방송되는 일이 있었지만 스포츠

중계방송은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요즈음처럼 프로야구나 축구,

골프 등이 크게 발전하지 못하던 때라 프로 레슬링이나 권투 등은

 특별한 관심을 끓었다.  장충체육관에서 박치기왕 김 일이나 장 영철의 

프로레슬링이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거기에 눈과 귀를 기울였고  김 일이나

장 영철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통쾌함에 환호성을 올렸다. 국가적인

큰 행사나 각종 기념일, 그리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뒤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는 의례히 KBS-TV중계방송차가 움직였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첫 중계방송은 1962년 3월 21일에 있었던

 명동 국립극장 개관식으로 그날 저녁 7시반부터

 8시 45분까지 1시간 15분간의 중계방송 실시가 중계방송차로

실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TV 중계방송이었다. 그리고 같은 달 30일에는

역시 국립극장에서 있었던 제1회 대종상 시상식이 중계방송 되었고

 4월 19일에는 서울 운동장에서 있었던 두 번째 4.19기념식을 중계방송

했다.  5월 19일 시름대회 중계방송, 6월 12일에는 야구중계방송,

7월 15일 축구 중계방송, 8월 25일 농구중계방송을 실시

함으로서 현장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시청자들은 새로운 시대를 실감했다.

 

프로 레슬링을 비롯해서 각종

 대형 행사장으로 쓰였던 장충체육관이

 문을 연 것은 1963년 2월 1일로 이 개관식 역시

중계방송 되었고, 2월 27일 시민회관에서 있었던

정국수습 선서식도 중계방송 되었다.

 

 

1963년에 들어온 RCA 중계용 카메라

 

 

이해 9월 23일에 RCA의 TK35중계용

카메라가 들어와 중계기능은 한층 더 보완되어

 10월 15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나 11월에 있었던

 국회의원선거 개표방송이 잘 이루어 졌다. 그 뒤에 있었던

 전국체육대회나 국군의 날 에어쇼, 아폴로 발사광경 특히

 1969년 인류기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발사

에서 부터 귀환가지 생생한 모습을 VOA협조와 

동양방송의  협찬을 받아 중계방송한 일

등은 방송사에 길이 남는다. 

 

 

  

 이 밖에도 각종  대형 행사가 중계방송되고 

지구촌의  움직임도  중계방송을 통해서 직접

체험하게 됨으로서 텔레비전 방송과 함께하는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최초의 TV중계방송 차

 

 

 

송병현님 앨범에서 뽑은 최초의

TV 중계차 모습입니다.

 

 

 

 

TV에서 실시하는 간단한 이동 중계방송은 라디오에서 쓰던 FM카 위에

TV방송 카매라를 설치하고 이동방송을  했습니다. 초대 TV 아나운서실장이었던

 황우겸아나운서 앨범에서 뽑았습니다. FM카 위에 아슬 아슬하게 TV카메라를 설치하고

중계방송을 했으니 얼마나 위험했겠습니까. 그러다가 카메라가 전기줄에 걸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정항구, 이정오님등 그때 TV방송의 기술을

담당 했던 분들의 얘기를 듣기도 합니다.

 

 

최초 TV중계방송차의 내부시설

 

 

 

다음 TV중계방송 차는 1974년, 3월 10일 여의도 사옥을 건립할 때

 차관으로 들어온 최초의 칼라 중계방송차였습니다. 이 방송차는 칼라방송이

실시되기전 1970년대 중반부터 유용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오승룡님 자료로 본 최초 TV중계차의 여러 모습

 

 

1-홍대규, 2-김순길, 3-정상순. 4-김태욱, 5-오승룡, 6-최동철

7-Sports PD 8-박경환, 9-백흥기, 10-OOO, 11-이준호

 

 

 

남이섬에 녹화차

 

 

 

 

 

 

 

1-오승룡, 2-남학현;원주방송국장, 3-고재록, 4-최돈민 5-이정오

 

1-정천학, 2-조동근, 3-차종식, 4-이정오, 5-윤재덕, 6-김점식, 7-윤성현, 8-한백수, 9-오승룡

10-이원탁, 11-남학현(?),12-고재록 13-최돈민 14-이준호, 15-송영일, 16-Wagon운전기사

 

 

중계차내부

 

 

그리운 강남-1.wma

 

 

그리운 강남-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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