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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박사 귀국 (1945년 10월 16일) 과 대한민국 방송기자 1호 문제안의 육성 회고담

이장춘 2019. 4. 27. 18:46


 


 

1945년 10월 16일 오랜기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가 해방되어 처음으로 고국 땅에 들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10월 17일 KBS

전파를 통해서 이승만 박사의 환국소식이 국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이승만 박사의 고국에

돌아온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위 동영상의

목소리는 그 시절 한사람 밖에  없었던 방송기자

문제안 선생님이 그로부터    66년이 지나

2011년 8월 6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이승만 박사 귀국 (1945년 10월 16일) 과

대한민국 방송기자 1호 문제안의 육성 회고담


 

문제안 선생님은

스스로 작성하신 다음 글을

보내 주시기도 했습니다.


 


 

1945년 10월 1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중앙 방송국 제3스튜디오,

3평도 못되는   작은 방송실에서  윤용로

아나운서가    “본 방송국 문제안 기자가

지금 방송실에 뛰어  들어 와, 중대 기사를

쓰고 있으니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하면서 신나는 행진곡을 틀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서 나는 전날

10월 16일    금요일 오후 4시에 쥐도

새도 모르게 환국한 후 당시의 주한 유엔군

사령관 하지중장의   안내로 다음날인 10월

17일 토요일 10시에 중앙청 회의실에서

국내기자단과 첫 회견을 한 이승만

박사 환국 기자 회견 기사를

쓰고 있었다.

 

첫 장을 다 쓰자 윤용로 아나운서는

더 참을 수 없어  첫 장을 낚아 채다시피

해서 방송을 하고는 다음을 기다릴 수 없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시 한 번 되풀이 읽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둘째 장을

쓰고 그러면 윤용노 아나운서는 다시

첫 장과 둘째 장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

하고 나는 계속해서 셋째 장을 쓰는 그야

말로 숨 가쁜 순간의 연속 이었다.

 

바로 내 옆에는 기사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검열하던  미군대위 검열관도

너무 흥분한 탓인지 검열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내 옆에 묵묵히 선채 기사 쓰는 내 바쁜

손끝만 내려다 볼 뿐이었다. 이렇게 쓰인 나의

기사는 써지는 대로 전파를 타고 전국방방

곡곡에 퍼져 나갔다.     이시간이야

말로    내 일생 최고의 시간

이었던 것만 같다.

 



 

문제안 선생님은 생존 시

저에게 많은 얘기를 들려 주셨고

가지고 계신 사진 史料도  모두  제공 해

주셨습니다. 해방공간에서 가장 바쁘신 분 중의

한 분이   문제안 선생님이었습니디. KBS와 HLKZㅡTV

방송국에서 근무하셨고, 여러 신문사에 근무하셨습니다.

'늘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정진하다보니,   방송국장,

 신문사의 「편집국장」한번도 못해 보고 황혼을

맞았다.’ 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춘하추동방송에는 문제안

선생님에 관한   여러 편의 글이

있습니다.     필자 이장춘이 그 시절

잘 몰랐던    얘기들은 문제안 선생님에게

확인해서 쓴 내용도 많습니다.    문 선생님이

오재경 선생님과 같은 달에  (2012년 6월) 세상을

뜨셨을 때 필자 이장춘은 KBS 사우회보에 두 분의

추모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방송과 함께,

언론과 함께 살다 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황규환 회장님 글

 

이렇게 희귀한 자료를

올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방송기자를 했다고 해봐야 남은 게

하나도 없는데 이 국장은 뜻있는 곳에

마음을 두어 소중한 재산을 저장했다가

나눠주는구려.     생각나는 대로

챙겨서 보여주세요.

 

이병혜 교수님 글 (아나운서)

 

 

완벽한 사람 없듯

이승만대통령 역시 공ㆍ과가

있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상황에서 최고의 지도자였음이 분명한데

역사 특히나 근·현대사를 모르는 전교조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에게 폄하되고

부정 되는 게 저도 안타깝다

생각합니다.

 

이런 귀한자료들을

갖고 계신 선배는 정말

혜안 있으시네요.



유경환 여사님 글 (유카리나)

2019.04.28 07:50 <!--[endif]--> 


인류 역사에 문자나 그림의 기록이

없을 때, 다만 사람 등의 입으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 전설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요.

이미 세상을 뜨신 분들의 육성을 생생히 들을 수

있도록, 이렇듯 사진으로 녹음 테이프로, 또는 그분의

글을 챙기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자료로

남겨주시는 국장님의 깊은 뜻에 크고 힘찬 박수로

응원합니다.   이것은 방송만의 역사가 아니라,

이 나라 역사의 어떤 시점의 모습이니까요.



애신각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지내시는지요? 예전에

댓글로 김대중 대통령을 무작정

옹호하고   박정희 대통령님 비난한

내용을 적은 것 같아 다시 들렀습니다.

근현대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분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존재

하는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

윗 세대 분들의    노고를 다시한번

기억하며        항상 감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관련 글 보기 영문자 클릭



방송기자 1호 문제안/최초의 방송기자

  http://blog.daum.net/jc21th/17780077 

 

대한민국 방송기자 1호, 방송원로 문제안 / 문시형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0763 

 

대한민국의 첫 방송기자가 탄생하던 날 1945년 8월 16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906 

 

이 생명 다하도록 잊지 못할 내 방송국

 http://blog.daum.net/jc21th/17613463


TV방송 창설자 오재경, 대한민국 방송기자 1호 문제안(추모글) 

대한민국 방송기자 1호 문제안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이승만 박사와 기자들이 함께 한 사진



군정청 최초의 신년 기자회견장



4.19 직후 조봉순 (얄개 작가 조흔파) 중앙방송국장과 함께

가운데 안경 쓰신분 문제안, 오른쪽 문시형, 두분은 형제



문제한 기자,  HLKZ 재직시 이승만 대통령 취재현장 1957년


 
빙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