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세 아나운서! 5.16 첫방송! 그날 새벽 5시, 그 목소리와 함께 세상은 바뀌어 세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때 그 비화가 여러분들에 의해서 쓰여 왔지만 글을 쓰는 분들이 오샌세월 제각각 들은대로 생각하는대로 써와서 시실과는 다른 여러 얘기로 전해 오다가 그 주인공, 박종세 아나운서의 ◀ 방송, 야구 그리고 나의 삶 ▶ 이라는 회고록이 2004년에 출판되면서 사실에 입각한 내용으로 정리되었다. 필자는 그 내용을 인용해서 춘하추동방송에 올렸고 이 글이 춘하추동방송은 물론 수많은 불로그, 카페 등에 옮겨지고 메일로 입으로 전파되면서 그로부터 그때 그 진실이 제대로 세상에 알려졌다. 박종세 아나운서와 춘하추동방송을 사랑하는 네티즌들의 고마운 마음에 보답 하는 뜻으로 박종세 아나운서의 야구인생 책 70 p에 해당하는 글을 춘하추동방송에 올린적이 있어 지금도 그 글을 보시는 분들이 많다.
박종세 아나운서, 사진으로 본 방송역사의 현장
박종세 아나운서! 1956년 KBS아나운서로 시작했다. 아나운서 전성시대 아나운서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그 시절 박종세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임택근, 황우겸, 전영우, 이광재, 최계환 아나운서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는 차원을 넘어 국민모두가 그들을 사랑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광재 아나운서는 KBS 입사동기 아나운서이고 황우겸 아나운서는 박종세 아나운서에게 야구 중계방송을 이어준 주인공이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야구중계방송은 윤길구 아나운서로부터 황우겸 아나운서로 이어져 박종세 아나운서로 맥을 이어왔다. 야구중계방송은 박종세 아나운서 방송인생의 중심을 이루고 이 나라 프로야구가 창단되던 1982년, KBS 국장급 방송주간을 사직하고 해태 타이커즈 야구단을 창단 3년간 이끌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단으로 키웠다. 대한민국 야구사에 해태타이거즈 족적은 크고 그 중심에 단장 박종세 아나운서가 있었다. 그 얘기는 자세한 글을 올렸기에 아래 연결했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5.16 첫방송과 야구인생으로 큰 줄기삼아 살아 왔지만 1956년 KBS로부터 시작되어 DBS 동아방송 TBC동양방송, 그리고 1980년 방송통폐합으로 KBS친정으로 돌아와 해태타이거즈 창단을 위해 KBS를 뒤로 할때까지 긴 방송생활을 통해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고 또 1960년대의 대한뉴스의 해설, 1990년대까지 오랜세월 국방뉴스를 통해 국군과 친근한 벗으로 살아왔다. 그는 코래드 대표이사, 아시아컴 회장등을 역임하면서 회사경영에도 폭넒은 활동을 했다. 대한민국 모든 방송사 전, 현직 아나운서들의 모임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을 역임했고 그 회장시절 2004년 위에 말한 회고록이 출판되었다.
한국아나운서클럽은 1950년대부터 대한민국 아나운서의 맥을 이어온 강찬선, 황우겸, 임택근, 전영우, 박종세, 최만린, 김동건으로 이어와 2015년 4월 임국희 아나운서가 회장에 취임했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8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서울여상 이사장으로, 방우회 (한국방송인동우회)부회장으로, 한국아나운서클럽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다. 박종세 아나운서의 삶은 우리나라 방송의 맥으로 통한다. 2007년 2월 16일 KBS가 우리나라 방송개시 80주년을 맞아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전, 현직 아나운서 인기 순위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발표에서 이미 방송현업에서 떠난지 오래된 박종세아나운서의 이름이 그 순위 10위에 올라 있었다. 박종세 아나운서를 포함한 전직 아나운서들이 깜짝 놀랐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말한다. 「박종세라는 이름이 그 시대를 사신 분들에게는 물론 오랜세월이 지나 오늘의 젊은이이들 기억 속에까지 남아있는것 그래도 박종세가 헛되이 살지는 않았나 보다.」
깊고 넓게 살아온 박종세 그분의 방송기록사진을 춘하추동방송에 활용하고 싶었다. 대한민국의 방송역사에서 「박종세」의 기록은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박종세 아나운서는 필자의 뜻에 기꺼히 응락했다. 그리고 집을 방문 수십권의 앨범을 넘기기 시작했다. 다행이 방송기록이 될만한 사진들은 따로 잘 정리가 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사진발췌가 끝나 그중 일부를 오늘 올리면서 설명을 붙인다. 다른 사진은 춘하추동방송 역사를 써 나가는데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설명 에서 부족한 부분은 끝 부분에 연결된 글로 보완하고 또 추후에 더 보완 할 것이다.
2015년 5월 27일 발간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 (JP)의 일대기를 그린 '불꽃'의 표지에 나와 화제가 된 사진이다. 5.16 첫방송을 한 박종세 아나운서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역사의 현장을 전하는 많은 중계방송에 그 목소리를 실었으며 1972년 5.16민족상을 받았다.
단기 4290년은 1957년을 말한다. 그때는 단기를 사용했다. 이 사진은 1957년 3월에 촬영한 것이다. 박종세 아나운서 초년시절의 사진으로 그의 방송국에서 촬영한 사진으로는 최초다. 정동 방송국과 남산방송국은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마이크가 다르다. 위의 마이크는 일제강점기부터 남산으로 이전하기까지 사용되었다. 남산 스튜디오에서는 77DX라는 마이크가 사용되었다. KBS가 남산으로 이전한것은 1957년말경 부터인데 위의 마이크가 1961년 초까지 아나운서 데스크에 놓여있음을 본다. 그것은 1957년 KBS전체가 남산으로 이전한 것이 아니라 제1방송과만 갔기 때문이다. 제 2방송과는 정동에 있다가 1961년 7월 1일 국제방송국으로 승격되고 남산방송국 옆에 짛은 원자력원 건물과 정동사옥을 교환해서 1962년 남산으로 이전했다. 그 이전까지는 정동에서 위 마이크를 사용했다.
남산방송국으로 옮기던 첫해 연말특집 아나운서 언 파레이드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이다. 박종세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장기범, 민병연, 강영숙 ,황우겸, 김인숙, 최세훈, 송석두, 윤영중, 이현숙, 장금자, 송영필, 박종세, 이광재, 임택근, 강찬선, 임동순, 문복순, 강익수, 최계환님등 그 시절의 아나운서들이 모두 함께 했고 박종세, 이광재, 임동순아나운서는 1956년 KBS아나운서 입사 동기였다.
남산방송국 옥상에서 촬영한 사진 으로 서울시내를 지나 인왕산이 가까이 보인다. 후에KBS사옥이 된 원자력원이 들어서기 전이라 서울의서북부를 한눈에 볼 수있다. 사진은 박종세 아나운서, 전영우 아나운서, 임시현 엔지니어, 서선벽아나운서가 함께 했다.
KBS TV 뉴스는 1962년부터 실시 되었고 TV방송초기에는 아나운서 데스크에 아나운서 명패를 놓았다. 그 시절의 스튜디로와 뉴스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스튜디오에서 아나운서가 기사를 스트레이트로 방송하면서 한-두 컷의 동영상이 삽입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TV중계차가 만들어지기 전에 임시로 라디오방송에서 쓰턴 FM중계자를 활용했다. 웨곤차 위에서 카메라를 조정하고 아 옆에서 아나운서가 중계방송을 한다. 이 중계차를 기억하시는 분도 별로 없고 또 사진도 극히 제한적이다. TV방송 최초의 아나운서실장을 역임한 황우겸아나운서 사진첩에서 이 사진을 본적이 있지만 이토록 선명 하고 주변모습이 잘 묘사된 사진은 없다. 그때의 국회의사당 앞인데 내용은 좀더 알아 볼 일이다. KBS TV 전용 중계차가 최초로 마련된 것은 포항 이동방송국용으로 사용되던 자동차를 개조해서 1962년 3월 21일 오후 7시 반부터 8시 45까지 1시간 15분 생방송 한것이 우리나라 TV 중계방송차를 활용한 최조의 중계방송으로 기록된다.
1958년 남산방송국 이전과 이승만대통령 생신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 앞에서 이 대통령 양아들 이강석과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이강석은 남산방송국을 자주 드나들었다. 위 사진은 박종세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장기범, 강찬선, 최계환 아나운서가 함께했다. 왼쪽 원자력원 건물이 들어서기 전의 사진이다. 뒷날 왼쪽 터에 짛어진 원자력원 건물은 정동방송국과 교환해서 먼저 짛어진 방송국과 연결 남산 방송촌 (라디오)이 되었다. 지금도 그 건물은 서울시 에니메이션 센터가 되어 큰 틀은 그대로 있다.방송박물관의 적지로 지목되는 건물이다.
1963년 7월 1일 국제방송국 개국 2주년기념 축하공연이다. 남산으로 옮겨 아나운서 언파레이드에서 박종세 아나운서가 노래를 부른 듯 하다. 빅종세 아나운서는 이 방송이 있은후 곧 DBS동아방송국으로 옮겼다.
박종세 아나운서 겷혼사진을 올렸다. 1960년대 초 이 사진에는 그시절 이름있던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박종세 : 구숙자 신랑, 신부를 중심으로 왼쪽, 장기범, 이광재, 전영우, 김영호, 오른쪽으로 최새훈, 최계환, 이병열 아나운서의 모습이 보인다. 섬함이 확인되는대로 모두 기록 할 것이다. 라디오방송시절 아나운서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청취자들이 많았다. 그시절 또 한장의 결혼식 사진 윤영중 아나운서의 결혼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결혼사진이지만 그시절 아나운서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사진이다.
아래는 박종세 아나운서의 소중한 추억이자 주요방송사진을 골랐다.
진해 해군사령부를 방문 노래자랑, 재치문답 등 주요공개방송을 마치고 해군 사령관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박종세 아나운서와 장기범, 임택근 아나운서가 함께했다.
4회 대만 아시아 야구대회 중계방송차 떠나는 박종세 아나운서를 배웅나온 인사들과 함께장기범, 임택근, 손희준선생과 함께, 개똥모자에 반코트 검은 안경을 낀 내 모습이 자못 심각하다고 했다.1961년 말
박종세 아나운서의 소중한 야구 기록사진을 골랐다. 자세한 설명은 야구와 박종세 아나운서 글에 있다
1960년대 인기프로그램 라디오께임 진행장면이다. 학교 퀴즈프로그램의 원조다. 아래는 프로그램을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박종세 아나운서 김석호프로듀서, 학교 선생님들과 출연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55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20대의 박종세 아나운서는 80대 중반이 되었고 김석호 프로듀서는 고인이 된지 오래다, 학생들도 70대가 되었다. 이 사진 속에 나온 학생들은 물론그 시절 이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더 없는 추억의 사진이다. 몇장의 사진이 더 있다. 밑에 연결된 옛날의 글과 함께 수정, 보완된 글을 써 올릴 것이다.
남과 북을 오가면 남북적십자 회담이 처음 열리던 시절 북에 갔던 대표들이 돌아어던날 1972년 9월 12일 현장을 중계방송하는 박종세 아나운서다. 역사적인 순간의 기록사진이다. 돌아오는 대표단모습과 함께 담긴 모습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법 하지만 이 사진만으로도 훌륭한 기록이다.
위는 1972년 5.16민족상을 받던날의 박종세님과 부인 구숙자님이 박정희대통령 초청을 받고 환담하는 모습이고 아래는 시상식장 에서의 모습이다. 그 시절에는 5.16민족상이 가장 권위 있고 영광스러운 상으로 받아 드려졌다. 5.16 새벽 첫방송 박종세 아나운서는 5.16의 큰 공로자로 인정되었다.
5.16 첫방송 등의 인연으로 박종세 아나운서는 박정희 가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여러정의 사진이 있어 몇장을 골라 박정희 대통령편에 올려 그 글은 밑에 연결되어 있다. 아래는 박정희대통령 영애 박근혜님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방송출연했을 때의 사진이다. 1975년 최초의 방송 출연으로 부터 3차레의 TBC특집방송 출연이 있었고 그때마다 함께 방송에 출연했다고 했다. 아래 연결한 박근혜 박정희 대통령 편에 더 자세한 얘기가 있다.
국방뉴스 관계자들 박정수감독, 최형래, 정희민씨 등이 보인다.
"옛동산에 올라",재미있는 사진이 있어서 올렸다. 무슨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장면? 인가 보다. 고등학교 학생모자를 쓴 전영우, 벅종세 아나운서와 최희준, 최해룡 싱거 (가수)가 함께 한 사진으로 이분 들은 경복고등학교 동문이다. 1960년대 초 국제방송국 프로그램 가운데 "옛동산에 올라" 프로그램이 있었다. 혹시 그 프로그램 출연기념으로 남긴 사진이 아닐런지 모르겠디.
2,000년 7월 13일 대한 체육회 창립 80주년을 맞아 대한 체육회에서 박종세, 임택근, 황우겸아나운서에게 스포츠 중계방송 공로로 공로패를 수여했다. 대한 체육회가 중계방송을 한 아나운서에게 공로패 수여는 최초의 일이었다.
위는 ◀ 방송, 야구 그리고 나의 삶 ▶ 출판기념회를 하던 한국아나운서클럽 모임때의 사진이고 아래는 아나운서 출신으로 17대 국회이원에 당선된 분들을 축하하는 자리다. 이때 박찬숙, 이계진, 박영선, 한선교 아나우서가 당선되었다. 박영선, 한선교의원은 현재 3선의원이 되었다
이글 머리사진 1962년 9월 10일 KBS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 사진이다. 동아방송과 동양방송이 발족하기 전이어서 뒷날 민영방송 아나운서 책임자가 된 박종세 임택근, 최세훈, 김인권 아나운서 등을 볼 수 있는사진이다. 전영우 아나운서등 몇분은 그 기간중 군 복무 등 사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했다. 아래 같은 사진 번호따라 1 배덕환, 2 박종세, 3 이광재, 4 장기범, 5 강찬선, 6 임택근, 7 최세훈, 8 한경희, 9 최두헌 10 홍종선, 11 김주환 12 이규영, 13 길종휘, 14 유영옥, 15 이정희 16 최승일 17 김인권, 18 박노설 19 최정현, 20 인주희, 21 이규항; 22 송영규; 23 이병열. 24 송한규 아나운서
방송통폐합으로 KBS로 옮기기전 TBC사원들이 함께 한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사진이다. TBC 방송 17년사상 이토록 전사원이 한자리에서 촬영한 사진은 없을법 하다.
1957년 5얼 1차 아나운서 강습회를 마치고 촬영한 사진으로 앞줄 왼쪽부터 두번째 정훈국 장대위, 네번째 박종세, 여섯번째 최재희, 맨 오른쪽 장금자. 뒷줄 왼쪽부터 이완희, 황의돈, 이광재, 조창동, 전응덕, 이규영, 임동순, 강익수(교육책임), 서용수, 백기홍, 한사람 건너 윤영중아나운서.
1962년 쯤으로 추정되는KBS중앙방송국 아나운서들이 함께 한사진으로 앞줄 왼쪽부터 최귀영, 김윤희, 한사람건너 송한규, 김주환 뒷줄 왼쪽부터 이정희, 성선경, 이규영 한사람 건너 임택근, 박종세, 오른쪽에서 두번째 안용민
2015년 10월, 5.16 첫방송의 대명사 박종세아나운서가 만월대 합동발굴단 남측 대표들과 함께 개성을 찾았습니다. 그때 촬영한 사진 석장을 주셨기에 귀한 사진이라 올렸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왕건릉 앞에서 남측대표들과 북층 안내원이 함께 촬영한 사진이고 두번째 사진은 민속촌식당 11첩 반상을 앞에놓고 촬영한 사진입니다. 세번째 사진은 성균관 상점앞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귀한 자료들을 이장춘 국장님께 손수 전하신 박종세 아나운서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귀한자료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여서, 이장춘 국장님의 블러그에 박물관을 이룰것이고 될 것이 분명합니다. 80대 중반이시되신 연세에도 이 사회가 필요한 활동을 하시고 계시니 그분의 살아오신 삶이 건강한 삶이였음을 증명합니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고 복된 노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이 춘하추동방송 블러그를 통해, 이제는 사진만 보아도 그분의 얼굴은 얼른 찾아낼 수 있어서 반갑기까지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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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6 새벽 첫 방송 박종세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461
박종세 아나운서와 야구, 한국야구 반세기 생생한 현장기록 http://blog.daum.net/jc21th/17781157
5.16 새벽 첫 방송 그로부터 반세기에 올리는 그때 그 아나운서 박종세님의 글 http://blog.daum.net/jc21th/17781982
TBC 동양방송 아나운서 이름(명단) 그때 그 얼굴들 http://blog.daum.net/jc21th/17782344
임택근, 전영우, 이광재, 박종세, 1960년대 방송 4사 대표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1011
1960년대 KBS라디오 게임과 박종세 아나운서 PD 김석호 이상익 http://blog.daum.net/jc21th/17782567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최초로 공개하는 1960년 70년대 사진들 http://blog.daum.net/jc21th/17781610 동영상, 아씨 출연진 253회 최종회에서의 특집좌담 그때 그 방송 사회 박종세 http://blog.daum.net/jc21th/1778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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