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조남사와 한국 방송 드라마史 청실홍실

이장춘 2016. 8. 14. 11:49


 



조남사! 현대적 의미의 방송드라마

개척자다. 한국 멜로드라마는 1956년 10월

 7일부터 (노정팔 저 ‘한국방송과 50년’에서는 1956년

12월 2일로 기록) 이듬해 4월 28일까지 방송된 조남사 작

일요드라마「청실홍실」로부터 비롯된다. 이로부터 드라마

시대의 화려한 꽃이 피기 시작해서 라디오시대는 물론

오늘날의 TV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멜로드라마는

「청실홍실」로부터 뿌리를 내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조남사와 한국 방송 드라마史



아래 사진은 드라마 <청실홍실>

녹음 장면으로 왼쪽부터 강영숙, 이혜경,

정은숙, 정애란, 김소원, 장민호, 이경재 <한국

성우협회보> 제8호, 3쪽에 있는 사진으로 한국성우

협회에서 2015년에 발간한 책 '한국드라마사 성우들의

역정 60년'에 올라있다. 이경재는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

이고 강영숙은 아나운서다. 그 시절에는 드라마 녹음시

앞·뒤 멘트를 넣기 위해 아나운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 있었다.





청실홍실이전에도 방송극,

방송드라마는 있었지만 어린이극,

사극, 계몽극, 외국작품 번역극 등이 주종을

이루었고   이것도  단막극 위주의 드라마였다.

 1947년 8월에 신설된 ‘우리살림’으로 시작되어 환도 후

 ‘인생 역마차’개편되면서 상승곡선을 그은 생활드라마가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청취자들이 보내온 장문의 편지를 방

송작가들이 드라마로 쓴 것이지만 현대적 개념의 드라마라고는

 볼 수 없었다. 남녀 사랑이야기, 남녀 간의 삼각관계에 얽힌

 애·증갈등을    주제로 한   이야기 등 오늘날까지 이어

지는   멜로드라마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청실홍실」에 이른다. 노정팔 저 ‘한국방송과

 50년’ 228P를 인용한다.


「‘청실홍실 엮어서 무늬도 곱게

티 없는 마음속에 나만이 아는 수를

놓았소.’라는 주제가로 시작되는 주간연속극

 ‘청실홍실’이 시작하자마자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한 주일을 기다리는 게 지루

하다는 전화가 빗발칠 정도로 청취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23년 충북 영동에서 출생  일본 동경

 전수대학 경제과를 중퇴한 조남사는 1947년

KBS중앙방송국이 최초로 공모한「방송연기 연구생」

(뒷날 KBS 성우 특1기로 지칭)으로 방송국과 인연을 맺었다. 

 위진록 (아나운서), 민구 (연출가), 장민호(연극, 영화), 황태수,

황정순(영화배우) 등이   그 동기 성우이고 최무룡,   윤 진,

윤일봉, 이춘사, 구 민, 이혜경, 백금녀   (본명 김정분),

남해연, 박현숙 등은 그 다음해 1948년에 들어왔다. 


조남사는 방송에 출연하면서 한편으로는

 글을 쓰고 1949년 극단 ‘청막극회靑幕劇會’를 조직해서

연극 ‘마리우스.를 상연하기도 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으로 피난 간 조남사는 방송국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방송국이

 서울로 올 무렵 연출계장이 되어 인생역마차 등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연출에 임하던 중 1956년 6개월간의 미국연수를 떠났다.

노정팔 저 ‘한국방송과 50년’에서 인용한다.





「해방 후에도 임꺽정, 대원군 같은

연속극을 방송 해 보았지만 별로 반응이 없어

연속극의 불모지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56년

3월 윤길구, 한기선씨와 함께 미국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작가 조남사씨는 미국, 일본 등의 연속극 현황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집필을 시작 한 것이다.  

 

청실홍실이 크게 히트한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주인공

나기사라는 장래기 촉망되는 젊은 남성을

 둘러싸고 성격은 다르지만 지극히 착한 두 여성이

 아기자기한 애정갈등을 벌리는 멜로드라마였다는 점에서

듣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했고 그것이 전쟁으로

허전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와 닿아 교감을 일으켰던

것이다. 지금은 드라마 하면 삼각관계가 주류를

이루지만 그때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조남사는 청실홍실을 쓰면서

세상이 메마르고 거칠수록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은데 그중에서

애정문제가 가장 으뜸가는것이어서

이것을 테마로 삼았다고 했다.」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가

어느정도 복구되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어가고 도시의 전기사정이 좋아지는등 주변

환경도 달라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 드라마는 국민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켜나갔고 1960년대 국산라디오 생산

보급을 촉진시키면서(1959년 11월 15일 금성라디오 501호

 생산개시) 앰프촌 건설과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운동으로

1960년대 전국민이 라디오를듣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 드는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초의 라디오 금성 501 등록문화재 1959년 11월 15일



이 프로그램의 연출은 조남사와

친분이 있으면서 작가활동을 함께 한 이경재

 李慶哉가 담당했다. 주제가는 송민도가 KBS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을 때라 그때의 KBS경음악단 지휘자로

활동했던 손석우가 송민도의 음색과 스타일에    맞추어

 곡을 붙였다. 방송이 나갈 때는 송민도의 노래로 불렸지만

음반이 제작 될 때는 송민도와 그때 KBS전속가수가 된

 손석우의 愛弟子 안다성이 함께 불렀다. 오랜 세월

 그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출연은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인데다가

성우들의 출연기회가 적었을 때라 기성 성우들과

 함께 1기 성우 들이 대거 출연했다. 그때 출연진들의 얘기를

 모아보면 주연 나기사역으로는 장민호가 맡았고 애자 역으로는

 김소원이 맡았다. 첫 회에 1기 성우 김수일이 맡았던 윤청년 역은

위진록이 미국 VUNC에 재직 중, 부인 최창숙 아나운서 출산휴가로

국내에 있다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위진록은 조남사와 성우

 특1기 동기로 깊은 인연이 있었다. 성우 1기 윤미림이 맡았던 동숙

역은 세 번째 프로그램부터 정은숙으로 바뀌었다. 정은숙은

기독교방송 1기성우로 기독교방송 연출과장 재직 중이던

이보라의 추천으로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정은숙은 이 프로그램에서 대단한

인기를 끈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2015년

 성우협회가 발행한 한국 드라마 史 성우들의

역정에서 고은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숙이(정은숙 역)가 그야말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어요.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너무  재밌는 게   여학생들이

‘그랬잖니, 그래서 말이야’ 그래요.    동숙이 성대를

 모사하는 거예요. 정은숙은 혀가 좀 짧은 게 특징이었거든요.

‘안녕하세요?’ 이러지 않고 ‘안녕 하세요오? 어머나아~’ 이랬는데

 모든 여학생들이 흉내를 냈지요. 라디오도 지금처럼 보급 안 됐을

때인데. 그리고 다방 여자들도 ‘뭐 드시겠어요오?’ 하고.

정말 놀랐어요. 청실홍실이 이렇게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구나 싶었지요.”




청실홍실 주간 연속극이 7개월간

30회를 이어가면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이로부터 자신을 얻은 조남사는        오재경

공보실장의  적극적인 후원 등에 힘입어 청실홍실이 끝나던

 1957년 10월 1일 시행된 주간방송순서에서 일일연속극을 편성

하고 첫 프로그램으로「산 너머 바다건너」를 직접 집필해서

 이보라 연출로 방송되었다.    담당프로듀서는 이해에 방송국에

들어온 조부성이 맡았다. 1958년 3월 15일까지 78회가 계속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해설로 드라마  주요부분을

설명하면서 전개되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고

당시 최고 호화배역을 등장시켰다.


영화의 대 스타로 발돋움하던

최무룡, 윤일봉, 그리고 청실홍실에서

 연기력을 보여준 남해연, 이혜경, 오승룡,

정은숙, 고은정, 이창환, 신원균, 김수일,

김소원, 윤미림 등 특기, 1기 성우들이

등장하고 해설은 유병희가 맡았다. 





 청실홍실이 영화화되어

모처럼 호주머니가 두툼해진 조남사는

산 너머 바다건너 역시 영화화 될 것을 겨냥하면서

 심혈을 기울였다. 15분으로 편성되었던 제1부 "氷花 속에서"

 끝나고 제 2부 푸른星座 방송시간을 20분으로 늘려 저녁 7시

 40분 골든아워를 장기간에 걸쳐 일요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방송

되면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멜로드라마의 서막을 올린

 조남사는 1959년 KBS연출계장을 뒤로하고 작가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드라마를 써 나갔다. 


 이때 20분으로 편성된 저녁시간대의

 일일연속극은 그 후 20분으로 편성되는 드라마가

 주를 이루었다. 이 무렵 최고의 스타가 된 조남사 에게는

1964년 그 시절 방송인 최고의 영예의 상 ‘제7회 방송문화상’이

 주어졌다. 조남사는 그 기반이 확고해지고 이 나라 드라마 사에

 화려한 꽃을 피웠으며 그로부터 시작된 드라마는 방송의 중심을

이루어 청취율 조사 1위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 드라마 작가들은 활기를 찾고

 마이크 뒤에 가려져 한산하던 성우들은 전면에

나타나 인기몰이를 하면서 바빠졌으며 영화사는 판권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렸다. 조남사는 라디오 시대로부터 TV시대에

이르기 까지 그 특출한 필력으로 사람들을 웃기기도 때로는 울리기도

 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친구가 되어   삶을 이어오다가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글쓰기를 뒤로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다가 돌아와 1996년 8월 22일 73세로 세상을 뜨셨다. 아래

사진은 미국생활중 성우동기이자 오랜세월 인연을 맺어온

 위진록 아나운서가 아세아 서점을 개점 하던날

위진록 아나운성와 함께 한 조남사님





선풍적인 인기리에 방송되던 방송드라마는

 1960년대 민영방송의 출연으로 본격적인 경쟁시대에

 접어들면서 채널당   일일연속극만도 하루에 두 편 이상

편성되었다. KBS 제1방송의 경우 저녁 7시 40분부너 8시까지

 라디오 극장, 9시 40분부터 10시까지 KBS연속극이 편성되었고

민영방송은 드라마 연속극에 방송의 운명을 걸기도 했다.  라디오

시대뿐만 아니라 TV시대에도 그런 현상은 계속되었다.  드라마 윤리

문제가 제기 되는 등 역작용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시, 청취자는

 여전히 그런 프로그램을 선호해서 방송국으로서는 다른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60년대를 지나 70년대 TV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드라마를 써 히트시키면서

 드라마의 제왕이라고도 불렸다.



조남사 주요 작품목록



청실홍실(1956)

산 넘어 바다 건너 1957

동심초 (1959),

자매의 화원 (1959),

하늘과 땅(1961),

양귀비(1962),

동경 나그네〉(1963)

언덕 위의 하얀 집〉(1963)

일본인 (1964)

가로수의 합창(1968)

유혹 (1969)

보랏빛욕망 (1971)

선아의 호수(1971),

정情 (1972),

행복(1973),

기러기 (1974),

추풍령(1974),

비밀(1975),

맏며느리 (1976),

청실홍실 (1977)


더 자세한 사항은 관련 글을

연결하고 그 시대의 성우 윤미림 선생님의

글 한편을 인용햔다.



아픔의 시간들 - (3) ‘윤미림’ 


 


한국인들 영혼에 최초의 서광

4.19 일어나기 4년 전인 1950년대 중반,

한국에는 뜻하지 않은 서광이 내려 비쳤다.

조남사 작 <청실홍실>이 빛의 사도. 1956년 10월

7일부터 시작, 30회에 걸쳐 KBS에서 매주 일요일 밤

9시에  30분 동안 그 일요연속극은 방송되었다. 조남사님

(1922~1996)은 1943년 동경 센슈(專修)대학경제과 제학 중에

동경에서 치안유지법으로 체포되어 온갖 수난을 겪다가 동경과

한국의 형무소를 전전한 끝에,  한국인들의 사상개조기구

였던 아현동 소재   [대화숙(大和塾)]에     연금

됐다가  8·15해방과 함께 풀려났다.


1956년 가을 6개월간 미국방송계

시찰에서 막 귀국하여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KBS 문예계에서는 작가에게 연속극 집필을

의뢰, 큰 기대를 하지 못했던 한국최초의연속드라마

<청실홍실>은 그러나 한국을 강타, 지축을 뒤흔들었다.

스토리는 사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문학작품,

<청실홍실>이 나가는 날 밤에는 도시는 물론 두메산골까지

온통 관심이 그 연속극에 쏠렸다. 경상남도에 피난 갔던

 한 카톨릭 신부님은일요일 밤의 연속드라마를 들으려고

그 추운 날에 자전거로 20여리를 달려가서 건전지를

 사오기도 했다. 아직 라디오 보급이 충분치 못해,

제니스 같은 미제 중고품 라디오나마

있는 가정도 많지 않을 때였다.


아, 라디오드라마가 그렇게 재미 있는거라니~

~~-<청실홍실>은삶에 찌든 한국인들에게 처음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제 우리는 전쟁의 상처를

 훌훌 털고 일어나,   새로운 희망을 가질 때예요, 자, 모두

힘차게 일어 나세요~~~" 주인공은, 김소원 정은숙 위진록

 장민호 님들. 그때부터 라디오드라마 붐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그보다 2년 전

19세의 프랑소와즈 사강 작 <슬픔이여

 안녕>이 베스트셀러가 돠었고


일본에서는 1955년

22세의 대학생 이시하라신타로의

<태양의 계절>이 화제작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청실홍실>이 빅히트,

거의 비슷한 시기에 문학의 나래가

인류를 품에 안았었다.


4.19 이후 장면정권까지는

 한국에도국민에게 행복한 자극을 주는

 문학작품들이 몇 번 더 반짝였다. (계속)



해방공간에서의 조남사 이야기 박화목



나(박화목)는 서울 방송국의 편성과

직원이 되었다. 직제는 번역사지만, 손이 모자란

 때라 시 낭송시간을 비롯해서 몇 개의 프로그램이 내게 

맡겨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실재로 PD가된 샘이었다. 시 낭송

시간은 꽃다발 시간이라고 이름 붙여서투고 해 온 시와 또 더러는

 청탁한 시고를 엮어서주 1 회 15분 방송하는 시의 낭송이었다. 안서

선생님이 시인이라서 그 시간의 편성을 주장했다며 그 시간을 내게

맡기시기 까지는 선생님이 손수 맡으셨다는 것이다. 시낭송으로는

 남해연씨가 많이 했고 조남사씨가 성우시절에 여러번 그 시간을

기꺼이 맡아 주셨다. 조남사씨도 그 당시에 시를 좋아하는

 문학도여서 나와도 가깝게 사귀게 되었다.

 

 

 

성우 조남사와 남해연님 

  

  
“다발 꽃다발 엮어나 보세” 란 투의 서시
(안서 작) 로부터 시작되는 시 낭송방송이 무슨
대수로운 것이 되었을까.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즈음
한참 정치적인 혼란에 처해 있던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안정을 찾게 해 주었다고 생각되어진다. 한편 그때의 시 낭송시간은

 우리 시 문학에도 공헌한바가 크다. 그때 그 시간을 통해 익혀진 시인

들로는 현 중진시인인 구경서씨를 비롯해서 여럿이 된다. 한운사

(한간남) 씨도 시를 썼고 작고한 영문학자 김도성씨도 시

낭송프로를 위해 시고를 많이 써 주었다.




청실홍실의 줄거리



동방화학의 여비서로 70여명의

응모자 가운데서 한동숙(정은숙)과

신애자(김소원)가 뽑혔다. 동숙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발랄한전후파 여성이었고 애자는

시험을 주관하는나 기사 (장민호)의 전 애인이었다.

러나 그녀는 이미 결혼했다가 전쟁미망인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이 두 여인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나 기사에게

매력을 느끼고. 여기서동숙은 발랄한 성격상 적극적으로 접근

하는데 반해애자는 자기가 그렇게 좋아 했음에도 결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시집을 가서 미망인이

된 것을 후회하며 자재 하고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나 기사는 애자 편에 더 가까웠고

여기서 애정의 갈등과 대결이 여기저기서 아슬아슬

하게벌어졌다. 이런 과정의 얘기가 전개 되면서 청취자들은

마치 자기 스스로가 겪는 듯한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끼면서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고 매회 드라마 시간이 다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다음시간을 기다렸다.





놀래 청실 홍실



조남사 작사

손석우 작곡

송민도 : 안다성 노래



청실홍실 엮어서 정성을 드려

청실홍실 엮어서 무늬도 곱게

티없는 마음속에 나만이 아는

음ㅡㅡㅡ음ㅡㅡㅡ수를 놓았소

인생살이 끝없는 나그네 길에

인생살이 끝없는 회오리 바람

울어도 순정만은 목숨을 바쳐

음 ㅡㅡㅡ음ㅡㅡㅡ간직 했다오

청실홍실 수놓고 샛별 우러러

청실홍실 수놓고 두손을 모아

다시는 울지말자 굳세게 살자

음ㅡㅡㅡ음ㅡㅡㅡ맹세 한다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최초의 멜로드라마 청실홍실과 조남사님


일일연속극의 기원 산 너머 바다건너 조남사 이보라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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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실 홍실과 조남사, 손석우, 송민도, 인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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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도와 안다성이 함께 부른 최초의 멜로드라마 청실홍실주제곡

http://blog.daum.net/jc21th/17781152


성우 윤미림님의 최초의 멜로드라마 청실 홍실 출연기


위진록 아나운서 최창숙의 사랑과 삶, 가족사 실명 실화로 엮은 드라마



성우 김소원 (김연임)


장민호님 ! 방송 마이크 앞에서, 연극 무대에서 보낸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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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60년 역정 한국라디오드라마사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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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방송 시절 드라마 연출, 작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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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상만 효과 연출, 성우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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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성우 각 기별 성명 

http://blog.daum.net/jc21th/17780703  



부산 피난시절 스무고개에 노천명과 함께

출연한 조남사님 아나운서 장기범


1964년 방송문화상 수상 조남사님


조남사, 윤길구, 한기선이 1956년

 6개월간의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던중

 일본에 있던 VUNC에 들려 촬영한 사진 왼쪽부터

 윤길구, 김복자, 한기선,조남사, 위진록



청실홍실에 출연했던 뒤진록은 1993년

4월 28일서울 신문회관에서 연 "잃어버긴 노래"

출판기념회에서그시절 성우들, 그리고 최창봉, 이은주

등과 함께 했다, 왼쪽 두번째부터 고은정, 이은주(경기

민요인간문화재), 최창봉, 이혜경, 김소원, 박용기,

이경재(청실홍실 연출) 함께 한 사진이다.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YStIcUAznq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