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려군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 그는 아세아 가요계에서 미소라 히바리와 더불어 가장 많이 얼려진 가수라고 할 수있다. 미소라 히바리가 일본을 주 무대로 한 가수라면 등려군은 중국, 대만, 홍콩, 태국,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고 미국에서도 노래를 불렀으며 한국노래도 불렀다. 히바리가 2차 세계 대전후 50년 가까운 세월 노래를 불렀지만 등려군은 42살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갔기에 25년 정도의 노래를 부른 샘이다.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냉전시대 중국본토 정부에서 그의 노래를 금지곡 으로 정해 방송이나 공식적인 음반 판매는 어려웠지만 암암리에 그의 노래는 저변으로 흘러들어 전 중국인들이 그의 노래를 듣고 불렀다.
등려군 鄧麗君 Teresa Teng 삶과 노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일본에서 한창이던 시절 일본에 있던 가수들이 그 노래를 부를때 등려군도, 미소라 히바리도 이 노래를 불렀다. 1985년 12월 15일 동경 연창회 큰 무대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帰れ)」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지금 들으시는 곡은 그때 등려군이 부른 노래다. 등려군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7년 그가 주제곡을 부른 영화 첨밀밀이 국내에서 상영되면서 부터라고 한다. 필자가 블로그를 처음 열었을 때 이메일로 첨밀밀 노래를 보내준 분이 계셔서 블로그에 올린이래 오랜세월 등려군에 관한 관심을 가졌고 그가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로그에 올려놓고 그 뒤에 나온 동영상을 연결하면서 오늘에 이르러 그 글을 수정해서 다시 올린다.
등려군 월래의 이름은 鄧麗筠( 덩리쥔) 이었지만, 데뷔 후 등려군(鄧麗君)으로 불렸고 영어로는 Deng Li Jun 미국에서 활동할 때는 Teresa Teng이라고 불렸다 . 이 이름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도 '테레사 텐(テレサ・テン)'으로 계속 불렸다. 이 영문이름 테레사는 그녀가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세례명을 사용한 것으로 죽은후에 알려졌다.
그는 중국어, 영어, 일본어로 노래를 불렀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처럼 다른 언어로 부른 경우도 있다. 중국어로 부른 노래가 1,000여곡이 되고 일본어로 된 노래가 260 여곡에 달한다. 그 대표적인 노래를 골라 아래 동영상으로 연결했다.
1953년 1월 29일 대만(타이완) 윈린현 (雲林)에서 태어난 등려군은 1960년대 말 16살 때 부터 노래를 불렀다. 여러나라에서 활동한 만큼 북경어 뿐 아니라 광동어, 일본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 소성고사, 야래향 등 우리 귀에도 익은 노래들이고 야래향은 박재란 등 우리나라 옛 가수들도 불러서 친근한 노래로 우리곁에 다가 온다. 1995년 5월 28일 대만에서 장례가 치뤄져 전세계 3만여명의 팬들이 몰렸다고 한다. 관은 중화민국 국기와 국민당 당기로 덮여졌다. 묘소는 타이페이시 동북에 자리하고 있으며, 묘 앞에서는 동상과 음향 장치가 설치되어 그녀의 노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사체를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매장해서 사후 50년 정도는 생전 모습 그대로 둘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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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요 부산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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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丽君 - 15周年纪念集
小城故事 邓丽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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