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벌써 4반세기가 흘렀다. 중국 등소평이 개방과 개혁을 외치며 새로운 질서를 형성 해가던 때! 아직 우리나라와는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을 때다. 그때 연세대학교 신문방송고위과정 연수의 일환으로 1991년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까지 열흘간에 걸쳐, 중국의 북경, 연길, 용정, 백두산, 두만강, 심양, 상해, 홍콩 등지를 돌아오는 순회 길에 7월 1일 백두산을 오르기로 되어 있었다. 6월 30일 오후 백두산을 오르는 마을 여관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 백두산을 올랐다.
백두산 천지 등정의 추억 1991년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동서의 벽이 허물어져 공산국가에서 새로운 질서가 싹 트던 시절, 아직 국교가 수립되기 전이라 분위기는 늘 서먹서먹 했고 길거리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첫 마디가 일본인이냐고 묻곤 했다. 길거리에는 온통 일본자동차의 물결이고 한국산은 어쩌다가 한 대씩 보였다. 사진촬영도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지금과는 달라서 주로 일제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용하던 때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블로그에 글을 쓰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얼굴 아날로그 카메라에 담아 복잡한 인화과정을 거쳐 추억의 기록사진으로 쓰던 시절이라 그때 얼굴이 안 들어간 경치만 촬영한 사진은 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동영상은 생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일련의 움직임을 모두 동영상에 담았다. 그것은 연극, TV드라마로 일생을 함께 한 전세권님이 방송용 ENG 녹화기를 가지고 가 현장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큰 불편이 따랐지만 백두산에는 가지고 들어 갈 수가 없어서 특별교섭을 벌려 겨우 진입이 허용 되어 백두산 동영상 촬영이 이루어 졌다.
그 시절 백두산 동영상 촬영은 어렵고 힘든 것이어서 백두산 정상에서 촬영한 동영상은 전세권님이 촬영한 동영상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중국 전 여행코스에서 촬영된 그 동영상은 두 시간으로 편집되어 그때 참여한 분들에게 배부되었다. 물론 아날로그 비디오테이프이었다. 이 테이프를 필자가 출하추동방송 블로그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노익중 선생님의 노력으로 디지털로 전환 8분 동영상 두 편으로 요약 블로그에 올려 지금도 그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 동영상 이 글에도 연결했다. 지금보면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그 때 그시절 백두산의 모습을, 그리고 중국의 모습을 함깨 본다는 마음으로 올렸다.
백두산을 오르는 길이 하나밖에 없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서파, 북파 등 오르는 길도 많고 트레킹 길도 열려있으며 때로는 북한을 통해서 오르는 길 따라 다녀오신분도 있는가 하면 디지털 카메라에 그 성능도 월등히 향상되어 훌륭한 백두산 영상을 본다. 필자가 블로그를 쓰던 초기 KBS 현직에 근무하던 최효영님이 광폭사진으로 백두산의 멋있는 장면들을 담아와 엠파스에 올린적이 있었고 그 뒤에도 노익중, 김광일님 등이 멋진 장면들들 담아오셔서 광폭사진으로 실감있게 보여 드린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런 사진은 있으되 광폭사진을 받아주는 사이트가 없어 그 영상을 보여 드릴 수 없음을 아쉬웁게 생각하며 노익중 선생님이 영상 한편을 밑에 연결했다.
동영상 보기
백두산, 두만강, 심양, 상해
자금성, 만리장성 등의 북경과, 연길, 용정
관련 글 보기
노익중님의 백두산과 천지 http://blog.daum.net/jc21th/17780550
동영상으로 본 1991년의 중국/_개혁, 개방초기의 모습- http://blog.daum.net/jc21th/17780181
KBS 신문방송 고위과정과 연세대학교 언론 홍보대학원 http://blog.daum.net/jc21th/17780971
화 보
하룻밤을 머무른 숙소 천지빈관(천지여관) 앞에서 앞줄 왼쪽부터 김연진, 정규봉, 김영송, 이후재, 윤기로, 조수영, 김학선, 신일균, 차병현?, 박광희, 이내수, 이병대, 장영국, 서정우 (주임교수), 이장춘, 이원춘, 정종표, 신일균, , 이계복
천지와 온천으로 갈라지는 길이다. 여기까지 평소 타고다니던 버스로 올라가고 여기서 정상끼지 오른내리는 짚차를 바꾸어 타고 가 정상부근에서 내려 약 50미터 급경사를 오르면 천지가 보였다. 7월 1일 초여름이지만 정상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정상부근 그늘진 곳에서는 잔설을 볼 수 있었다. 버스로 올라가는 길은 마사토로 잘 정비 되어 있었고 병사들이 계속해서 길 관리를 하는 듯 했다. 짚차로 바꿔타고 나서부터는 터덜거리는 비교적 급경사길을 올랐다. 여기서 몇장의 기념촬영을 했다.
정상에는 늘 안개가 끼어 천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고 했다. 이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고 다소 안개가 끼었어도 천지는 볼 수가 있어서 그런대로 운이 좋았다고 했다. 요즈음 백두산 천지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갖는다.
4반세기가 지나 이 네 사람 가운데 세분은 벌써 저 세상으로 가셨다. 그 성함, 차병현, 조수영, 정규봉, 삼가 명복을 빕니다.
연수원 유중근 차장과 함께 한 사진이다.
천지에서 내려오다가 차를 바꾸어 타는곳 주차장 부근에 있는 온천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백두산의 대표적인 폭포 장백폭포가 바라보이는 곳이다. 이곳에 온천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진이 한장도 없다. 이곳 저곳에 바위틈에서 솟아 오르는 뜨거운 온천물이 흐른다. 이 온천물에 계란을 익힌다고 넣어둔 300여개의 계란이 물 속에 놓여 있었다. 온천물이 솟아 오르는 중심에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허수름한 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온천욕을 했지만 엄청 뜨거운 물이라 그 물속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그 시절 우리나라 같으면 엄청 큰 시설을 하고 손님을 맞을 법한 곳이엇지만 그때 그곳은 자연상태로 있었다. 장백폭포를 비롯해서 주변 경치도 빼어난 곳이었다, 하루 여행이 끝나면 모두 술자리를 찾지만 그런데는 질색이라 눈총받으며 방으로 와 그저 편히 쉬며 잠을 잔다. 사람들은 이장춘을 이해하기 힙들단다.
온천수 물에 계란, 옥수수 담구어 익히는 모습, 필자 사진에는 없어서 최효영님 트레킹 사진을 올렸습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상해가 얼마나 저 사진보다 거대해 졌는지 모릅니다. 만리장성 위에서 1년전 수백명이 오카리나로 같은 곡을 함께 불었던 감동이 다시 살아납니다. 아시아 오카리나 페스티벌이 끝나는 날 '작별'(올 랭자인)을 반복 또 반복하며 불고, 북경 TV에서 공중 촬영을 하고...만리장성 위에서 동시에 오카리나를 불었던 인원이 무려 700 여명, 관광버스 14대의 인원 + (중국, 한국, 대만, 일본, 홍콩등)이였으니 그 소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가슴벅찬 감동이였답니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답글
만리장성, 위에서 오카리나,를
불렀다니 신기 하기만 합니다. 소리가하늘로 날아가고 퍼져서 오카리나의 음률이 제대로 안 날텐데 말입니다. 연주를 정말로 축하드립니다.유카리나님!...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지금부터 19년전(1996년), 이장춘 사장님!이
신문 방송 고위 과정, 중국 연수 교육을 간지 5년뒤, 공직에 있을 때, 중국어 어학 연수차 (전남 시,군 중국어 교육생~총 학생회장 신분), 중국 곳곳을 8박9일 동안 돌아 보았 습니다. 11월말(11,22~11,30)에 연수를 했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서 백두산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불과 5 년 후 이지만, 북경(천안문 광장, 자금성등)과 상해, 항주, 소주, 서안, 만리장성,등은 많이 발전이 되어 있었습니다. 북경 공항,을 현대 건설,에서 신축 하고 있었고,
또 항주,는 대우건설에서 시가지 정비와 정부 청사등을 신축하고 있었습니다.항주 견학 때는 기억이 새롭게 떠 오릅니다. 명 13 능!에서는 사람이 서 있는데로 그대로 "한국요구루트!'간판이 세계인의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만라장성 관광객의 약 7~80%가 한국인 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젊음이 재산 이였던 시절, 모습을 보니, 그 당시 얼마나 활발히 활동 하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세계의 문화와 역사가 숨쉬는 대국, 중국 견학을 진심으로 축하 드리오며, 고히 간직한 보물(사진과영상)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임교수 서정우 선생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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