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남한산성 역사탐방 (7) 사찰 망월사, 장경사, 국청사

이장춘 2017. 4. 24. 17:37




<br>


남한산성에는 절이 많다.

 남한산성을 쌓을 때 팔도의 승병을

 동원해서 쌓았고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비밀리에 무기와  화약 · 군량미 등을 비축해

두기 위해 국청사와 천주사·개원사·남단사·한흥사·

장경사 · 동림사 등  7개 사찰을 세웠다.  원래부터

그전부터 있었던  망월사와 옥정사, 그리고 한봉성

 근처에 있는 영원사를 합해서 모두 10개의 사찰이

있었지만 장경사 외에는 모두 소실되었다. 

의병의   활동 근거지였던 이곳 절을

일본이 소실했다는 얘기가 있다.



남한산성 역사탐방 (7) 사찰 망월사, 장경사, 국청사 



 오늘날 남한산성에는

1968년 보운 승현화상(普運

 承賢和尙)이 재건한 국청사와

1980년대에 복원된 망월사가

 있다.   망월사, 장경사,

국청사를 찾았다.







망월사 (望月寺)



필자가 남한산성을 자주 다니던

시절 이 망월사를 짛고 있었다. 대한한공

조중훈 회장 시주로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이 망월사를

찾았다. 동문에 장경사와 함께 커다란 안내판이

서있다. 동문에서 아스팔트 자동차 길 따라 바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성곽따라 장경사로 돌아서

 가는 길도 있다.    10분정도 오르다 보면

망월사, 장경사 갈림길에 큰 석비가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망월암에서 유래되었다는

망월사는 남한산성 내에 있는 10개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깊도 오늘날 가장 킅

사찰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

읍을 정할 때 한양에 있었던  장의사를 허물고

그곳에 있던 불상과 금자화엄경, 금솥 등을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옛 망월사는 일제에 의해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1980년대에 대한한공 조중회회장

시주로 복원되어 큰 절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의 법당 자리가 원래

 망월사 중심 전각이 있던 곳이다.

곳곳에 남아있는 돌 축대는 옛 망월사

 규모와 건물 배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며,

 대형 맷돌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 대웅보전

 우측에 위치한 사리탑은 인도 인디라 간디

 수상으로부터 직접 모셔온 진신 사리를

봉안한 13층 석탑이다.





이곳을 통하는 등산길이 없어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염불 독경

소리가 귓전에 들려온다. 4월 초 8일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연등 달기

등에 바쁜 모습이다.







13층 석탑은 인도 인디라 간디

 수상으로부터 직접 모셔온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다, 석탑 뒤쪽에 나무묘법연화경

(南無妙法蓮華經)이 새겨진 벽체가 세워져 있다

 나무묘법연화경은 불교의 경문 중 하나로 묘법

연화경(妙法蓮華經)에 귀의한다(南無)는

 뜻이다. 묘법연화경은 법화경이라고

 줄여 부르는 불교경전이다.












장경사 (長慶寺)



동문에서 성곽 따라 20분정도

 오르면 장경사에 이른다.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잦다. 자동차는 아스팔트 길 따라

장경사 경내에 까지 간다. 성곽과 맞닿아

 있는 곳이 장경사 주차장이다.





남한산성 내에 존재했던

10개의 사찰 가운데 당시의 모습

으로 남아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이다.

 망월봉 남사면 중턱 해발 360m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인조 2년(1624년) 남한산성 수축 시 승군의

숙식과 훈련을 위해 건립한 사찰이다. 병자호란

인조 15년(1637년) 1월 19일 적이 동쪽 성을

침범 남한산성이      함몰 위기에 빠지자

어영별장 이기축이 장경사에 있다가

몸소 군사를 독전했다.





대웅전을 비롯 진남루,

칠성각, 대방,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이 고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화려함을 더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국청사 (國淸寺)



행궁에서 숭렬전을 지나

서문으로 가는 길에 있다. 1624년

(인조 2) 암한산성을 쌓을때 벽암(碧巖)

 각성(覺性)이 창건했다. 조선조 말 의병의

 무기창고로 이용되기도 했으나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비밀이 누설되어

일제에 의해 폭파되고 말았다. 오랫동안

 절터만 남아 있다가      1968년 보운

(普運)이 중창,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유물로는 성삼문

(成三問: 1418∼1456)의 친필이 적힌 병풍과

시열(宋時烈: 1607∼1689)의 친필로 된 책자

3권이 전한다. 인근에 국청사정(國淸寺井)이라는

 조그만 우물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우물

에서 금닭이 홰를 치며 울었다고 한다. 또

이 약수로 아버지의 종기를 고쳤다는

 효자에 관한 이야기도 전한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남한산성 행궁 역사탐방 (1) 

http://blog.daum.net/jc21th/17783132


수어장대 남한산성 역사탐방(2) 경기유형문화재 제1호, 3호

     

남한산성 역사탐방 (3) 세계문화유산 남문

http://blog.daum.net/jc21th/17783140


남한산성 역사탐방(4) 사적 제57호 남장대 터, 남옹성

http://blog.daum.net/jc21th/17783141


남한산성 역사탐방 (5) 동문 ‘벌봉’, 북문, 서문

http://blog.daum.net/jc21th/17783154


남한산성 역사탐방 (6) 숭렬전, 현절사, 청량당


남한산성 역사탐방 (7) 사찰 망월사, 장경사, 국청사

http://blog.daum.net/jc21th/17783156


남한산성 역사탐방 (8) 연무관, 지수당, 천주교 순교성지 등 문화유적,



한양도성 역사탐방 글  보기


한양도성 역사탐방 종합 44편, (조선조 5대궁 5편, 관련 글 28편포함)


한양도성 역사탐방 (11) 남산 길 광희문 장충단

http://blog.daum.net/jc21th/17781861

 

한양도성 역사탐방 (10) 동대문(흥인지문), 청계천, 광희문 구간 

http://blog.daum.net/jc21th/17781860

 

한양도성 역사탐방 (9) 낙산 길,

http://blog.daum.net/jc21th/17781859

 

 한양도성 역사탐방 (8) 혜화문 (동소문) - 숙정문(북대문) 구간

http://blog.daum.net/jc21th/17781856

 

한양도성 역사탐방 (7) 숙정문 북대문 청운대 말바위

http://blog.daum.net/jc21th/17781855

 

한양도성 역사탐방 (6) 창의문 자하문 백악마루 북악산 정상

http://blog.daum.net/jc21th/17781850

 

한양도성 역사탐방 (5) 인왕산 길 두 번째  

http://blog.daum.net/jc21th/17781848

 

한양도성 역사탐방 (4) 인왕산 선바위(禪岩) 국사당(國師堂)

http://blog.daum.net/jc21th/17781843

  

한양도성 역사탐방 (3) 돈의문 서대문 독립문

http://blog.daum.net/jc21th/17781835

 

한양도성 역사탐방 (2) 정동길, 서소문길

http://blog.daum.net/jc21th/17781831

 

한양도성 역사탐방 (1) 숭례문(남대문)에서 남산성곽 따라, 사적 제 10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