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방송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 그 얘기( 3 )
1961년 12월 31일 어두움이 드리워지던 저녁 6시 그 시간에 첫 방송은 시작 되었습니다. 성탄절 전야부터 일주일간의 짧은 시험방송 기간을 거쳐 방송 전파는 울려 퍼졌습니다. 시청할 수 있는 텔레비전 수상기는 1만대도 안되었지만 (1차로 긴급 수입된 7,600대의 수상기를 62년 1월 17일 부터 공급하고 1962년 6월과 8월에 걸쳐 12,400대를 도입 9월부터 공급해서 약 30,000대의 수상기가 보급되었음)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KBS TV방송은 막을 올렸 습니다. 개막식은 이기하님이 기획 연출하고 김성열님이 기술감독을 맡아 진행된 개국실황 중계방송은 임택근 아나운서사회로 진행 되었습니다.
처음지은 TV청사의 제 1 스튜디오에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송요찬 내각 수반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외국의 외교사절들이 참가 한 가운데
역사적인 KBS TV방송이 막을 올렸습니다.
정전이 되어 촛불을 밝히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개막식은 잘 끝났습니다.
천정위로 비쳐오는 별빛을 바라보는 가운데.........
비록 많지 않은 수상기 이지만 그 앞에서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개막식
실황은 중계방송 되었습니다.
남산방송시대를 여는데 공헌하신 분들의 모습입니다.
김성열님 1948년에 방송국에 들어오신 이래 많은 일들을 하셨기에 쓸 얘기가 많아서 다음에 따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개막식 행사 기획, 진행등을 맡으셨던 이기하님은 ( 아래 사진) HLKZ창립 때부터 방송을
시작 하셔서 KBS-TV개국 준비요원으로 일 하시는등 초기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신 분인데 후에 라디오 서울에가셨다가
공사 창립시 KBS무대부장으로 오셔서 올림픽 방송을 하시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시다가 퇴직 하셨습니다.
주조정실 모습
방송이 나가기까지 총괄적인 지휘 감독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현장을 드나들었지만
당시의 기감 이인관님을 비롯해서 시설과장 한기선님,
강기년님, 이중집님, 김선영님등은 밤낮없이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이인관님
이인관님에 대해서는 여러번 말씀 드려서 여기서는 생략 하고 다음기회에 미쳐 못 쓴 얘기들을 쓰도록 하겠습다.
한기선님
한기선님은 1938년 방송국에 들어오셔 1956년 미국연수에서 많은 것을 보시고 배우신후
남산의 라디오 와 TV방송 청사를 지으셨고 문화공보부 기감,
중앙방송국 기술부장을 거쳐 공사 후 소래 송신소장을
하시다가 정년퇴직 하셨습니다.
음향의 권위자 이셨습니다.
다음기회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중집님
이중집 님은 이 일을 마치고 국제방송국 기술과장으로 계시다가 6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갔습니다.
강기년님
강기년님은 1939년 만주 신경방송국에서부터
방송을 시작 하셨는데 KBS에 오신 것은 1948년 평양 방송국에서부터 이고 6.25때 내려 오셔서 여러 가지 일을 하시다가 시설계장으로 계실 때 TV방송청사 공사 현장에 계셨고 중앙방송국 중계과장, 기술과장, 수원송신소장, 공사 기술국장등을 하다가 1978년 정년퇴임 했습니다.
김선영님은 1947년에 방송국에 들어오셔서
6.25때는 해상 이동방송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셨고
TV청사를 지으신 후 국제방송국 기술계장등을 거쳐 공사 후
송신소에서 근무 하시다가 1979년 정년퇴임 하셨고
현재 사우회 회원이십니다.
KBS-TV가 짧은 기간 안에 TV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HLKZ가 1961년 10월 15일 완전히 문을 닫으면서 그 경험을 가지고 KBS에 온 분들도 큰 몫을 하셨습니다.
강 진 구 님
HLKZ에서 기술과장을 하다가 온 강진구님은
KBS에 계장으로 오셔서 동양TV 창설요원으로 갈 때 까지
여러 가지 일 들을 했고 동양 TV에서는 뒤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오 승 룡 님
HLKZ에서 빙송일을 시작한 오승룡님도 이때 KBS 개국요원으로 와 일 하시다가 민영방송에 가셨지만 KBS 창립대 돌아와 TV조정부장을 거쳐 시설국장 등을
하시면서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이밖에 KBS-TV개국에 힘이 되신 분으로 신광우님이 있습니다. 신광우님은 원래 KBS에서 통신 기좌 ( 계장 )를 하다가 HLKZ창설요원으로 기술부장을 했지만 HLKZ가 어려워지자 전자제품 수입상을 했습니다.
신광우님
KBS사정도 잘 아시는데다가 HLKZ에서 기술 총책임을 맡아 업무를 수행 했으므로 경험도 풍부 하고 전자제품 수입상을 하면서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집니다.
처음방송 할 때의 출력은 영상 2KW,
음향 1KW로 서울을 벗어나면 시청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출력은 잠시 10KW (실재로는 12.5KW)를 사용 하다가 지금의 송신탑이 서면서 1971년 50KW로 늘어나 지금까지 유지 되고 있고 전국에 송신소나 중계소가 설치되어 난시청을 해소 해 나갔습니다.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체널 9는
원래 HLKZ에서 쓰던 것을 할당 받은 것이었습니다.
방송국 대지는 1236평위에 630평의 TV스튜디오 를
신축한 것입니다.
다음 회에서 계속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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