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남산시절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4 ) -TV초기 사람들-

이장춘 2009. 5. 6. 10:59

 

처음 구성된 KBS-TV방송요원

 국장 황기오, 편성과장 문시형, 제작과장 김 규,
기술과장 박능상, 서무과장 윤철중, 남산 송신소장 계수경.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4 )

 
방송시설과 함께 편성과 제작을 위한 준비도
함께 이루워졌다.   HLKZ에서 TV방송에 경험을 싸은 
최창봉이 방송문화 연구실장을 거쳐 MBC창설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KBS가 TV방송국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필수요원이어서 KBS-TV창설요원이 되어 힘을 기울였다.

최창봉은  HLKZ에서 스스로 프로그램을 연출 제작하고

1957년 6개월간의 미국연수를 거쳐 이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최창봉을 책임자로 구성된 TV프로덕션 준비실은
 HLKZ-TV에서 2년 이상의 TV제작 경험을 쌓은 분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1961년 10월 23일부터 자체 학습을 위한 쎄미나와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의 준비실
 구성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최덕수, 이기하, 유인목, 허규, 장종선,
정일몽, 김유성, 홍의연, 마종훈, 신면식 등.

 

  

이 분들은 오전 중에 세미나를 통해서
제작 테크닉을 재확인 하면서 오후에는 프로그램 포맷연구와
 방송자료 수집, 각종 디자인들을 준비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새로운 인원을 선발 할 준비도 했고 교재도 만들어야 했다.
11월 들어 각종 프로그램의 기본 포맷을 결정하고
개국특집과 기념행사 계획도 마련되었다.
 
11월 초에는 새로운 제작 요원이 선발되고
이들에 교육을 했다.  이때 선발된 제작요원은 훗날 방송계서
크게 활동한 사람들 홍두표, 이남섭, 강현두 신윤생, 황정태, 김용구,
김재형등이다. 홍두표는 동양방송사장을 거쳐  뒤에 KBS사장을
지냈고 신윤생, 김재형은 공사 뒤에까지 KBS에서 활동했으며 
황정태는 KBS계열사 감사를 지냈다.
 

 

 

이남섭은 여로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드라마 집필, 연출등으로 밤낮없이 활동하다가 일찌기
세상을 떴다.  1기 탈랜트 김난영의 부군이기도 하다.
 
 강현두는 외국유학을 거쳐
서울 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스카이라이프
사장을 지냈고 지금은 명예교수로 종종 강단에 서기도
하지만  화가로 서양화에 전념하고 있다.
 
 

 1961년 12월 31일은 방송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하고 1962년을 맞으면서 영화나 필림방송으로
임시편성을 해서 그런대로 방송을 하다가 정규방송을
한것은 1월 15일부터였고 이때의 방송시간은
오후 6부터 10반까지 4시간 반이었다.
 
2월 2일부터 오후 5시부터 방송이 시작되어
방송시간은 모두 5시간 반이 되었다.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되던때라 사실상 자체제작은 어려웠다. 

 

 

 

 KBS-TV직제가 처음 공포된 것은 62년 2월 5일로

이 때부터 새로운 기구가 발족되고 간부들이 새로 임명되어
준비실의 제작 실무 진은 KBS에 남는 분도 계셨지만 최창봉님을

 비롯해서 책임을 맡으셨던 분들은 자리를 뜨셨습니다.

  

새로 오신 분은 

 

국장님으로 황기오님,  편성과장 문시형님,

제작과장 김규님, 기술과장 박능상님, 서무과장 윤철중님,

남산 송신소장 계수경님이었습니다. 
  

황기오님은 육군 군악대 출신 대령으로

재직하다가 군 방송실장을 거치면서 이것이 인연이 되어

국제방송국장, TV방송국장을 하셨습니다.

 

 문시형님은 1948년에 들어오셔서 50년대에

제작과 편성을 담당하셨고 60년대 중반 방송문화

 연구실장을 거쳐 방송을 그만 두신 뒤에도 방우회를

 결성 하시어 여러 가지 활동을 하셨습니다. 글도 많이

남기셔서 종종 전 해 드리려고 합니다.

 

김규님은 처음에 계장으로 계시다가 제작과장을
하셨고방송계를 떠나신 후에도 방송학계에서 이름 있는
교수가 되셔서 저서도 많이 남기셨습니다.
 
박능상님은 해방될 무렵 방송국에들어 오셔서
조정과, 중계과에 계셨는데 1948년 10월 소록도 취재반으로
가시다가 여수, 순천 반란사건시 반란군에잡혀 총살 당하시기
 일보 직전에 살아 돌아신 적도 있으셨씁니다.
 
6.25가 일어 났을때는 박경환, 강기년님등과함께
제주도에 건너 가셔서 한달만에 방송국 문을 열으셨고
남산 방송촌 건설 시에는 유병은님과 함께 시설과
계장님으로 계셨습니다.1963년 제 6 회 방송
문화상을 받으신 분이기도 합니다.
 
계수경님도 6.25 무렵에 들어오셔서
수원송신소장, 남산송신소장, TV기술과장님을

지내 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