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남한산성 역사탐방 (8) 연무관, 지수당, 천주교 순교성지 등 문화유적,

이장춘 2017. 4. 25. 07:15




 산성의 동쪽에서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백제 온조왕으로부터

2,000년의 역사를 안은 남한산성이기에

그 유적이 많다.  그동안 7번에 걸쳐 대체적인

 글을 올렸고 오늘     그 마지막 회로 지금까지

 얘기하지 못했던  지수당,   연무관,   침괘정,

흥천사 동종 등 문화재와 천주교 순교성지

만해기념관, 한경직 우거지, 게계문화

유산 센터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남한산성 역사탐방 (8) 문화유적 








지수당 (池水堂)



동문에서 산성내 시가지를 향해서

걷다보면 연못가운데 새로 복원된 정자가

있다. 경기도의 문화재 자료 제14호로 보호받는

지수당이다. 조선 현종 13년(1672)에 부윤(府尹)

이세화(李世華)가 세운 건물로 건물의 앞 뒤로는

세개의 연못이 있었으며 당시 고관(高官)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지금은 연못 하나가

매몰되고 두 개의 연못만 있다.





정자에는 지수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지붕의 양식은 홑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이다. 정자 크기는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으로 되어 있으나 측면의 1칸은 반칸 크기로 되어

건물의 평면은 장방형 꼴을 이룬다. 정자 옆의 연못은

 'ㄷ' 자형으로 파서 연못이 정자를 둘러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이것은 을축년 대 홍수 때 매몰된 정자를 복원

하는 과정에서 원래 'ㅁ'자 형의 정자를 완전복원하지

못한 것이 현재의 정자 모양으로 남았다. 연못

가운데 관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빈 터만 남아있다.













연무관(演武館)


위 연무관 엣 사진을 올렸다.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인조 2년 남한산성을

건설하면서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처음 지어졌을 때는 연무당이라고

불렀지만 숙종 때 건물을 개수하면서 연병관

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이후 통칭

 연병관,  연무관이라고 불린다.천주교

순교장소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연무관 앞의 보호수들








천주교 순교성지


  

광주가 이 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되면서 토포사가 있었다.

토포사는 반역도당들을 토벌하고 떼 강도와

 같은        큰 도적을 잡는 일을 하는 관리였다. 

천주교 박해령이 내려지면서 토포군관들은 북쪽으로는

한강,   남쪽으로는 이천, 여주, 양지, 용인에 이르는

고을 안에서 천주교 신도들을 잡아다 처형 하는 등

박해를 가했던 것이다.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

(1791년) 때부터 신도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됐고 신유박해(1801년) 때에는

 최초로 순교자가 나왔다.


이어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후기에 이르기

까지 70년간 300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그 중 현재 이름과 행적이

알려진 순교자는    총 36명으로 순교자

 현양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침괘정 (枕戈亭)

행궁 앞 언덕위에 있는 건물이다.

이서가 남한산성을 쌀기 시작 했을때

숲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건축연대가

확실치 않지만  광주유수 이기진이 1751년  영조

27년에 중수하고 침괘정이라  했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큰 건물인데, 건물 내부가 흔하지

 않은 배치로 이루어져 있어   도중에 용도 변경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건물의 용도에 대해서 전설에는

 온조왕의 궁터라고 하고, 무기창고라는 의견도 있으나,

 특이한 내부 평면을 볼 때 관아의 용도로도

사용된 특수 건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



행궁 앞에 종각을 세우고

이 종을 보존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동종을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신라 동종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양식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용뉴는 종을 매달기 위해

 종의 맨 위에 만든 고리이고, 그 옆의 음통은 음향효과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동종의 용뉴를 닮았으나 용두가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들어올리고 있는 모양은 고려시대에

새로 나타난 형식이다. 음통 표면 역시 신라 종처럼

5단으로 나누어 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종 윗단과 아랫단에는 연속된

구슬무늬띠 (連珠文帶)를 두르고

그 안에  보상당초무늬  (寶相唐草文)를

장식했다.    종의 몸체에는 두 개의 당좌

(撞座)와 비천상(飛天像)을 번갈아 배치했다.

 이렇게 당좌와 비천을 장식하고, 몸체에 넓은 

공간을 남기는 것은 신라 이후의    특징이다.  

몸체에 위패(位牌)모양을 만들어 새겨진

 글귀를 통해      1010년(현종 원년)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해 기념관 한용운 선생님



3.1운동 민족대표로 건국훈장

 최고 훈격의 대한민국장을 받은 국민

30인중 한 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생님은 시인이요  독립지사이며 승려 대선사로

 불교계의 큰 별이시다.   그 한용운선생님을

 기념아는 만해 기념관이 여기에 있다.








한경직목사 우거지



한국종교계의 거목 한경직

영락교회 창립자로   또 교육과

사회봉사로  널리 알려진 한경직 목사가

살았던 집 남한산성 우거지현장을 찾았지만

 마침 공사 중이어서 숲속의 탐방 때의

 현장 사진을 담아서 올린다.





한경직 목사는 ​1902년

 12월 29일 평안남도 간리에서

태어나 2000년 4월 19일 저 세상으로

 가실 때까지 수 많은 일을 하셨고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1992년 노벨 종교상으로

 일컬어지는    템틀턴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건국공로장을 받았다.








남한산성 세계유산 센터








  • 김무생 아나운서님 (KimMooSaeng)

  • 2017.04.27 02:50

  •              
  • ●지금 세대 여러분! 
      그리고 미래 세대 여러분!
    대선배님 이장춘 이사님의
     뜨거운    발자취가   여기에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마치 옛날 시골 고향의
    동네 사람들의 쉼터 "모정" 같은
    <정자 지수당>★지장,덕장,용장들이 뛰어
    나와 군사들을 훈련시키며 호령할 것만 같은
    <연무관>의 운치 있는 자태,★말은 없지만
    외침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순교자 현양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침괘정>의 듬직한 자리 잡음
    ★숨겨 놓은 사연들을 종소리로
    울려 방방곡곡으로 배달해 줄 것 같은
         <남한 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

    ★저만치서 손짓 하시며
    맞아주실 것 같은 만해 한용운
     선생님! 그분을 기리는 <만해 기념관>
    ★인자하신 모습으로 가벼운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하실 것 같은 한경직 목사님이
     사셨다는 <우거지> 등

    우리의 문화유적이 이곳
     "춘하추동 방송 보물창고"에
    이렇게 선명하게 정성으로 저장이
     돼 있습니다.  우리의 땅과 민족과 역사와
     말과 더불어서 우리의 문화 유적이 정확하고
    당당하게 보존되고우리가 이해하고 새겨 알고
     있어야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체성이
     확고해 지리라 믿습니다.

    그런 일을 직접 현장을
    누비며 하시는 이장춘 이사님의
     "역사 탐방과   문화유산 바로 알고
     보존하기"는 지금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들도 계승해야 되는 우리의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값진
       삶의 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했를 때 우리
    대한민국이 당당하고 견고하게
       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춘하추동 방송>을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이곳을 방문하심으로써 여러분의 삶의 활력소가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삶과
    하시는 일을 통해서 건강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무생 드림.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남한산성 행궁 역사탐방 (1) 

    http://blog.daum.net/jc21th/17783132


    수어장대 남한산성 역사탐방(2) 경기유형문화재 제1호, 3호

         

    남한산성 역사탐방 (3) 세계문화유산 남문

    http://blog.daum.net/jc21th/17783140


    남한산성 역사탐방(4) 사적 제57호 남장대 터, 남옹성

    http://blog.daum.net/jc21th/17783141


    남한산성 역사탐방 (5) 동문 ‘벌봉’, 북문, 서문

    http://blog.daum.net/jc21th/17783154


    남한산성 역사탐방 (6) 숭렬전, 현절사, 청량당


    남한산성 역사탐방 (7) 사찰 망월사, 장경사, 국청사

    http://blog.daum.net/jc21th/17783156


    남한산성 역사탐방 (8) 연무관, 지수당, 천주교 순교성지 등 문화유적,


    만해 한용운, 심우장, 시 님(임)의 침묵




    한양도성 역사탐방 글  보기


    한양도성 역사탐방 종합 44편, (조선조 5대궁 5편, 관련 글 28편포함)


    한양도성 역사탐방 (11) 남산 길 광희문 장충단

    http://blog.daum.net/jc21th/17781861

     

    한양도성 역사탐방 (10) 동대문(흥인지문), 청계천, 광희문 구간 

    http://blog.daum.net/jc21th/17781860

     

    한양도성 역사탐방 (9) 낙산 길,

    http://blog.daum.net/jc21th/17781859

     

     한양도성 역사탐방 (8) 혜화문 (동소문) - 숙정문(북대문) 구간

    http://blog.daum.net/jc21th/17781856

     

    한양도성 역사탐방 (7) 숙정문 북대문 청운대 말바위

    http://blog.daum.net/jc21th/17781855

     

    한양도성 역사탐방 (6) 창의문 자하문 백악마루 북악산 정상

    http://blog.daum.net/jc21th/17781850

     

    한양도성 역사탐방 (5) 인왕산 길 두 번째  

    http://blog.daum.net/jc21th/17781848

     

    한양도성 역사탐방 (4) 인왕산 선바위(禪岩) 국사당(國師堂)

    http://blog.daum.net/jc21th/17781843

      

    한양도성 역사탐방 (3) 돈의문 서대문 독립문

    http://blog.daum.net/jc21th/17781835

     

    한양도성 역사탐방 (2) 정동길, 서소문길

    http://blog.daum.net/jc21th/17781831 


    한양도성 역사탐방 (1) 숭례문(남대문)에서 남산성곽 따라, 사적 제 10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821




     

     

    춘하추동방송 이장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