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남한산성 역사탐방 (5) 동문 ‘벌봉’, 북문, 서문

이장춘 2017. 4. 24. 05:35

 







남한산성 산성로 따라

광주, 하남시 방면으로 내려오는 길에

 동문(좌익문-南漢山城左翼門)이 있다. 임금이

 남쪽을 향해 앉아 정무를 수행하는 관계로 왼쪽에

있는 동문에 좌익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남한산성

 역사탐방 5번째    오늘은 동문에서 장경사를 지나

 봉암성에 있는, 남한산성에서 제일 놓은 봉우리

벌봉, 북문(전승문), 서문(우익문), 연주봉

 옹성까지 돌아보기로 한다. 아래사진

붉은 색 표시를 따라간다.


 



남한산성 역사탐방 (5) 동문 ‘벌봉’, 북문,







 

 동문(좌익문-南漢山城左翼門)



동문 옛 사진을 올렸다.

지금은 자동차 길이 나 있어 성은

단절되어 있다.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m·폭 3.1m이며 홍예기석 위에 9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들었다.   문루는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로

홑처마를 두른 팔작지붕 양식이며   용머리는 망와로

마감하고 연등천정으로 꾸몄다. 낮은 지대에 있어 성문을

지면에서 높여 계단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우마차를 이용한

 물자수송이 불가능했기에 우마차로 남한산성의 물자를

 나르던 시절    동문의 턱이 높아 동문 옆에 있는

 11암문을 통해서 다녔을 것이라고 한다.





위 11 암문은 폭이 2.86m,

 높이가 3.07m, 길이는 5.6m에 달해

남한산성 16개 암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조선조 말 천주교 박해 때3백여 명의 시신이

버려진 천주교인    순교자를 산성 밖으로

 내다 버릴때   이 문을 통해서 시체가나간

문이어서 시구문이라고도도 불린다.  





아래 사진은 동문 안에

 있는지수당 부근에서 바라본

옛 광주 시가지다. 연무관 등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댜.







수문(水門)



 동문 길 건너에 남한산성

에서 흘내리는 물을 받아

 내려 보내는 수문이 있다.









동문에서 성따라 오르다 보면

장경사가 있고 더 오르면 동장대 터를

지나 봉암성에 이르고 그 끝자락에 여기서

제일높은 해발 522m의 봉우리 벌봉에

 이른다.  장경사에 관한 얘기는

따로 쓸 예정이다.








봉암성, 한봉성, 벌봉  

  


 

병자호란때 그때까지 성이

없었던 벌봉, 한봉을   점령당해

이곳에서 쏜 포화가 행궁까지 날아들고

성 내부가 감시당해 어려움을 겼었던 터라

뒷날 이곳에 성을 쌓아 남한산성을 보완했디.

청나라의 감시가 심했던 때라      성을 쌀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또 성을 쌀다가 헐리는 경우도

 있었다.    비교적 큰 암문 제 3암문을 나서면

헐린 성터가 있다.   벌봉으로 이어지는

봉암성, 한봉으로 이어지는

한봉성이다.


 



봉암성은 숙종 12년에 한봉성은

 숙종 19년에 쌓았다. 봉암성은 남한산성의

 새로 쌓은 성이란 뜻으로 '신성'이라  불렸다.

또 동쪽에 있어서 ‘동성’이라고 했다고 한다.

봉암성의 여장은 대부분 훼손되었지만,

성벽 몸체는 잘 남아있다.





한봉성은 봉암성의 동남쪽에서

한봉의 정상까지 세운 성이다. 병자호란

 이후 숙종 19년에 수어사 오시복이 신축했다.

한봉성은 다른 성과는 다르게 닫힌 곡선 형태를

이루지 않고, 일직선으로 연결된 용도(甬道) 형태의

성이다. 한봉성이 신축된 이후 청나라 사신이 숙종 3

1년에 와서 한봉성을 헐었고, 영조 15년에 수어사

조현명이 다시 개축했다. 일반적으로 한봉성의

성돌은 장방형이나 정방형에 가깝고,

폭은 60~80cm, 두께는 약

45cm 정도이다.









벌봉의 해발 높이의 기록은

512m에서 522m꺼지  다양하다.

 필자는522m로 썼다. 여기서 내려다 보면

하남일대가 보이고 건너편에 하남 검단산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 객산쪽으로 내려오면

오른쪽 마을이 춘궁마을로 백제의 궁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궁안길' 이라는 길 이름이 있다.

길따라 내려오면 '토성' 토루 등이 있다.

















제1군포터



벌봉에서 돠돌아 동장대 터를

지나 북문쪽을 향해서  걷다보면 초소

역할을 했던 제1군포터가 있다. 한산성

안에는 125개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한개도 남아있지 않고 터만 있다.


동장대에서 북문에 이르는 성곽길은

 비교적 심한 비탈길이 있다.








암   문



남한산성은 한국 성곽 중에서

가장 많은 암문을 가지고 있어 모두

16개가 있다. 암문은 적이 관측하기 어려운

곳에 만든 성루가 없는 성문이다. 원성에 11개,

봉암성에 4개, 한봉성에 1개가 있고 형식은 평거식과

 홍예식으로 구분된다. 암문은 은밀하게 식량과 무기를

 운반하거나        원군이나 척후병이 출입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크기가 작고 장식이 없다. 암문의

안쪽에 쌓은 옹벽이나 흙은 유사시에  무너뜨려서

 암문을 폐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위의암문은 성곽 윗 부분 평평한

땅에서 아래로 통하는 길이고 아래 사진의

암문은 북문부근에 있는 제 4암문이다. 이 문을

통해서 내려가면 춘궁동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춘궁동

으로 불리는 그 윗동내 상사창동에 내려가면 하남시

에서 운영하는 마을버스가 있지만 운행횟수는

드물다.이곳 상사창동에서 20여분 걸으면

버스가 많이 다니는 하남시

서부농협에 이른다.  

  







북문 (戰勝門)



성곽 북쪽의 해발 365m 지점에

있는북문은 전승문(戰勝門)이라고 한다.

북문을 나서면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옛날의

창고가 있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상사창동에

이른다. 조선시대에 수운으로 옮긴 세곡을 등짐으로

이 문을 통해 산성 안으로 운반하였다.      1779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면서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의 전승문이란 이름을

붙였다. 홍예식 문이며, 홍예기석 위에

10개의 홍예돌을 쌓아 구축했다.





서문에서 북문을 지나 벌봉

그리고 저 건너 하남의 검단산이

한눈에 보이는 옛 사진이다. 벌봉에서

성내가 훤히 바라다 보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숲이 우거져 이런 사진은

촬영 할 수가 없다.







위는 문 안에서 촬영한 사진

이고  아래는 문 밖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문 밖 바닥에 왼 눈이

 싸여 있는가 했더  니영화촬영을

 위해  인공  눈을 뿌렸다는 

 안내 글이 쓰여있다.

 









서    문 (右翼門



 임금이 정부를 보는 오른쪽에

있는 문이라고 해서 붙혀진 우익문

(右翼門)! 오늘날 송퍄 거여동으로 통하는

 길로 병자호란때 인조가 항복한 산전도와 통하는

길이다. 인조가 항복길을 떠날때 이 문을 통해서

갔다. 이 문 앞에 연주봉이 있고 뒷날 이 연주봉에

옹성을 쌓았다.    한강줄기와 연결된 광나루나

송파나루에서 가장 가깝지만, 경사가 급해서

 우마차 등은 드나 들 수 없었다.


문의 폭은 1.46m이고, 높이는

2.1m다. 동문처럼 홍예식으로, 장방형

홍예기석 위에 5 매의 홍예석을 올렸다.

안쪽에는 2짝의 목재 판문을 설치했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연주봉 옹성



서문 부근에 있는 제5암문을

나서면 연주봉 옹성이 있다. 북, 동, 서

3면이 툭 트여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북쪽에

있는 유일의 옹성이다.  성벽에 달라 붙은 적군을

옆에서도    공격할 수 있어 적의 공격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지만, 남한산성의  옹성은 모두

성벽에서 길게 뻗어서 성벽을 보호

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남한산성의 경우 돌출된

옹성에서 봉화대 역할도 했을법 하다.

 남한산성에는 현재 이곳 연주봉 옹성, 장경사

신지 옹성과 남문 쪽의 옹성 3개를 비롯해서

 5개의 옹성이 있다.  이곳 연주봉 옹성을 제외

하고는 모두 원성 축성이후에 건설된 것으로

남쪽에 3개, 동쪽에 1개가 있다. 남쪽 3개의

옹성은 설명 드렸고 장경사 옹성은

사찰편에서 설명 할것이다.



연주봉 옹성은 옛날에

 못보던 옹성인데 그동안 복원되어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이곳에서 전후

 좌우로 주변 모습을 모두 담았다.  



앞에서 본 연주봉 옹성
















연주봉 옹성에서 본 하남 춘궁동

검단산, 아차산, 예봉산이 함께 보인다.




연주봉 옹성에서 본 위례신도시


연주봉 옹성에서 본 송파 잠실,

롯데 월드 123층이 보인다.




여   장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남한산성의 여장은 다른 성곽에서 보기 힘든 전돌로

 축조한 평여장이다. 그러나 여장은 축조시기와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여장 재료는 일반적

으로 하부는 석재로, 상부는 전돌을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

이다. 여장은 수평되게 축조한 것이 기본형식이나, 급경사지

에서는 계단식으로, 일부 완만한 경사지에는 지형에 따라

경사지게 조성한 예도 보인다. 여장에는 중앙에 근총안

 1개와 좌우에 원총안 2개 등 3개의 총안과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활을 쏘기 위한 타구가 마련되어 있고,

 남한산성의 여장 규모는 길이 4.2m, 높이

1.3m, 폭 0.8m 내외가 일반적이다.






필자 이장춘은 2013년 7월
8월 9월에 걸쳐 한양도성탐방에 이어
 2014년 1월과 2월에 걸쳐 서초둘래길을
탐방했고 이번 남한산성 역사탐방 8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한양도성과 남한산성
역사탐방 글 모두를 연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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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행궁 역사탐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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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남한산성 역사탐방(2) 경기유형문화재 제1호, 3호

     

남한산성 역사탐방 (3) 세계문화유산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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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역사탐방(4) 사적 제57호 남장대 터, 남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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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역사탐방 (5) 동문 ‘벌봉’, 북문,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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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역사탐방 (8) 연무관, 지수당, 천주교 순교성지 등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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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종합 44편, (조선조 5대궁 5편, 관련 글 28편포함)

한양도성 역사탐방 (11) 남산 길 광희문 장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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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10) 동대문(흥인지문), 청계천, 광희문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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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9) 낙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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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역사탐방 (8) 혜화문 (동소문) - 숙정문(북대문)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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