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부 : 서금랑

[스크랩] <바른 말 고운 말> 방 개설을 기쁘게 생각하며 - 2015년 수필춘추 여름호 게재 수필 전재 / 이정부

이장춘 2016. 9. 18. 06:25

아래는 이정부의 수필입니다.  수필문학 전문지인 계간 수필춘추 2015년 여름에 실렸던 '우리말 지키기' 주제로 한 글을 그대로 옮겼음을 밝힙니다.       수필춘추사 전화   (02) 2676-2102


  멘붕(men-) 이라니!  

   -이젠 말의 선진화를 이야기할 때다-            

                                                                                                    이정부(KBS 아나운서)

                                                                                     

요즘 우리 국민들은 아주 자주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또는 '선진국 문턱에 왔다' 성급한 사람들은

아예 '선진국이 됐다'고 말한다. 하기야 세계 200여 나라 가운데 20등만 해도 앞서가는 셈인데, 실제로 우리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올라있으니 선진국이라 해도 괜찮을지 모른다

 

더욱이 부존자원이 없고 우리 윗 세대가 이루어놓은 부의 축적이 없는 상태에서, 전쟁까지 겪은 나라가 이만큼

경제 발전을 이루고, 과학 기술, 스포츠나 문화 예술면에서도 세계가 주목할 정도에 이르렀으며, 이미 선진국

으로 지목 받는 서구의 많은 나라들과 비교해 비슷한 의식주와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어 '우리나라도 선진국인

가보다' 하고 체감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몇가지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해 선진국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국가사회 모든 분야가 고르게 선진화되어야 비로소 선진국이라고, 또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선진국의 요건 중 매우 중요한 것 하나는 물직적인 면 외에 정신면의 선진화, 즉 의식의 선진화가 뒤따라야 하며 의식의 선진화를 즉각 나타내주는 일상 속의 말과 어법, 그리고 언어 습관의 선진화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3~4년 전 KBS에서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생활 속 욕 실태를 조사한 통계를 방송한 적이 있는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일단 집을 나서 학교에 등교한 다음부터 하루 수업이 끝날 때 까지 친구들과 거의 욕설로 대화하며

보낸다는 기절할 내용이었다.

이후 학교나 가정에서 얼마나 아이들을 교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요즈음 사회적인 파장을 몰고 오는 부모대상 패륜범죄를 비롯해 사회 모든 분야의 부패와 불법적 범죄가 우리사회가 간과했던 국민의 언어생활

습관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직업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을 비롯해 앞으로 나라의 주인이 될 자녀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어휘와 어법, 발음 등 언어습관이 제대로 되어있는 지에 대해, 1년에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점검하고 걱정도 해봐야한다.

많은 사람들은 벌어먹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에 그런 걱정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겠지만, 국회의사당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거리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막말, 욕설, 은어 등 비속어나 비표준어 사용 실태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우리의 자랑스러웠던 국어가 무방비상태에 와있다고 할 만큼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비표준어들이 TV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공공연히 방송될 때, 우리 자녀들도 그런 언어습관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민들의 선진의식을 일깨우고 우리말의 오염을 막아 언어의 선진화를 도모해야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나 교육기관에 있지만, 가정에서도 언어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며 누구보다 TV

언론이 앞서서 바른 언어쓰기 계도에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

최근 TV종합편성채널이 늘어나면서 흥미본위로 제작해 내보내는 수다경쟁 토크쇼, 오락프로 출연자들의 질 낮은

막말, 보도 논평성 프로에 출연한 전문가군의 노골적 상호 비방성 논평등 백가쟁명에 가까운 행태는 커가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국민적 논의를 거쳐 어떤 형태로든 발전적 변화가 와야 하며, 영향력이 커진 신설 종편들의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 요구된다.


언젠가 국회의원 보궐 선거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지역의 대학 캠퍼스에 리포터로 나간 개그맨과 인터뷰를 하던

60이 넘은 중후한 남성 국회의원 후보가 카메라앞에서 멘붕이라는 신조어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입에 담는 걸

목격하고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젊은 유권자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친근감을 주기위해 의도

적으로 잠깐 빌려 썼을 것으로 이해했으나, TV라는 매체에서 비표준어, 그것도 어원이 뭔지도 모를 영.한 복합

신조어를 시회지도층이 아무런 생각 없이 쓴다는 것이 우리말을 다듬고 가꾸어 가야 하는 일에 얼마나 역행하는

 건지, 어린이를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마침내, 출연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앵커나 오락 프로그램 사회자까지도 멘붕’ ‘멘붕을 뻔질나게 쓰고

있어, 핵폭탄보다 무섭다던 TV의 파괴력을 실감케 한다.

 

멘붕은 무슨 뜻이며, 어떻게 생겨난 신조어일까?

정신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의학용어나 되는 듯 무책임하게 사용한다. 영어와 우리 말(한자어)의 조합으로 된 일종의 과장된 우스개 용 신조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정신의’,‘마음의라는 듯 뜻의 영어의 형용사 ‘mental’에다 붕괴(崩壞)라는 단어를 이어 붙여 멘탈붕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그것도 부

족해  길지도 않은 글자를 ’men-이라고 줄여버리기까지 한 장난기 섞인 무허가 언어 구조물이다.

(hot)하다, ‘해피(happy)하다처럼 열정적이다, 뜨겁다, 행복하다 등의 좋은 우리말을 두고 불필요하고 전혀 어법

에 맞지 않게 외국어를 섞어 쓰는 반 국어 적인 망동이다.

 

최근 들어 정경 유착이나 뇌물 수수에 관한 보도가 줄을 잇는 걸 보는 많은 국민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국회의원이나 관료가 없다고 개탄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다하지만 어법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나서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방송국 아나운서들이 문광부의 우리 말 지키기 캠페인의 1일 선생님이 되어 바른 말 계도에 나서고 있지만, 이에 공감하면서 어법을 꼭 지켜보려는 방송출연자들은 보기 어렵다.

헛 수고다. 오히려 각계전문가에, 사회지도층이란 사람들이 국어오염에 앞장 서고있는 듯 하다. TV에 나와 요점정리를 잘 해주어 인기를 독차지하던 미남 변호사 C씨가 어느날, “할머니가 저한테 여쭈어 보시더라구요라고 말해 기겁했다어떤 여성 리포터는 동물원 나들이에 나온 할아버지와 인터뷰하면서 원숭이가 재주가 좋으세요”..., 건강 프로에 단골로 나와 명쾌하게 도움말을 주던 의사 G씨는 스튜다오에 가져다놓은 식품을 가리키며 얘는 몸에 좋고,

재는 몸에 나쁘고...”라고 하지 않나, 반듯한 외모에 명쾌한 결론으로 인기절정인 정신과의사 J시의 때론 멍하게 있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의학적으론 좋았지만 멍 때린다는 은어를 거침없이 쓰는 가하면, 몰랐던 사람들

에게 멍 때리기 대회라는 것까지 소개 했는데 친구 간에 잠깐 주고받는 우스개라면 몰라도, TV방송 언어로는 매

우 부적절 했다. 가벼운 경고를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아나운서 출신 진행자마저도 은어 확산을 부추기는 듯했다.

 

TV 출연자들은 언어 전문가에게 물어보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물어보라. 제발 그 흔해빠진 컴퓨터 우리말 사전에라도 들어가 자신이 쓰려는 말이 표준어인지 확인해보고 방송에 나갈 것을 권한다. 한 마디 말로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자신의 인격과 명예마저 실추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아야한다.

  참고:   궁금하신분들을 위해 늘 열려있습니다.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 연구회 <우리말 상담전화 781-3838>  

             

출처 : (춘하추동방송 동우회)
글쓴이 : 컬링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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