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 44 스무고개로부터 재치문답까지

이장춘 2023. 10. 9. 11:02

1, 부산피난시절의 스무고개(사회 장기범, 패널 노천명(여) 등) 2.환도 후 최초의 스무고개(사회 임택근, 패널 이덕근, 문제안, 이경희, 김복경, 노경래) 3.1966년 진해 재치문답을 마치고 (사회 장기범-1, 기술 고흥복-2-사진제공) 4.인기절정 시의 재치문답 제작·출연진(앞줄 왼쪽부터 문제안, 최계환, 장기범, 강소천, 박종민 : 뒷줄 한국남, 정희경, 이경희-사진제공, 윤길숙, 정연희, 안의섭)

 

「방송국에서 파면 된지 1년 만에 송영호 선배(편성과장) 강권으로 47년 7월 PD로 들어왔어요. 미국고문이 가져온 디스크를 검토하던 중 공개방송이 있어요. 처음 듣는 프로그램이지만 우리정서에 맞도록 잘 제작하면 좋을 것 같아 방송제목, 내용 등 다각도로 검토, 그해 8월 우리나라 최초의 공개방송 ‘스무고개’를 탄생시켰지요.」방송기자 1호 故 문제안.

초기 출연자는 김학묵(金學默)사회부 차관(사회학박사), 송진근 전 아나운서, 조명국 이대교수, 최요안(작가)누님 최구(崔鳩)등을 주축으로 하고 가끔 교체멤버가 등장했다. 사회는 윤용노, 홍양보, 서명석아나운서로 이어졌다. 30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개홀이어서 30매정도의 방청권을 발행했다. 이것이 방청권발행의 시초다. 창안자 문 제안이 48년 10월 방송국을 떠나면서 친동생이기도 한 문 시형이 이어받았다. 방청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소공동에 있는 경성회관으로 옮겼지만 바로 6.25가 일어나 부산 피난지에서 명맥만 이어갔다. 1955년 5월 27일 동화백화점(신세계 백화점)에서 최초로 편성된 노래자랑과 함께 공개 방송이 재개되었다. 1960년 잠시 퀴즈 올림픽으로 방송되다가 1961년 2월 「재치문답」으로 편성되어 VOA에서 돌아온 장기범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아 인기를 모아갔다, 제작은 박종민 PD로부터 김찬수, 이상익, 김수웅 등으로 이어졌고, 사회는 전영우, 최두헌, 최규락, 이공순 등으로 이어지면서 1970년대까지 인기리에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