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항일단파방송 연락운동 기념식/ 김광일 사우회 회장

이장춘 2019. 9. 22. 16:54


 



항일단파방송 연락운동 기념식.

 

 


항일단파방송 연락운동 기념식.

-. 일시 : 2019.  09. 20.(금요일)
-. 장소 : 한국방송공사 추모공원 물망비 앞.

-. 인원 : 한국방송인동우회 회원 30명.


한국방송인동우회 주최로 열린 오늘 기념식에서 방송계 원로 인사들은

일제 강점기 당시 삼엄한 감시를 뚫고 해외에서 전해오는 단파방송

내용을 청취하고 이를 전파해 독립심을 고취한 방송인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사회 : 학촌 이세진 아나운서.





기념사 : 한국방송인 동우회 부회장 권영원.







기념사 : 한국방송공사 경영본부장 박재홍





전 광운대학교 정보컨탠츠 대학원장 김성호 교수의

항일단파방송 연락운동에 대한 역사 해설.






유족대표 고 김동하 선생의 자 김중석.









 KBS와 항일단파방송 연락운동 기념사.


   항일 단파방송 연락운동을 요약한다면, 제 2차 세계대전 전후,  일제 치하에서 신문과 잡지가 모두 폐간되고,

해외방송을 들을 수 있는 단파라디오 등을, 몰수당한 후, 1942년부터 약 1년 동안, 조선방송협회 등에서,

근무하던 방송인들이 해외 단파방송을 몰래 청취하고 "일본은 전쟁에서 패하고 조선은 독립한다" 는 소식을,

국내 주요 인사들에게 전하고, 이웃에  전파하다가 일경에게 적발 되여, 연루된 인사  350 여명이 끌려가 

78명이 실형을 선고 받고, 그 중에서 6명이 옥사한 독립운동 이었습니다.


방우회는 오랫동안 이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뜻있는 선배님들과 함께, 그 내용들을 종합 정리했고,

그 자료를 기초로, KBS는 1988년 「단파방송 연락운동-일제하 경성 방송국」이라는 책으로 출간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했습니다. 또 그때, 그 일을 기리는 물망비(勿忘碑)를 세우자는 제안이 있었고,

KBS출신의 조형미술가, 최만린 선배님에게 의뢰 하여 이곳에 물망비를 새우게 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운동이 오랫동안 말로만 전해 오다가, 1980년대부터 재판기록 등 그 내용이 발굴 정리되면서, 

체계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단파방송 연락운동 인사 중, 아홉 분이 국가로부터

훈, 포장을 받았습니다.  

방우회의 적극적인 사료발굴이 없었다면 체계적인 자료정리가 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한번 전 방우회장 한영섭 님과, 고 유병은 선배님들의 숭고한 뜻을 알게 되여,

마음 깊이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요즈음은 조그만 헨드폰으로 안 되는게 없는데, 단파방송을 통해서 어떻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라고 생각 할수도 있지만, 그 시절에는 단파방송이, 

해외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기에 그 엄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목숨을 건 애국적인 행동을 통해서 독립운동에 기여했음이 사실 이였습니다.


이러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의 바탕 위에서, 오늘날 KBS가 세계를 향한 한류열풍을

일으키는 등, 세계적인 방송사로서, 커 왔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최근 사회 지도층의 일부 인사들의, 눈쌀 찌푸리는 행동을 보면서, 그때 애국 선열들의

애국, 애족하는 숭고한 자세를, 좀 더 본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생각되는 오늘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 9. 20. KBS사우회 회장 김광일








한국방송인 동우회 이사 김규홍.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http://blog.daum.net/afakim/1371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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