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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은 경기도이고 여기서 남쪽으로 청계산을 넘으면 경기도가 아닌 서울 원지동이 나온다. 경기도 밖에 청계산 넘어 서울이 있는 샘이다. 1980년대 필자가 과천에 살던 때는 주로 과천에서 청계산을 넘어 서울 남쪽 원지동으로 갔지만 과천을 떠나면서부터는 과천 에서 원지동을 향해 청계산을 넘기도 하고 원지동에서 청계산을 넘어 과천으로 가기도 했다. 이번에는 2016년 1월 12일 신분당선 종점 정자동에서 친지들과 만나 점심식사를 마치고 신분당선 개통된 후 처음으로 신분당선 청계선 입구 역에서 내려 원지동 원터를 지나 청계산을 넘었다.
과천과 청계산 관악산의 추억 청계산을 넘으며
1960년대 과천은 농촌이었다. 시흥군 과천면, 관문리에 상점과 농가들이 혼재 해 있었고 그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인 논, 밭을 중심으로 농가들이 띄엄띄엄 자라하고 있었다. 남태령 자갈길, 차선도 없는 1차선 버스길에는 가끔가다가 시외버스들이 힘겹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 무렵 과천은 서울 주변의 전원주택지로 부상되기도 했다. 중앙대학교에 다닌 동생 생활을 생각해서 흑석동에서 살던 필자는 걸어서 과천을 다니며 머지않은 장래의 전원주택을 꿈꾸었다.
제3한강교가 놓이기 전 신사동, 논현동, 삼성동 배추밭 한 평에 2,000원 하던 시절, 과천 논, 한 평에 3,500원이었으니 지금 강남 땅값의 거의 배가 되는 값이었다. 그래도 필자는 그곳에 끌려 400평의 논밭을 샀지만 그것은 헛된 꿈이었다. 1970년 듣지도 생각지도 못한 그린벨트가 선포되었다. 1970년에는 그 절반정도가 해당되더니 1971년 확대되어 과천 대부분이 그린벨트가 되고 말았다. 얼마 안 있어 대공원을 만든다, 경마장을 만든다. 해서 거기에 해당된 땅들은 모두 수용되었다. 지금이야 실거래가로 보상을 해 주지만 그 시절에는 말도 안 되는 값으로, 좋은 말로 해서 헌납하다 시피 했다. 그래도 과천에 미련이 있어서 1980년대 과천과 개포동에 KBS사원주택을 짓는다기에 과천을 선택해서 과천으로 가 살게 되었다. 운명의 신이 필자의 마음을 과천에 얽어매면서 인생의 숱한 사연이 싸였다. 그 얘기를 다 털어 놓을 수는 없지만 1월 12일 청계산을 넘으면서 머릿속에서는 그 추억 필름의 영사기가 돌고 있었다.
관악산과 청계산은 산 오르기를 좋아 했던 시절 수시로 오르내리던 등산길이었다. 특히 관악산은 날마다 오르내리는 산책길이었다. 원지동 원터 마을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기 전 200년 가까이 자란 큰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오래된 마을의 상징이자 서초구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서초구는 느티나무를 區木으로 정하서 보호하고 있다. 서울시 보호수 22-25-26로 지정된 이 나무는 2009년 1월 기준으로 둘래가 370Cm이고 높이가 25m이른다.
큰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원터 마을길로 오르면서 등산은 시작된다. 이 마을의 위 끝자락에 정자가 있고 200년 넘은 굴참나무가 있다. 여기에는 원터 유래를 알리는 작은 석비가 서 있다. 그런데 이곳 정자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눈을 찌푸리게 한다. 어쩌면 저 현수막을 이 정자에 걸어야만 했던가? 하늘이 맑은 날이어서 그리 추운 줄은 몰랐지만 계곡의 물은 모두 꽁꽁 얼었다. 예전에 좁은 길 따라 오르던 것과는 달리 길은 넓어지고 마사토로 정비되어 있었다.
옥녀봉 정상에 서 있는 경관조망 안내판
옥녀봉에서 본 청계산 매봉
옥녀봉에서 본 과천과 관악산
매봉으로 넘으려 했으나 시간상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옥녀봉으로 향했다. 해발 375m 그리 높은 산은 아니어도 필자에게는 오르내리기 좋은 산이기도 했다. 옥녀봉에 서있는 안내판, 우면산을 향해서 과천을 향해서 몇 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경마장 오른쪽 길을 택해서 좌우로 펼쳐진 그린벨트 길을 따라 걸었다.
허허벌판의 그린벨트 길가의 토지는 빈 땅으로 있거나 비닐하우스가 씌여진 화훼단지가 줄이어 있고 저 멀리 큰 길가에는 그린벨트를 풀어 새로 지은 보금자리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다. 이 그린벨트, 그 땅주인들에게 가슴 아픈 사연을 안겨준 그, 그린벨트가 예나 지금이나 그저 숱한 사연을 안고 허술한 벌판으로 남아있다. 그 그린벨트에 아파트를 짓는다. 공공시설을 한다며 꾀 큰돈을 보상 해줄 때면 그 땅의 수용자는 공돈이나 주는 듯 생색을 내고 또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분들이 큰돈을 거머쥐었다며 부러워 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 모르는 소리다. 남의 일이라 그렇게 생각하고 말 할 뿐이다.
그 땅 소유주들은 밤, 낯없이 한 숨지며 숱한 세월을 보낸 분들이다. 옆에 그린벨트에 들어가지 않은 땅은 수천만 원을 호가할 때 그린벨트에 들어간 이유로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을 호가하지만 그것을 팔려도 팔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가슴 알이 한 그 소유주들의 마음을 헤아려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 땅이 그린벨트에 들어갔으니 보상 해 달라는 소유주들도 없었고..........오늘날 같으면 헌법소원이라도 제기 했을 것이고 데모라도 했겠지만 그때는 그런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시절을 일컬어 개발독재시대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나 보다. 여러 일들을 생각하며 그린벨트 길을 돌고 돌아 경마장역에 왔을 때 해는 서산에 지고 관악산은 그림자처럼 검게 보였다.
이복예(춘하추동방송 동우회 운영자-케이양)선생님
춘하추동방송동우회 카페 바로가기 http://cafe.daum.net/0222360885 산친구랑 늘 함께하시는 모습이 넘 행복해 보이십니다 ^^지나오신 발자욱마다 온통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네요 ~!! 400평이면 엄청 큰대지인데 ㅠ 한순간에 잃으시고 얼마나.....가슴이 아프셨을까요 ㅠ 어떤 사람이라도 그상황을 당해보지 않고서는 그심정을 헤아릴수가 놀랍습니다 ~!!일본인들은 절대로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데 ...우리나라도 일본의 좋은점 들은 본받았으면 좋겠어요 ~!!
추억가득한 가족기념사진 ...영화속의 한장면 처럼 미소가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같고~행복이 가득한 가정 이십니다 ^.^* 산은 거룩하며 산에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친구처럼 한마음이 되고 ...산을 가까이 하는자들은 .. 죄와 상관없이 살게되며 신선이되고 신선은 하늘로 ~승천한다고 했듯이 우리모두 산을 사랑하고 아끼며 훼손하지 말고 ~
춘하추동방송 대표님께 ~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저는 가끔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사당역을 지나서 오이도 쪽으로 갈 때나 땅속으로 지나가게되는 지명들입니다. 올해들어 추억의 등산을 하셨군요. 맨아래의 국장님의 오래전 가족사진을 보니, 다섯송이의 행복한 꽃이십니다. 해주는 가족사진, 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추억어린 청계산 등반 글 잘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늘 추억을 먹고 살지요.젊은 시절 가족과 함께 즐거운시간, 청춘 이장춘 선생님!을 고맙습니다.♧^^^♧
김옥탁 선생님 선생님 ! 설 연휴는 잘 보내셨습니까? 보고임을 알면서도 자주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도 1984년 그때 엊혀 살던 큰누님댁이 과천 5단지 분양을 받음을 계기로 그해 겨울 과천으로 와서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많이도 변했지만 특히 계속될 재건축으로 아침 출근길 청계산 관악산 4계절을 아무데서나 볼수 있는 날은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일마다 09시부터 13시 30분까지 교회 식당에서 봉사하는 데 혹시 일요일 과천역 내려 관악산 가실때 꼭 가는 길에 있는 과천교회 들러셔서 국 김치로 간단하나마 그래도 맛이 괜찮은 저희 교회 점심 드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기쁨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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