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남산시절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8 )-달라진 생활상-

이장춘 2009. 5. 10. 11:25

 

 

 

 

 

 

 
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 8 )
 
-달라진 생활상-
 
 1960년대 빅쇼 한편 보시고  얘기를 시작 하겠습니다. 

 

 

 

 

 

TV의 등장은 이른바 대중의 우상으로
급부상한 각 분야의 스타들을 만들어냈다.  고단했던 시절
TV속의 스타들은 서민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고 TV보급이
활성화 될수록 TV는 사람들에게 유행의 척도 역할을 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의 노래는 순식간에 퍼지
의상은 모든 사람들이 입고 싶어했다.
 
가수나 배우를 따라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스타가 되어 보려고 했다.  이들의 욕구에
맞춰  모델학원 등이 등장했고 그런곳 마다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배삼용을 따라하고 서영춘이 서울과 부산을
비행기로 하루에 한.두차례 씩은 다녀오고 이미자,
페티킴등의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이나 노래 부르는
방식이 순식간에 유행 하던 시절이었다. 한명숙의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는 그리도 정겨웠다.
 
TV보급이 늘어 나면서  전국의 젊은이들은
 트위스트에 흠뻑 빠졌고 전라도 농촌이나 강원도
산골에서도 동시간대 동일한 웃음코드로 박장대소하며
그렇게 TV를 통해 삶의 시름을 달랬다.
 
TV가 주도했던 유행은 삶의 방식을
바꾸어 버리고 의식을 바꾸어 버리고 패션을
 바꾸어 버렸다. 변변한 여가문화랄 것도 없었던 그 시절
텔레비전은 생활의 전부를 지배 해 버렸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TV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거리든,

 

다방이든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어 신기하기만 한
요술 상자의 매력에 매료되어 갔다. 일반 국민은 비록 돈이 없어서
 텔레비전 수상기를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되어도 수상기가
설치된 곳을 찾아 곁눈질이라도 하면 큰 영광으로
받아 드려 지던 시절 이었다.
 
시골 동내에 텔레비전 한대씩이라도
들어오면 온 동내 사람 모여 들고 대중이 이용하는
다방에 텔레비전을 갖추면 손님 모여 들고 만화가게에
텔레비전 갖추어 놓고 코 묻은 돈 시청 대가로 받던 것도
초기에는 불가능 했고 70년대가 다되어서야
가능 했던  일들이었다.  

 

  

 

장욱재(장욱제)가 울고 웃는데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다 따라서 웃고 울면서 살았다. 김희준, 김창숙의 모습에
정신이 팔렸다. 그 시간만 되면 이거고 저거고 다 집어 치우고
텔레비전 있는 집으로  찾아가 그 모습을
보아야만 하는 시절 이었다.
 
그러다보니 흑백수상기 밖에 없던 시절 그 값이
 싼것도 아니었지만 너, 나 할것없이 못 살아도 TV는 사려고
 몰려들었다. TV판매대리점이 수없이 늘었다.  월남에 갔다 오면서 
TV수상기 티켙한, 두장이라도 받아오면 그 티켙
서로찾이하려고 하던 시절이다.
 
TV는 당시 영화계가 누리던 막강한 아성을
무너 트렸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안방에 앉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TV드라마. TV드라마는 국민들로부터
그야말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어렵고 힘들기는 했지만
 
방송인의 긍지가  대단했던 시절이었다.
 
 
오늘은 KBS방송 박물관의 글을
 
일부 인용했음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