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남한산성 행궁 역사탐방 (1)

이장춘 2017. 4. 26. 17:24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Ask5zV1a_Bc

 

 

1636년 조선의 제 16대 임금

 인조가 병자호란의 피난길에서 47일간

정사를 보다가 청나라에 항복했던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그 행궁!  그 역사의 비운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겠다며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위해 성을

견고히 쌓고 행궁을 늘려갔지만   일제의 마수에 걸려

 1907년      행궁은 사라지고 오랜 세월 그 모습을 보지

 못하다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 2,000년대 들어 오늘의

 행궁으로 되살아나 산성과 함께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위 동영상은 다시

세워진 행궁과 주변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전 · 후 · 좌 · 우 여러 면에서 촬영

하고 현장音을 살렸다.



남한산성 행궁 역사탐방 (1)

 


하남시에서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

말발굽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춘궁동이

백제의 발상지로 전해오고 그와 연결되는

 남한산성온조왕(溫祚王)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있고        온조왕의

 재사를 올리고 있는 연유이기도 하다.






최근 1990년대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 시기인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

(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며

고려시대에는 남한산성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조선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일장산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이 오랜 역사를 지닌 남한산성

새로운 면모를 갖춘 것은   조선조 제16대 인조가

 반정으로 임금이 되면서   산성을 쌓고 행궁을  마련

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일제

점기에 촬영한 행궁과 남한산성 그리고

 광주읍을 함께 본  사진이다.






인조2년 1624년에 시작된

 성 기는 1626년 7월에 기본적인

 공사가 끝나 1936년 병자호란을 여기서

 버티었지만 결국은 항복을 하면서 씻지 못할

 치욕의 역사를 남겼다. 그 뒤로도 성은 계속 확장

 되었을때 그 사실을 안 청은 병자호란 침략의 선봉장

골대를 사신으로 보내 성과 포대를 모두 철거하도록

압박했다.  이때 그 무자비하고 폭악무도한 용골대를

상대한 우리 사신 좌승지 구봉서(具鳳瑞)의 기치로

 포대는 철거되었어도 성곽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아래          KBS 방송국장  역임한

구능회님의 글이 있다.)     





그 뒤로도 순조 때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어 견고한 시설을

갖추었지만 조선조말 일제침략에 항거하는

 의병의 본거지가 되면서  일제에 의해 행궁은

철거되고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

되다가 사라져갔다. 해방된 날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문화재들이 다시 빛을 보고 있어

1963년에는 산성이 사적 57호로 보호되고

허물어진 성은 계속 복원되었다, 





임금이 도성을 떠나 행행(行幸)

할때 임시로 머무는 조선시대의 행궁은

 수원, 강화, 전주, 의주, 양주, 온양 등 10여 곳에

마련되었지만  산성 안의 행궁은 이곳이 유일하다.

지형적인 특수성을 이용해서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된 남한산성 행궁은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일반적인 행궁에 머물지 않고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이 행궁 복원을 위해 17세기말

제작된 남한산성도가 참조되고 1999년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모두 8차에 걸쳐 진행된

조사에서 행궁 상궐지와 하궐지, 좌승당, 재덕당,

 좌전, 행각건물지와 담장유구, 한남루 신축과정

에서 매립됐던    방지(方池) 등이 확인되어

그를 바탕으로  10여년에 걸쳐 복원결과

오늘의 행궁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 행궁에는 경복궁의 광화문에

 해당하는 행궁의 정문 한남루(漢南樓)가

1798년(정조22) 새워졌지만 이 한남루 역시

 1909년 이전에   이미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프랑스 외교관 프랑뎅이  1890년대에 찍은 한남루

 사진이 남아 있어 그 사진을 기초로 복원된 모습을

 본다. 그리고 1711년에는 서울의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左殿)과  손님을  맞이하는 등의    시설로

사용된 인화관도 복원되었다.     남한산성에

마련된 또 하나의 작은 궁궐모습을 본다.





이토록 2000년대 들어 행궁과

연주봉에 있는 옹성이    복원되면서

2014년 6월 남한산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다.  남한산성

 가까이 살았던 필자는 1980년대 90년대에 걸쳐 수시로

오르내리던 산책길이었다. 그때는 성 보수공사와 寺刹 등

문화재 복원공사 등이 진행되는 모습을보다가 오랫 만에

다시 가 본   남한산성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음을 보고 참으로 흐뭇한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린다.

오늘은 행궁과 함께 있는 인화관,        침과정

(枕戈亭)에 관한 얘기를 사진과 함께 더 하고

 산성,  수어장대 등  다른 얘기는 다음

기회에 더 하기로 한다.   





좌     전






죄전 전경과 앞에서 본 좌전




인화관(人和館)





 행궁 정문 밖 앞쪽에 있는

  객사의 건물로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리고 외국의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의 숙소로도 이용

하거나 행궁에 외부 방문객을 머물게

 한곳이다. 아래는 인화관 정문과

그 주젼 모습이다






화       보






앞에서 본 한남루와 뒤에서 본 한남루

왼쪽에 방지가 보인다.




왼쪽 연못은 원래의 方池를 복원한것이다.






행궁에 관한 이해를 돕기위해

전체도면을 올렸다.  외행전, 내행정,

 일장각은 문이 열려있어 마루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 볼 수는 있지만 마루를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필자가 관리인의 승인을 얻어

내부에 들어가 사진을 촬영했다.   가급적

건물위치 순서에 따라 사진을 올렸다.







외  행  전





옆에서 본 외행전




외행전 옛 모습





내   행   전







내행전 내부







내행전 옛 모




통일신라 건물지


행궁지 발굴중 확인된 신라건물지

왜행전 아래 오른쪽에 있다.









일   장   각





일장각 내부








좌   승   당








 


이   위   정












행궁 맨 뒤에 있는 문으로 산성, 수어장대와 연결된다.



















도헌 구능회 선생님 글

남한산성과 좌승지 具鳳瑞 : 용골대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가

KBS방송국장을 지내시고 문학과

음악 등에 조예가 깊은 구능회님 先祖

능성구씨 가문이었던 관계로 남한산성과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다음 글을

 보내 오셨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피난 조정에서

 최명길 선생이 이조판서, 김상헌 선생이

 예조판서로 결사항전이냐 항복이냐? 로 치열

하게 대립할 때에, 저의 선조 한 분은 공조판서로.

다른 한분은 주사대장으로 임금을 모셨습니다. 후에

인조가 청에 항복하고. 청의 간섭을 수시로 받고

 있을 때 우리 조정에서는 성곽을 보수하고

 화포시설을 강화하는 등 국방에

치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 이 사실을

청에 밀고한 자가 있었답니다. 청에서는

 이를 두고 조선이 청에 맞서려 한다고 생각하고

 문책하는 사신을 보냈는데 그 자가 바로 병자호란

 선봉장 용골대(龍骨大)입니다. 이 자는 성격이

 포악무도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여 우리

 조정에서는 아주 기피 인물이죠.


이때 남한산성 포대 설치로

 우리 조정이 곤욕을 치를 때, 청의 장수

용골대를 맞아 남한산성을 헐어버리라는 

압력을 슬기롭게 막아낸 우리 측 수석 사신은

좌승지로 계셨던 제 직계 11대조 어른이십니다. 

 그런데, 삼전도에서 청에 항복한 이래 우리

 조정과 백성들은   이 용골대에게

 참 많이 시달렸답니다. 


 그 후 이 어른께서는 인조의

 신임 하에 청과 대치하든 서북면 지역을

관리하는 평안감사로 부임하여 애쓰시다가

1644년 48세를 일기로 평양감영에서 병사(病死)

하셨습니다. 멀리서라도 이 남한산성을 보면 괜히

가슴이 뭉클 해집니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라 전철 안에서 두서없이 보내

드리오니 선배님께서 해량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구능회 배


  

남초 이정부 아나운서


26년전인 1991년 11월22일,
 저희 KBS 아나운서 몇사람이(이정부,
박기만,  허주,  조건진,  이천규, 박영주)
남한산성 한 요식 업소의 난로가에 둘러 앉아
찍은 동기 미상의 사진 한장이 있어,  그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이 보고   어떤 목적의 모임이었는지
설명해 주길 내심 바라면서, 며칠 전 페이스북에
 그 단체 사진을 올린 일이 있는데(아래사진),   
 아직 아무도   그것을 시원하게 설명
해주는 참가자가 없습니다.




배님께서 바로 그 남한산성을
 걸어서 답사하여    그 방대한 위용과
건축미, 우리가 몰랐던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삶과 역사 하나 하나를 샅샅이 조사하고 정리해서,
 일반   국민과 방송 문화 예술 종사자들에게 교과서를
 능가하는 의미를 담아 올려 놓으신 걸 보며,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젊은 아나운서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을 정도의
사적지가 바로 옆에있는것도 모른    채 목적 없이 방황했던
당시 그 무의미한 시간 낭비는 도대체 무슨 헛xx 들이었으며,
분명히 초겨울, 아나운서실 내 공식 야유회는 아니었는데,
그곳을 찾아 대화를 했던 것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면 몇 토막의 기록이라도 남기지
 못했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 날의 무의미한 작은 사건과
 선배님의 많은 국민들께 알려주고
정확히 역사 의식을 심어주고자 하시는
치열한 사명 의식과는    그 기본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구나 하고 지금에야 분명하게
 느끼게 됩니다. 서울과 가까운 남한산성에 그런
 규모의 역사적인 곳이 있었다는 것을 속속들이
알게 해 주신데 대해 거듭 감사드립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필자 이장춘은 2013년 7월
8월 9월에 걸쳐 한양도성탐방에 이어
 2014년 1월과 2월에 걸쳐 서초둘래길을
탐방했고 이번 남한산성 역사탐방 8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한양도성과 남한산성
역사탐방 글 모두를 연결했습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남한산성 행궁 역사탐방 (1) 

http://blog.daum.net/jc21th/17783132


수어장대 남한산성 역사탐방(2) 경기유형문화재 제1호, 3호

     

남한산성 역사탐방 (3) 세계문화유산 남문

http://blog.daum.net/jc21th/17783140


남한산성 역사탐방(4) 사적 제57호 남장대 터, 남옹성

http://blog.daum.net/jc21th/17783141


남한산성 역사탐방 (5) 동문 ‘벌봉’, 북문,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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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역사탐방 (6) 숭렬전, 현절사, 청량당


남한산성 역사탐방 (7) 사찰 망월사, 장경사, 국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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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역사탐방 (8) 연무관, 지수당, 천주교 순교성지 등 문화유적,



한양도성 역사탐방 글  보기


한양도성 역사탐방 종합 44편, (조선조 5대궁 5편, 관련 글 28편포함)


한양도성 역사탐방 (11) 남산 길 광희문 장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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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10) 동대문(흥인지문), 청계천, 광희문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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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9) 낙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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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역사탐방 (8) 혜화문 (동소문) - 숙정문(북대문)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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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7) 숙정문 북대문 청운대 말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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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6) 창의문 자하문 백악마루 북악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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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5) 인왕산 길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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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4) 인왕산 선바위(禪岩) 국사당(國師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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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3) 돈의문 서대문 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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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2) 정동길, 서소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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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역사탐방 (1) 숭례문(남대문)에서 남산성곽 따라, 사적 제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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