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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고택 성씨고가에서 머문 하루 양파시배지 성대경 임국희 성기학회장

이장춘 2016. 4. 16. 06:48

 

 

참으로 뜻 밖에 창녕 아석고택

  我石古宅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것도

근대한옥 건축의 기원이라고 하는 일제강점기

1920년대에 지은 그 옛집에서의 2016년 4월 11일 밤은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조선의 선각자이자 萬石꾼이

살았던 그 집,    오늘날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355호로

지정된 그 집에서 머문 하루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창녕 아석고택에서 머문 하루 양파시배지 성대경 임국희 성기학회장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석리 이 마을 앞

주차장에서 내려 우선 마을 전경을 촬영했다.





넓은 양파 밭을 지나 고택들이 좌우로

길게 줄지어 있고. 마을 중앙부 뒷동산에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이 대나무 숲 앞에 있는 고택들이 1920년대에

 세워진 원류 고택들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355호를 비롯해서

아석헌 我石軒, 석운재, 청수당이 있다. 사진 왼쪽의 나무숲이 보이는 곳은

1940년대에 지은 고택으로 논의 흙을 파 올려 만든 작은 동산에 조성한 큰 정원과

 깊이 패인 대한민국 지도 모형의 깊은 연못이 있다. 오른쪽 새로지은 건물은 옥내,

옥외 연회장으로 쓴다.    2016년 4월 11일 저녁에 있었던 한국아나운서클럽

 연회도 여기서 열렸다. 이 고택의 대지는 모두 만평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주차장에서부터 도보로 걸으며 이 고택의 주인이자

영원무역 성기학회장의 설명을 들었다.






제일먼저 들린 곳은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355호로 지정된 1928년에 지은 건물 '경근당' 이다.

'경근당'은 성기학 회장의 할아버지 석민 성낙안 선생이 지어

90년 가까운 세월을 이어왔다. 성낙안선생은 임국희  회장 남편인

성대경 교수의 아버지 석운 성낙성과 형제간이다. 성기학 회장 아버지는

성재경선생으로 성대경 교수와 종항간이다. 따라서 성대경 교수와  성기학

회장은 당숙질간 이기에 임국희 회장은 성기학회장의  당숙모가 된다. 이 집을

지은 성낙안 선생의 손자이자 임국희 회장의 당질인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

 오늘날 이 경근당을 비롯한   고택의 주인으로  바쁜 일들을  뒤로하고 

직접  설명을 해주셨다. 위는 건물의 특징 등을 설명하는 성기학 

회장 모습이고 아래는 정원에서 참여자가 모두 함께 한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원들이다. 




함께 해 주신 분 성명 남, 여 가나다 순 

  김광일, 김규홍, 김병래, 김승한, 김영순, 김재익, 

맹관영, 서경주, 송현식, 이기호, 이보길, 이장춘, 이종태,

이현우,  이형균,  이후재, 정도영, 정연호, 주건국, 홍승택,  

황  량, 김규은,  김채영, 남궁미, 박민정, 박찬순, 배유선,

성선경, 안종순, 안희재, 윤영중, 윤희자, 이정애,

 이혜옥, 임국희(회장), 전옥수, 정흥숙,

 조영숙,  차기정, 채영신, 황인우





고택은 대지 내에 안채, 사랑채, 창고 2동,

 대문채, 화장실 등 총 6동의 건물이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앞에 사랑채와

중문 채를 두고,  이 집 앞 마당 좌, 우 양족에 토담으로

 짛은  큰 곳간 (창고) 두 채가 있다.    성기학회장은 이

 창고를 가르치며 미곡상회를 해서 돈을 번 것이라고

하면서 그때 사용한 창고라고 했다.






앞에 있는 중문채에서 필자가 하룻밤을 지냈다. 

 이 방을 배정받을 때는 몰랐지만 자고 일어나 아침 일찍

방 뒤쪽의 창문을 열고 바라보이는 집을 보니 바로 어제 처음

들려 성기학회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던 그 집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대문을 통해서 그 집을 다시 찾아 집 주요부문을 촬영했다.   오른쪽 방은

문이 열려있었다. 큰 통나무로 문턱을 만들어 아주 높았고 그 문턱과 비슷한

 높이로 방이 조성되어 있어서 다른 한옥과는 달랐다. 가운데 부문의 창문을

열었더니 대청마루 지금으로 말하면 거실이었다. 여기에 소파가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귀빈접대용으로 쓰이는 공간이라고 생각되었다.  방문은

들려 있었고 대청 한쪽 문 위에 山海崇深 (산해숭심)이라는 큰

현판이 붙어있다....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 는 뜻이다.







현판,山海崇深 (산해숭심)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 는 뜻이다. 서예의 대가

맹관영 아나운서가 풀이해 주었다.





여기서 필자가 머문 중문채를 촬영 해 보았다. 

아래 왼쪽 건물의 창문이 보이는 방이 필자가 머물렀던

방이다. 옆방에서는 김광일, 정도영 두분이 기거했다. 방을 배정

받았을 때는 위치를 잘 몰랐지만 자고 일어나 방 뒤에 있는 창을 열고

바라보니 어제 처음 들렸던 제일 오래된 그 건물이었다.   방을 나와

오른쪽 대문을 통해서 다시 그 건물 앞에서 필자가 머울렀던 방을

 촬영 해 본 것이다. 오른쪽의 건물은 토담으로 지은 창고다.

 큰 미곡상을 했던 관계로 마당 양편으로 거대한

 2개의 창고를 지어 운영했다.




 


위 대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와

 왼쪽을 향해서 가다보면  석운재, 청수당, 

아석헌 순서로 대나무 밭을 등지고 있다. 바로 옆집이

석운재인데 석운은 성대경 교수 부친 성낙성 선생의

호로 성낙성선생이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





이 석운재에서 아침 산책중이던 김승한 아나운서를 만났다.





석운재 바로 옆집이 청수당이다.

청수당은 이곳에 자리한 성규호 선생님의

 4대손이자  아나운서클럽 임국희회장의 남편 성대경 

교수가 1933년에 태어난 집으로 어린 시절 이곳에서 살았다.

임국희 아나운서는 결혼식을 올리고 시가 어른들께 인사 올리러

온 것이 처음 길이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교통사정이 좋아졌지만

그 시절 여기 한번 왕래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앞에 붙은 큰 현판 글씨는 석운재 현판과 함께 성대경

 교수의 친구 정도준선생이 써준 것이라고 했다. 






위는 남편 성대경 교수가 태어나 어린 시절

살았던 청수당에서 임국희회장이고 아래는 어린

1962년생의 어린 딸과 함께 청수당을 찾았을 때 파초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1962년에 태어나 1966년 5살이

 된 이때의 어린 성은애는지금 55살이 되어 단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국제대학원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영문 소설을 번역,다수의 출판경력이 있다.







청수당의 옆집이 아석헌으로 이곳 창녕에

자리잡은 최초의 할아버지 성규호 선생이 살던 

집이다. 고택 일부가 랫동안 폐가로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했다고 했다. 아석헌은  여러채의 고택으로 구성되어

 있고 넓은 정원을  갖추웠다. 아석헌에서 윤영중, 성선경, 

김규은 등 여자 아나운서분들이 머물렀다.









여기서 왼쪽으로 돌면 동산과 연못을

중심으로 여러채의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1940년에 지은 건물로 독특한 한반도의 모습을 한

4-5m의 깊은 연못과 연못을 만들기 위해 파 올린 흙으로

동산을 만들어 조성한 정원이 특징을 이룬다.  집을 지을때

부터  큰 정원수를 심어 완성된   정원을 만들었다고 했다.  

6.25때 서류를  불태우다가   잘못해서 집에 불이 붙어  

일부가 타 없어진 것을 뒷날 복원했다. 여기 조성된

아석고택은 경상도, 전라도 등지의 품격있는

고택을 옮겨 지은 건물도 있다고 했다.




큰 돌에 한자로 석문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에 물어 보았더니 동내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의 지형으로 조성한 연못











엣 것이 사라져 가는 아쉬움속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고택을 보존, 복원하는, 그것도 공공기관,

단체도 아닌 개인이 많은 비용을 들여 하고 있는 일에

찬사를 보내며 이 글을  보완 해 보려는 생각이다.





아석고택 마을 앞 넓은 밭에는

양파가 심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마늘 밭인줄

알았는데 여기에 양파 시배지 비가 서 있고 또 설명을

들으면서 이곳이 양파 원고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성명판에

나오는 성재경은 영원무역 성기학의 아버지이고 따라서 양파를

처음 들여온 성찬영은 성기학회장의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이곳

성씨 집안에서 이룩한 또 하나의 큰 업적이다. 설명이

쓰인 표지판과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가름한다.






양파는 1908년 원예모범장에서

시험재배 되었다는 문헌기록이 있다.  이듬해인

 1909년 이곳 대지면 석리 아석가의에서 우석 愚石 성재경

선생의 조부 성찬영 선생께서 처음으로 양파를 재배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채종을 하기도 한 성재경 선생이 한국전쟁

 직후, 농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보리대신 환금작물로 양파를

 재배하도록 적극 권장하였다. 또한, 1963년성수, 하재호,

성재경선생 등이 창립한 경화회(耕和會)가 양파

 재배를 확대하는 일에 주축이 되었다.







화     보















왼쪽 성선경 아나운서, 창녕성씨란다.

창녕성씨는 고려말에 생성된 오래된 성씨로

 조선조 말의 선비 성규호 선생님이 어떤 연유로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어찌 되었던  이곳에서 큰 뜻을 이루웠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1박 2일의 창녕 성씨 고택 방문 기행문을

사진을 곁들여 자세히도 쓰시느라 춘하추동방송의

 이장춘 국장님 노고가 크셨습니다. 전 세계인들의 건강야채

 양파를 우리나라에 처음 재배한 곳이 창녕이고, 임국희 회장님의

시댁 조상이심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고택의 어디하나 손 갈곳

없이 민간의 힘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는게 크게 본이되는 일입

니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를 닮은 연못이 저는 제일 부럽습

니다.   이장춘 국장님께서는 자료를 찍으시느라고

한장면에도 보이지 않으셔서 아쉽습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성씨 가,의 고즈넉한 고택 풍경 구경 잘 했습니다.
보는 곳 하나 하나를 카메라에 놓치지 않으시려는  이 장춘

 사장님!의 배려가 멀리서도 엿 보입니다. 대한민국 지도처럼 보이는

연못이 특이하고, 카메라 샷터를 누를 때마다 해 맑은 미소를 짖고 계시는
방문객들의 표정에서 그때의 즐거운 기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옛 것의
 소중함을 

일 깨우기 위하여, 지금에도,온고이지신(溫古以知新)이란 말이 회자 되는가 봅니다.

이 뜻깊은 자리에 모습을 보이셔야 할   이장춘 사장님!은  또 촬영 감독 임무를

완수 하시느라 사진 속에는 없습니다.요즘 카메라는 샷터타임,으로 해 놓고

 와서 같이 찍으면 되는데요. "구경 한 번 잘 했어요. 창령의

성씨 고택" 고맙습니다. 이장춘 사장님!



김병래 (아리랑) 아나운서님



2016.04.16 21:30 우리 주위에는

남이 안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남을 즐겁게

때로는 남에게 유익한 일을 베풀에 주시어 매우

보람되게 사시는 분들이 있는 줄 압니다. 그 중 이선배님도

그렇게 멋지게 사시는 분이 아닌가 하며 무척 부럽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이번 창녕에서도 남이 할 수 없는

 여러 장면들을 다양하게 포착하시어 작가 이상으로 포괄적인 내용을

 실어 주심은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양파 단지의

사진은 평소 제가 즐겨 그리는 그림 소제와 비슷해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고맙고 수고 많이 하셧습니다.가

내 건강과 행운이 가득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부산에서 김병래 드림



김경숙 아나운서님



이장춘 국장님 감사합니다. 창령에

 갈기회가 있었는데 번번히 가지못하여 아쉬었

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고댁을 볼수있어 행복합니다.

임회장과 오십년넘게 가까이 지내고있으나 시댁이 대구라는

 이야기만 했지 전혀 몰랐습니다. 젊어서 서로가 바쁘게살아 집안

 이야기할 여유가없었던것같네요. 어른모시고 다소곳한 임회장을 보고

 너무생소해서 이런때도 있었느냐고 통화하고 웃었답니다. 세수물과

 양치질하실 물도 올렸답니다.      딸과 찍은 사진은 우리가 그때

 늘보던 모습이라 반가웠습니다.     효녀 딸이라 주일마다

부모님 점심을 자기집에서 대접한다고 해서 딸없는

 나를 부러워하게한답니다. 국장님 아름다운

고택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부 아나운서님 글



2016.04.18 00:19  山海崇深이라는

글씨가 걸린 중문채(귀빈용 거실)에서 1박 하시며

다소나마 피로를 푸신 탓일까요, 클럽회원들의 첫 날 만남

소식을 즐겁게 읽고 '속편은1주일 쯤 후에나 올려주시겠지...' 하고

예측하며 저는 어제와 오늘 바쁜 일로 형네 집을 다녀오느라 오늘 밤

조금 전에야 <춘하추동방송>을 열었다가 놀랐습니다.   이미 1929년에

건축한 <석리의 성씨 고가>에 대한 모든 것과,   그보다 20년 전인 1909년

 한국최초로 재배가 시작된 양파재배지의 모습(화보 45장), 아나운서 기념촬영

 (화보 14장), 게다가 창녕 고분군과 박물관 槪觀과 안내도( 화보 31장)등,

무려 100 여점의 영상 자료와, 명쾌한 해설, 아석 고택의 문화사적

 가치와 방문의 의미등을  자세히 올려 주셔서,  저희는 안방에

 편히 앉아 모처럼의 귀한 수학여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전통한옥과 부농의 실용성 있는 가옥을

절충한 양식의 고텍에 정원수,   경내 연못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중국이나 일본의 기교적이고 날렵한

고택과 달리 자연스러움과 우아함, 투박함 속의 편안함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한세기에 걸쳐 대를 이어

자비를 들여 보수, 증축등으로 오늘까지 보존해오신 성씨 일가의 민족적 

자긍심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경의를 표하여 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한 된

 시간에도 아나운서클럽 특별회원의 혜택도 마다하시고, 참여 못한 많은

 회원들을 위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처럼 완벽하게 취재보도해

주신 '청사없는 방송국 <춘하추동의> 연봉없는 방송국장'

이장춘 선배님의 노고와   사명감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정부 드림



이후재 (시인, 아나운서) 선생님 글


 

이장춘 국장님께!

'창녕 고택 순방 영상'을 잘

봤습니다. 저는 '양파 시작비'에

느낌이 커서 시 한 편을 써봤

습니다. 한 번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후재 : 전 KBS 아나운서, 원주방송국장

국제PEN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언론인

협회 이사 시집: '새날은 새들이 쫀다' 등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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