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방송인 이상만 효과 연출, 성우 이혜경

이장춘 2016. 8. 6. 19:12

 



효과에 이상만, 연출에 이상만

드라마가 방송 될 때 마다  그 이름이 방송

되기를 40년! 그래서 그 시대를 살던 대한민국

국민이면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듯하다. 그 이름

 앞에는 직책도, 직위도 없이 그저 효과, 연출이 있을 뿐이다.  

해방되던 때 우리나라 방송드라마 선구자 김영수 선생님이 방송국

직원으로 그 이름을 올리면서   그 무렵에 함께 들어온 이가 바로

이상만이다. 그로부터 드라마 할 때마다 효과를 담당하게 되고

그 이름이 연출자, 출연자 이름과 함께 방송되었다. 그 무렵에

방송국에 들어온 분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계장이 되고,

과장이 되고 국장이 되어도 그 앞에는 늘 효과에

이상만, 연출에 ‘이상만’이었다. 



방송인 이상만 효과 연출



 그 후배들이 직위로는 윗자리에 와

앉아도 그는 개의치 않고는 묵묵히 그 일만을

 해나갔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그 이름 다 아는 이상만

이었지만 그의 최종직책은 연출계장, 연출담당 차장이었다.

방송계에 또 한분의 이상만이 있다, 그는 방송인임과 동시에

음악평론가요, 현존하는 80대 중반이시다.  이분에

관한 얘기는 다음기회에 올릴 것이다.  






방송에서 필수 불가결한 효과,

 연출, 해방 후 오랜 세월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 이상만! 그는 효과라는 불모지에서 소리를

개척해나갔다. 일제강점기에도 연극이나 방송극에

소리를 삽입하는 기본적인 도구가 있었겠지만 녹음이

여의치 않던 시절 소리를 내는 기본적인 도구들을

스튜디오에 모았다. 그가 모으고 그가 고안해서

 제작한 도구는 생활용품도 있었고 새로

고안된 각종 도구들도 있었다. 





 필자가 방송국에 들어가 그런

소리들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기위해

 드라마 전용 녹음실인 남산 제3스튜디오를

찾은 적이 있다. 드라마에 삽입되는 각종 소리는

스튜디오 안에 비치된 간단한 도구들을 조작

해서 내는 소리들이 대부분이었다.





전분 가루를 작은 자루에 넣어

눈 밟는 소리를 내듯이 희한한 도구에서

우리가 살면서 들을 수 있는 별의 별 소리가 다

났다.  그리고도 부족한 소리는 효과요원들이 입이나,

손, 발 등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소우는 소리,    닭 우는소리, 사자, 호랑이, 개짓는 소리,

바람소리, 소나기 오는 소리, 천둥소리, 태풍소리,

파도소리 등 대부분이 실제 도구들을 사용

하거나 효과요원들의 입이나 몸짓

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필자가 그 드라마 스튜디오에서

드라마 녹음하는 것을 처음 본 것이 1964년

이어서   그때는 이상만이 효과음을 담아 제작한

 SP판이 보급되었을 때이지만 여전히 그런 도구들 또

효과요원의 몸짓에서 나오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삽입

되었다. 지금 듣는 육성은 우리나라 방송개시 88주년을

 맞아 2015년 2월 15일에 실시한 특집방송에서 1954년

1기 성우 김수일, 현역 효과요원 안익수, 필자

이장춘이 스튜디오에서 방송한 내용 중에서

 효과음에 관한 얘기를 딴 것이다.  





해방되어 단막극으로 실시되던

 방송극은 ‘똘똘이 모험. 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으로부터 연속극이 출발했고 성우라는

이름이 있기 전 1947년과 1948년 두 차례에 걸쳐

방송연기 연구원을 모집해서   방송드라마에 임했다. 

 이때 뽑힌 연기인들에게는 뒷날 KBS성우 특1기, 특2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상만은 이 특2기 연기연구생 이혜경과

눈이 맞아 1949년 결혼에 이르고 일생을 같이 한

효과의 개척자로 연출가로     또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성우가족을 이루었다.





소리로만 듣던 라디오 방송시대에는

방송실시 일련의 과정들이 청취자들에게는

 몹시 궁금한 시항이어서 방송국을 찾아   그 실제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 방송국은 관광명소 제1호가

되기도 했다. 또 방송국에서는 큰 극장 등을 빌려 드라마 제작

과정 등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방송실연 대회를 열어 그 모습을

보려는 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도 했다. 오래된 얘기지만 1949년

가을 서울 명동에 있는 시공관        (뒤에 국립극장이 되었가가 예술

극장이 되었음)에서 열린 방송 실연대회는 복혜숙 등 일류성우들이  

참여 드라마 방송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재로 효과를 넣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실연대회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다. 음악평론가 황문평이 1984년 7월호에

남긴 글중에서 인용해 다음 글을 올린다. 



황문평님 글중에서 1984년 7월호 월간방송


여기서 한 목보는 효과원 이상만은

 원맨쇼론 해야만 했다. 붓대로 만든 피리로

 황소 울음소리, 고리짝에 팥을 담아 키를 까불듯

해서 비오는 소리를 내었고 밥공기(나무로 만든 것)를

 마룻바닥에 두들겨서 말달리는 소리를 내는 등…….

이상만의 묘기(?)를 마술사의   신기처럼 .객석

에서는 웃음과 함께 감탄사가 연발했었다.







얼굴 없는 이상만, 이혜경 부부는

라디오방송 시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방송가족이었다. 1965년 주간방송지에서 이상만,

 이혜경 방송가족을 찾아 실은 기사가 있어 올렸다. 이상만,

 이혜경 부부의 얘기와 사진은 춘하추동방송에 가장 많이 올라

는 인물 중의 한분이기도 하다. 해방후 6.25전 이덕근 연출과장,

이백수 연출계장,     6.25 뒤 조남사를 계장으로 한 연출계에는

 이상만의 효과, 연출,    이혜경의 연기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상만은 효과와 함께 연출을 하다가 1959년 그 유명한

 조남사가 연출계장을 뒤로하고     가 활동만

하면서 그 뒤를 이어 연출계장이 되었다.






1979년 정년 때까지 이어진 주요

 프로그램의 연출이   이상만의 몫이었다. 

 그 중에서도 1964년 5월 18일 프로그램이 신설

된 후 우리방송사상 최다 방송회수를 기록한 일일

5분극 낮 12시 55분에 방송되고 밤 9시 55분에 방송된

김삿갓 북한 방랑기 ( 7.4남북 공동 성명 발표 후에는

김삿갓 방랑기) 는 님이 사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1,000회, 2,000회, 5,000회 때에는    그의 주관

하에 큰 기념행사를 열기도 하고 기념

특집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님이 1979년 7월

정년퇴직 이후에도 김삿갓 방랑기만은 그의

몫이었다. 5,000회 때의 동아일보 이상만 인터뷰

기사와 함께   7,000회 때의 관련 기사도 있어서 함께

올렸다.   김삿갓 북한방랑기는 2001년 4월까지 37년간

11,500회가 방송되어 방송사상 최고의 회수를 기록했으며

 제1방송에서  뿐만 아니라 대북방송 등 각 채널 주요

방송 시간대에도 방송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이었다.




 

동아일보  78.3.11




동아일보   84.9.4



님이 1979년 7월 정년퇴임을 맞았을

 때는 신문 등 매체에서 어느 방송인보다도

많은 지면을 할애 해 기사를 썼다. 여기 그

대표적인 기사 두 편을 골랐다. 





동아일보 79.7.28



 경향신문 79. 7. 29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 까지도 오직

한길을 걸어온 이상만 선생님은       2002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그의 효과는 대한민국

모든  방송사의 뿌리이고  그가 양성한 효과요원, 성우는

KBS뿐만 어나라,     이 나라 모든 방송사에서 활동해서 그는

대한민국 효과와 성우 등 방송 드라마사에 혁격한 공적을 남겼다. 

 님의 부인이자 또 한분의 유명인 이혜경 선생님은 오랜 세월 살아온

서울 명륜동에서 사셨는데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으로

옮기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5년 한국성우협회에서

한국 라디오드라마사 성우들의 역정’을 발간

하면서 후배 성우 박상일이 인터뷰

해서 올린 글을 보았다.



님과 함께 한 사진 몇장 더 올렸다.




 1953년 4월 부산 임시 중앙방송국 앞뜰에서

 이상만님을 비롯한 방송국 직원들이 함께 한 사진.

 번호따라 2.이상송, 3.송영호 5.강찬선, 6.노천명, 7.김창구,

 8.방필주, 10.이상만, 11.안병원, 13.조백봉, 14.강정수,

15.문시형, 17.배준호, 19.최요안, 20.김용환,

 21.강익수,  공승규, 조규택님





1956년 대구에 있는 제5공군단

 위문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 그

 비행기 앞에서 촬영한 사진. 3.김인숙, 4.이경희,

5.송민도, 8.김석야, 12.김창구, 13.유해룡, 14.노명석,

17.손석우, 20.김성열, 21.송민영, 22. 5공군단장,

23.임택근, 24.송영수, 26.문시형, 27.명국환,

28.장기범, 30.이상만 님이 함께




1957년 연속드라마의 기원을 이루는

산너머 바다건너 프로그램을 녹음하는 장면.

연출 이보라와 효과 이상만, 출연성우 이창환, 이혜경,

김수일의 모습이 보인다. 산 너머 바다건너」우라나라 방송사에

 있어서 일일연속극의 기원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KBS 연출계장 조남사가

 1956년  한기선, 윤길구와 함께  6개월 간의 미국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바람을 불러 넣은 일요일에 방송되는 청실홍실 주간 연속극이 30회를 이어가면서 

크게 히트하고 또 그 무렵부터 주간 연속극이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얻은 조남사는   오재경 공보실장의  적극적인 후원 에 힘 입어 그해 10월

1일 시행된 주간방송순서에서 일일연속극을 편성하고 첫 프로그램으로

「산 너머 바다건너」를 직접 집필해서 이보라 연출로 방송되었다.

 담당프로듀서는 이해에 방송국에 들어온 조부성이 맡았다.



 

1959년 KBS극회 회원들과
 뒷줄 왼쪽부터 유근필, 노정팔,
정애란 이혜경, 김희창, 이상만, 임옥영,
이창환, 밑의 왼쪽부터 서계영, 장서일




원로방송작가 김희창, 음악  김용환과

함께 한 이상만 효과에 이상만 음악에 김용환은

 오랜 세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대한민국 효과음의 창시자 이상만,



 효과 이상만과 1948년의 성우특기 이혜경은 1949년 부부방송가족이 됨.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이혜경 염석주

김순원, 이옥희, 이흥자 학생이 출연했고 김순원,

이흥자 학생은 1960년대 성인 성우로도 활동했다.

김순원은 여자 아이역, 이흥자는 남자 아이역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이 무렵 이상만은

 연출,효과에서 여러 재능을 발휘했다.



왼쪽 앉은 이부터 이상만, 박복수(현 재미시인)

위진록 (6.25 첫방송 아나운서) 복혜숙(방송할머니), 민구? 

뒷줄 장민호, 염석주 등 출연 방송드라마 방송모습



방송인 이상만에 관한 글을 읽으신

재미시인 박복수 선생님께서   위 사진을

보시고 특별한 글을 보내 오셨기에 우선 보내주신

글 원문을 여기에 옮기고 추후 박복수 선생님에 관한

 글을 써 올릴때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이 사진과 함께 촬영했을 법한 사진

한장을 밑에 올려드립니다.



박복수 선생님 글



이상만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열일을 재치고요.

놀라운 일은 그 속의 복혜숙 선생님 오른편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저에게 유일한

 방송사진,    단 한 장 밖에 없는 방송 사진에 입은 그

옷차림에 놀랐구요. 저의 오른쪽 앞에 이상만 선생님이

 앉아 계시고 저의 뒤에는      위진록 선배님이 서

게시고 낮 익은 장민호 선생님도 계시군요.


구민 그분은 우리가 방송할 때 중학생

교복을 입고 늘 와서 우리를 지켜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낮 익은 이름은 천선녀, 민구.


민구 그 어른은 혹 '황진희'

영화를 찍으신    윤인자 라는 영화

 배우의 남편이시었던 분의 이름 같은데........

더구나 '모나리자' 다방, 그 곳이 바로 조남사 선생님

 소계받은  장소입니다.그 곳이 제가 방송인으로  탄생한

자리입니다. 부산에서 대북방송과  최무룡 선생님이랑

 일선에 가서 노래도 부르며  장병들을 위문 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리고 1952년 복학해서 

방송계를 떠났습니다.



 


1960년 4월부터 방송된 임희재 작

홍두표 연출「애증산맥」 (탄광촌의 애환) 을

시작하면서 촬영한 사진. 프로그램 출연진은 60년대를

거쳐  70년대까지 방송드라마에 주축을 이룬 성우들이었다. 앞줄

 왼쪽부터 오승룡, 오정한, 가운데줄 왼쪽부터 김영옥, 옥경희, 김소원,

이혜경, 홍두표, 뒷줄 왼쪽부터 최인봉, 이상만, 박동근, 임희재, 주상현, 이순재

김영옥, 이순재는 지금도 TV화면에서 그 모습을 보며 라디오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김영옥은 여학교시절 연극활동으로 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텔레비젼방송국 HLKZ의 텔런트로 부터  아나운서 성우

등으로 오랜세월 인기를 누려왔다





1964년 4월부터 37년 동안 무려 11,500회가

방송되었고  제1방송 저녁 9시 55분과 낮 12시 55분을
비롯해서 제 2방송등 이 방송 저방송에서 재방송되어 하루에
10회에 가까이 방송 되었어도 지루하다는 마음을 갖는 청취자가
없었습니다.  5분이라는 짧은 프로그램이었지만 10분 드라마
못지않은   원고료가 지불되고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작가와 성우가 모두 이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1982년 제19회 방송의 날에 국민훈장 수훈 / 노일익님 제공 



TBC 동양방송 광복 20년을 끝내면서 함께 한

 기념사진 위 왼쪽부터 구민, 유기현, 장민호, 최희준

 김교식,  김영식,  000,  김수일,   아래사진  왼쪽부터 

이상만, 000, 오필탁,   유근필,  000,  김해근   (현

와우정사 창설자), 차재완,  000, 000, 조병성,




이홍수 중앙방송국장(13), 이상만님을 비롯해서

 1.송한규, 2.김주환, 3.인주희, 4.배덕환, 5. 5. 7. 8.박상진,

9. ,10.김정자, 11.박종설(장기범 아나운서 부인), 12.장기범,

13.이홍수, 14.이광재, 15.정인식, 17.최계환, 19. 20.전영우,

 21.김동건, 23.이상만, 27.박종세, 28.박은상, 30.유병은,

 36.이규항, 37.변정호님 등이 함께 했습니다.  

-남산 연주소 현관-




1964년 6월 14일 「155마일 전선」일선장병

위문공연 출발에 앞서 스텦과연예인들이 남산 연주소

 현관앞에서 촬영한 사진  2,송영수(PD), 3.조애희(가수),

4.장기범(방송과장), 5.정수란(가수), 6.최선미(가수), 7.강정수

(국제방송국 PD), 8.박규진(엔지니어), 10.김영운(만담), 12.김인배

(경음악단장), 17.현인(가수), 18.윤길구(중앙방송국장), 19.박은상

(국제방송국 대공과장), 20.박재란(가수), 21.나애심(영화배우, 가수),

22.이상만(연출,PD) 23.고춘자(만담), 24.동방성애(가수), 26.송영규

(아나운서),     27.문시형(TV편성과장) 등그 시절의 이름있던

 연예인과 방송국 간부와 PD, 사회자가 함께 한 사진



이계원, 윤길구, 문시형, 조경희 등 원로방송인과 함께 한 이상만



방송개시 88주년 기념 특집방송을 마치고 촬영한 사진

KBS라디오 스튜디오 2015년 2월 15일



아래는 출연진과 제작진이다.

왼쪽부터 폴리 아티스트 안익수,

진행시사평론가 유승채박사, 성우 1기

(1954년) 김수일, 이장춘방우회

이사, 프로듀서 안정균




1924년 12월 9일 시험방송으로부터

1960년대까지 방송이 걸어온 이야기를 세사람의

입과 스튜디오에 등장한 생방송시대의 효과도구 등이

등장되어 드라마 등에서 사용된  효과음이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지를 직접 재현 해주면서 그 시대의 인기드라마

 청실홍실, 꽃피는 시절,  산너머 바다 건너, 현해탄은

 알고있다 등 체험을 통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방송 초기 열악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평생을 바쳐 방송의

 효과음에 기여하고 가셨군요.어렴풋이 ......

"효과에 이상만.....이상 여러분이였습니다" .

라는 라디오 연속극등이 끝나면 들리곤

 하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전영자 (테리송 Terry Song) 선생님


선생님. 잊지 않으시고 보내주시는

소식 감사합니다. 아직도 방송 소식 이라면 제일

반갑습니다. 오늘은 특히 환도 직후 성우들에 소식을

읽고 반가웠읍니다. 그 당시 늘 엄마. 이혜경 선생님. 할머니

복혜숙 할아버지 서월영. 윤일봉 선생님등 다 반가운 이름

 들입니다.이장춘 선생님의 노고로 많운 사람들이

 행복 합니다. 다시 뵙게 되길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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