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방송인협회

양방수님 파푸아 뉴기니 체험 기행문 (4) 1984년 한국외방선교회

이장춘 2015. 1. 26. 18:32

 

  

이 글은 미주방송인협회 양방수

총무국장님이 1984년 3월 천주교 韓國

外邦宣敎會(한국외방선교회) 홍보부장으로

파푸아 뉴기니 (papua new guinea) 오지를 가, 

선교활동을 하면서 체험한 현장 기록 네번째 마지막회

글로 원래 10편의 글로 엮어 보내주셨는데 춘하추동방송

에서 네편으로 나누어 올렸습니다. 오늘은 양방수

 파푸아뉴기니기행문 8편, 9. 10편을 모아 올립

니다. (1), (2), (3)편은 아래 연결했습니다.

  

(1)편 글보기 영문자 클릭

http://blog.daum.net/jc21th/17782045

 

(2)편 글보기 영문자 클릭

http://blog.daum.net/jc21th/17782373

 

 (3)편 글보기 영문자 클릭

http://blog.daum.net/jc21th/17782375

 

 

 양방수님 파푸아 뉴기니 체험 기행문 (4) 1984년 한국외방선교회

 

 

<양방수> 파푸아뉴기니 기행문 제8편

 

1984년 3월 22일-4월17일

 

文明(문명)의 異邦地帶(이방지대) 파푸아뉴기니를 가다.

 

 

괴성지르며 葬禮式(장례식) 擧行(거행 ceremony).

                                    港口(항구) 경치 절정에 달해.

                                    白沙場(백사장)엔 요트등 休養施設(휴양시설) 즐비.

 

  

 原住民(원주민)들과는 먼 거리

 2차 대전때의 격전지였던 바닷가엔 파괴된

 배가 모래속에 그대로 파묻혀 있어 그때의 참상을

 실감나게 하였다. 그래서 東部(동부) 뉴기니는 太平洋

(태평양) 戰爭(전쟁)때의 最前線(최전선)으로 전시

개척으로 말미암아 오늘처럼 발전했다.

 

 

 

 

참고 : 일본군의 폭격기의 기지.......

1942년 초 일본군은 뉴브리튼 섬의 라바울 항

(오스트레일리아 군사기지)을 점령, 그곳에 해·공군기지를

 건설했다. 2월에는 라바울 기지에서 이륙한 일본 공군 폭격기가

 뉴기니 해군기지 [포트 모레스비]를 폭격했고 3월에는 뉴기니의 꼬리

북단을 점령했다. 그해 5월 일본군은 과달카날로 건너가 북쪽 해안 룽가 곶

(岬)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일본군의 비행장 건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즉 맥아더 사령부가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는 물론

 폭  격기의 비행거리인 900㎞ 이내의  연합군 해상 주보급선인 아크 라인

(arc line:호주~뉴칼레도니아~피지~사모아~팔미라~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당장 결딴이 난다.   이렇게 되면 미군은

남태평양에 발붙일 곳이 없게 되기 때문에 일본군이 

비행장을 완성하기 전에 과달카날과 

툴라기 섬을 탈환키로 했다

 

 

 

 

 [갈라덴] 마을에서 2차 대전때 쓰다버린

고철을 주어 原住民(원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때의 참상을 연상 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곳에 까지 강제로 징용과 挺身隊(정신대)에 끌려와 죽어간

 수많은 동포들의 한맺힌 역사를 잠시 回顧(회고)해 보지 않을수 없었다.

日本(일본)은 朝鮮國(조선국)으로부터 통신사를 초청하여 技術(기술)이나

藝術(예술)을 공부하며 朝鮮國(조선국)을 깊이 尊敬(존경)했다. 그러나 明治維新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목표는 武力(무력)을 배경으로 朝鮮國(조선국)을 지배하려는

 야욕으로 차 있었다. 1875년 軍艦(군함) 운양호가 江華島(강화도) 사건을 일으켜 조선

침략의 실마리로 삼았다. 참고: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 1875년 9월 20일(고종12년 음력

 8월 21일) 또는 강화도 사건(江華島事件)은  통상조약 체결을 위해 일본 군함 운요호가

불법으로 강화도에 들어와 측량을 구실로  정부 동태를 살피다 수비대와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  만일 조선국이 한발 앞서  金大建(김대건)신부 같은 聖人

(성인)을  죽이지 않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하고

있었다면 거꾸로 列强(열강)의 植民地(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너무나 封建的(봉건적)이여서

 끊어 오르는 농민운동을 近代化(근대화)나 市民國家

(시민국가)로 發展(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지 못했다. 朝鮮國

(조선국)이 의존했던 것은 淸國(청국)이였고, 이것을 淸(청)에

의한 지배라고 트집잡아 식민쟁탈의 淸日戰爭(청일전쟁)을

 일으켰다. 그 다음 露日戰爭(노일전쟁)은 일본과 러시아가

식민지 조선을 둘러싼 전쟁으로 日本(일본)은 이것

에도 기고 朝鮮(조선)을 강점했다.

 

 

청(淸)태조 누르하치(Nurhachi)

 

 

伊藤博文(이등박문)은 한일협약 조인을

 앞두고 韓國獨立(한국독립)은 누구의 덕택인가 하고

협박해서 3천만 朝鮮(조선) 民族(민족)의 원한의 표적이 되어

 [하르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권총에 사살 되었다. 1910년 韓日合邦

(한일합방) 조약이 강제조인되고 일본은 신식민지 조선에 總督府(총독부)를

 두면서 朝鮮(조선) 말살 정책을 펴가면서 온갖 만행을 자행했다. 그리하여

조선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전쟁의 희생물이 되어 억울하게 죽어간

 歷史(역사)를 回顧(회고)하고 筆者(필자)는 南太平洋(남태평양)

[카카섬]해변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冤魂(원혼)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수 없었다.

 

 

 

오른쪽으로 3장의 연속된 사진...2차 대전 때~ 미군함정으로

 뛰어드는 일본의 가미가제 전투기의 최후와 커다란 폭발...두 대의

 전투기중 좀더 위에 보이는 기체가 가미가제 비행기다.

 

 

 파푸아뉴기니의 수도가 평풍처럼

펼쳐진 모습을 한눈에 볼수 있는 [파가]언덕

정상에 올라가 봤더니 곳곳에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항구는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파가]

언덕 밑의 [파가]크럽의 돌고래며 푸른바다위에 [제비]처럼 나르는

 [요트]는 이곳 경치를 한층더 정감있게 속삭이는 듯 하였다.

 

 

 파푸아 뉴기니의 수도 Port Moresby의 [파가] 언덕 정상에 선 필자 

 

 

[파가] 언덕 동남쪽으로 펼쳐진 [엘라]해변

 길을 따라 아름다운 백사장, 요트와 수영으로 한 때를

보낼수 있는 휴양시설, 어느 하나라도 원주민들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파가]언덕 서북쪽에 있는 港口(항구)에는 우리나라

 한라건설의 貿易船(무역선)이 碇泊(정박)하여 활발하게 交易(교역)

하고 있는 모습은 낯선감을 잊게 했다. 우뚝솟은 호주의 [칸다스]

 항공사의 호텔안의 종업원들이며, 인종전시장 같은 中國

(중국)식당에도 원주민들이 종사하고 있었다.

 

 

호주 시드니 항구

 

 

공항으로 뻗은 [허버트]대로를 따라

길 주위에는 주유소와 상점들이 현대식 건물로

정비되어 가는 도로의 모습은 오랜동안 [호주]의 지배

 영향으로 [호주시드니]를 연상케 하였다. 그러나 이런 20세기

 문명속에 한쪽 길가에는 불볕 더위 아래에서 남자들은 원색 화장을

 하고 노끈으로된 줄치마로 국부만 가린채 젖가슴을  송두리채 내어

 놓은 사람들과  때묻은  브래지어만으로 젖 가슴만 겨우 가린

  진기한  모습으로 북소리에  맞추어 괴성을 지르고,

온몸을 흔들어 대며, 장례를 치르는 풍습은

너무나 대조를 이루었다.

 

 

롱아이랜드섬에 도착하자 할주로에 현대인의 복장으로 나타난 원주민들과 필자

 

 

교구청을 가기 위해 오후 2시 50분 비행기를

 예약해두고, 2시 5분에 공항에 도착했더니 늦었다고

 탑승을 거부해 결국 [포우트모레스비]에서 하루를 더 지내는

곤욕을 치렀다. 한시간전에 수속을 마쳐야 된다는 억척?같은 원주민

공항직원들의 말대로 이튿날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도 탑승하여 보니

40인승의 여객기엔 자리가 텅텅비어 있어 참으로 놀라지 않을수 없었고,

여객기를 전세낸 기분이였다. 이곳 선교사들은 항상 우산을 쓰고 다녔다.

언제 폭우가 쏟아질지 몰랐고, 또한 해빛이 강해 해빛을 피하는 방편

으로도 쓰고 다녔다. 1키나는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 정도인데,

 [싸이돌] 성당 주일미사 참석수는 약 3,4백명정도 인데 비해

주일 獻金(헌금)은 6키나(한국돈 6천원)정도였다.

 

 

 

 

그러나 김동기 신부님은 장사를 하지 않았다.

선교사의 목적은 복음전교라며 장사를 거부 하고,

정글공소에서 原住民(원주민)들과 同居同樂(동거동락)했다.

이제 [알렉시스하펜] 본당 신부로 발령받고 일하는 김동기 신부는

 8천키나(한국돈 8백만)면 구할수 있다는 반트럭을 구하여 원주민

 사목에 필수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양 방수 파푸아뉴기니기행문<9편>

1984년 3월 22일-4월 17일

 

文明(문명)의 異邦地帶(이방지대) 赤道(적도) 파푸아 뉴기니기를 가다

 

熔岩(용암) 쉴새없는 活火山(활화산)

        정글속 모기떼 견디기 어려워 

                  밤하늘 별무리도 장관 

 

국 천주교회 창립 300년대를 내다 보면서

 歷史(역사)에 길이 남을 일은 한국천주교회가 세계

교회속에 공헌하면서 [받는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발전

하는 모습이다.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진

성당이 파푸아뉴기니 마당교구 [기리]성당이다. 아울러 기리 성당에서

운영하는 국민학교 어린이 들이 불러 주던 파푸아 뉴기니 애국가는 모두가

힘차게 불렀다. 그 내용이 이러하다. Papua New Guinea Song Natonal

Anthem Oh rise all your suns of this land let us sing of our joy

to be free. praising God and rejoicing to be Papua New

Guinea shout again from the mountains to sea

 Papua New Guinea. let us rise our voice

 and proclaim Papua New Guinea .

 

 

 

연 재식 신부님이 건립한 <기리 성당>

 

 

1984냔 4월에 [기리]성당 신부로 발령

 받은 연재식 신부는 전임 이태리 [쟈꼬무치]신부가

 이태리에서 모금한 성금 1천만원으로 83년 11월에 착공하여

 韓國外邦宣敎會(한국외방선교회) 創設者(창설자) 최재선 주교님의

 1천 5백만원을 비롯하여 국신자들이 2천5백만원을 후원하고, 마당교구에서

4백만원을 지원 받아 연재식 신부에 의해 完工(완공) 됐다. 1984년 10월 24일

오전 10시에 [마당]교구 [레오아르크펠트] 대주교님의 주례로 역사적인 祝聖式

(축성식)이 있은 이날 축성미사에는 [가리]성당 주임 연재식 신부를 비롯하여

 한국 선교사제들과 敎區(교구) 司祭(사제) 20여명이 공동으로 집전하는

 가운데 500여명의 信者(신자)들과 韓國(한국) 大使館(대사관)

신효운 참사관 夫婦(부부)도 참석하여 뜻을 같이 했다.

 

歷史(역사) 학자들의 주장엔 1만년전엔

 4천 내지 4천5백미터의 山地(산지)에는 눈과

 얼음으로 쌓였다고 하지만 현재 눈은 볼수 없고,

草原(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가 찾아 갔을때 연 재식 신부님은

성당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고 있었다.

 

 

4천미터와 3천5백미터의 山地(산지)에는

 키가 작고 중심줄기가 분명치 않은 낮은 관목과

꽃이 없이 포자로 식하는 식물이 문포 되어있다.  

3천5백미터와 2천미터 아래쪽은 늪과 草原(초원)과 密林

(밀림)으로 형성돼 있다. [기리] 성당은 [라무] 강변 최북쪽 赤道

(적도)에 가까운 늪지대인데, 우기철에 접어들면 자동차가 진흙탕에

 빠져서 움직일수 없는 험악한 정글지대이기 때문에 목재소와 교구청이 있는

 [마당]까지에는 80Km의 속력으로 신부님이 해안선 도로로 8시간 손수 운전하며,

건축자재를 운반하는 역경을 딛고, 쌓아 올린 피땀어린 성전이다. [기리]성당

에서 (4월 5일 목요일)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신부님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탔더니 흙 먼지에 덜커덩거려 엉덩이가 아파 견딜수 없었다.

우기철인데도 더위와 파리, 모기떼, 독충에 견디기

 어려워 차에서 내려 쉴수도 없었다.

 

 

 

 

약 3시간을 정글을 누비며 [만남]섬 앞 해변가

 교우촌에서 야자수로 목을 추기고, 연기로 구운 생선으로

 허기를 체울수 있었다, 도중에 안식처를 �O은곳이 [다이버:Diber :

12시 30분]강 다리 밑으로 내려가 물가운데서 모기, 파리, 독충을 피해서

쉬어 빠진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敎區廳(교구청)에 도착하니 오후 4시였다.

[기리]성당 동북쪽 [만남]섬에는 쉴새없이 熔岩(용암)이 솟아 밤의 경치를

아름답게 수 놓은 활화산이 있다. 활화산의 장관을 구경하면서 더위를

 피하고 싶었으나 모기떼 때문에 가만히 앉아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글속의 밤 하늘엔 서울에서 볼수 없는

 별무리들이 장관을이루었고, 때마침 벌거벗은 원주민

 노인이 조카와 손자를 데리고 왔기에 한국의 이야기며 태권도를

 소개했더니 신기하고 놀라와 했다. 고산지대의 여인 옷을 입은 사람도

모기떼엔 견딜수가 없는데 벌거벗은 꼬마가 가엾기만해 궁리 끝에 준비한

새 런닝과 팬티를 입혀 주었다. 크기는 했지만 모기떼에 좀 보호할수 있겠다 싶어

입혔더니 참으로 좋아해 안아 주었더니 수줍어 하며, 웃었다. 재미있는 한때를

 보고 잤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일찍이 숙소로 젊은 부인과 아가씨가 �O아와

자기 아이에게 옷을 주어 고맙다면서 정말 아무짝에도 쓸수 없는 목거리를

가지고 와서 자기가 손수 만든 목거리라며 목거리를 주면서 한사코

 갖기를 원해 성의로 받았지만 주는 마음 같지 않았다.

 

 

 

 

[기리]를 떠나는 날!(4월 5일 목요일)

 석별의 아쉬움으로 손을 흔들면서 매우 섭섭해

하였다. 그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시사겔]공소 정글속에서 흰 나이롱 장갑을

잊어버리고 왔었다. 실은 버린거나 다름없이 잊고 있었는데,

정글속에서 하루를 걸어와야 되는 [싸이돌]까지 줏어 �O아

왔기에 정직하고 순박한 이들의 마음씨에 감탄했다.

 

 

 

 

한국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

窮餘之策(궁여지책: the last resort)으로

대사관에서 영화 2편을 빌려와 [돗줄로 요셉] 독일

신부님에게 16mm 영사기를 빌려서 [호국의 간성]과 [한국의

종교]라는 홍보 영화를 보여 주었더니, 꼬레아(Korea) !를

 부르며 참으로 신기해 했다. 이튿날 소문을 듣고 온

원주민들이 합세하여 또다시 졸랐다.

 

[싸이돌] 여관 강당에서 재 상영하였더니

 신비스러움과 놀랍고 부러운 눈으로 꼬레아 !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소낙비는 밤새 쏟아 졌고... 이제

한국외방선교회에서 하느님과 교회의 부르심을 받아 世界

(세계)를 무대로 복음을 선포할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젊음과 마음을 불사르고, 복음을 증거할 뜻있는

 젊은이들의 연락을 기다린다.

 

 

파푸아뉴기니 기행문<최종회> (10편)

 

1984년 3월 22일-4월17일

 

文明(문명)의 異邦地帶(이방지대) 赤道(적도) 파푸아뉴기니를 가다.

 

결혼 예물로 조개 껍질 교환 ~

        暴雨(폭우)도 재앙으로 믿어 ~

                  출산아기 재에 굴린뒤 씻어내 ~

                          祖上(조상) 두개골까지 지켜 ~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5년동안

사목교서를 내 보냈는데 내용이 200주년을

 지내는 정신운동의 根幹(근간)을 이루고 있다. 맨 처음

 아주 좁은데서 시작하여 각 사람이 성화되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그위에 다른일이 전개된다고 해서 1980년에는 [가정 성화의

 해] 81년에는 [개인적으로 보다 이웃으로 하는 [이웃 전교의 해] 82년에는

 이웃보다 공동체를 위해서 [본당공동체의 해] 83년에는 기초 단위의 교회인

[교구 공동체의 해] 84년에는 교구 공동체의 차원을 넘어서 전국 교회가

 믿음과 사랑속에 하나되는 [전국 일치의 해]로 교황님이 오셔서

 103위 복자를 聖人品(성인품)에 올린 뜻있는 한해를 보냈다.

 

 

 

 

 

85년에는 복음적인 삶을 구현하는

 빛이 되기 위해 증거하는 [증거의 해]로 정했다.

증거란 悔改(회개)하므로 하느님과 화해하고 용서로 이웃과

 화해하며, 사랑으로 이웃과 나눌 때 진정으로 증거 할 수 있다. 이제

 한국 교회가 성숙한 교회로 증거하는 것은 世界敎會(세계교회)에 공헌하

는 뜻으로 교황님이 가장 念願(염원)하시는 西歐社會(서구사회)에서 부족한

 선교사 파견이다. 지난날 수만명의 선교사들을 傳敎地方(전교지방)으로 파견하던

歐美(구미) 各國(각국)의 聖召(성소)가 감퇴되어 선교사 파견이 중단될 위기에 있으니,

한국교회와 같은 司祭(사제) 志望者(지망자)가 많은 젊은 교회가 이제 선교사를 양성해서

파견해야 할것이라고 지난 1975년에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로씨] 추기경이 방문하여,

 한국 주교들에게 선교사 파견을 간곡히 요청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마르코 16:15)는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명령을 따라 교회는 선교를 근본사명으로 삼고 있다.

 

(선교교령2) 신자들은 누구나 신앙을

전파하고 선교를 할 의무가 있다.(교회 헌장 17)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으며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복음선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근본적인 소명이고, 책임이다. 사도 바오로는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앙화가 미칠것이라(고린도 9:16)고 했다. 교회는 복음 선포를 위한

 곳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성사로서 은총을 베풀고, 미사성제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사업을 영속시키기 위하여 교회는 존재한다. 복음 전교를 영원생명에 관한

 내용으로만 선포한다면 완전한 전교라 할수없다. 복음이 인간의 현실적인 생활과

동떨어지면 아무런 의미도 줄수 없다. 교회가 전교할 내용은 個人(개인)의

權利(권리)와 義務(의무), 家庭生活(가정생활), 社會(사회) 共同生活

(공동생활), 國際關係(국제관계), 平和(평화), 正義(정의)등으로

이것들에 대한 명백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사목헌장 47:52) 또한 기아와 질병,

문맹, 부정, 정치적 비리, 등으로 부터 충만한

해방을 위한 노력의 복음전교 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음전교가 고통과 궁핍중에 있는 이웃에 대한 복음적

 사랑을 증거 하는 것이며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고 실천한 것으로 교회 또한 이렇게

 실천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교

 

회가 선포하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성령과 함께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나게 하시어 모든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고 볼 때 파푸아뉴기니에 이미 한국교회가 선교지로 결정한 사실은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로 맺어졌다. 그들에게 하느님이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알려줄 책임과 의무를 대신하는

宣敎司祭(선교사제)들에게 뜨거운 사랑으로 지원

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食水(식수)가 귀한 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잿더미에 굴려서 씻기는 원시적인

 생활을 하며, 成年(성년)이 되면 코뚜레를 한다. 결혼시엔

예물로 조개껍질, 칼, 화살, 돼지, 개등을 돈대신 사용한다.  

老年(노년)이 되면 祖上(조상)의 두개골을 納骨堂(납골당:

laying one's ashes to rest)에 안치하고 지킨다.

祖上(조상)의 뼈를 누군가가 함부로 다루면

재앙이 내린다고 믿는다.

 

 

 

 

비가 오는것도 재앙으로 믿고, 화를

 내는 祖上(조상)에게 비를 멎게하고 살려 달라고

 祖上(조상)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면서 외치는 族長(족장)의

두려움에 질린 한 젊은이는 돼지도 바치지 않았고, 목거리도 훔쳤다고

 절규하며 울며 사죄한다.  돼지도 큰 것을 바치고 목거리도 훔치지 않고,

모든 것을 바칠테니,   祖上(조상)의 靈魂(영혼)은 노여움을 풀고 비를 멎게

 해달라고 절규한다. 비가 그치면 祖上(조상)이 노여움을 풀어서 그쳤다고 믿는다.

마을 어귀에 있는 나무에 귀신 붙어 마을에 재앙이 있다고 믿고 나무를 자른다.

또는 물이 神(신)이라고 믿고 있는 部族(부족)들이 아직까지 存在(존재)하는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에게 福音(복음)이 人間(인간)의 현실적인 생활과

동떨어지면 아무런 의미도 줄수 없다는 敎會(교회)의 입장에서

관심을 가져 주어야만 될 것이다.

 

파푸아 뉴기니 기행문 [끝]

 

 

가톨릭 韓國外邦宣敎後援會

(한국외방선교후원회) 顧問團(고문단)

總務部長(총무부장) 兼(겸)

 弘報部長(홍보부장)

 

 

그날의 추억을 새기며 양방수 

 

 

양방수님이 이 글 끝에 다음 글을

이메일로 보내오셨기에 글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함께 올렸습니다. 

 

 

그날의 생생한영상이 없어 아쉬움은

 있어도 그때의 일을 글로보며 음성으로 함께 듣노라니 
 지나간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 올라 이 글을 씁니다.  그때의

어렵던 선교지 파푸아 뉴기니에서 모기에게 물려 말라리아(Malaria)병

 증세로  파푸아 뉴기니 수도 포트모레스비 수도원에서 고생 하던   생각이

엊그제 같이 생각이 납니다. 당시 말라리아 병에 감염되면 소위 학질(瘧疾)로

 학질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매년 2억에서 3억 명의 사람이 감염되고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위험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속수 무책이였는데 다행이 출국전

 석달전부터 예방약을 먹은 덕에 병을 이길수가 있었다고 생각 됩니다. 모기(학질모기)가

 사람을 물면 모기의 침샘에 있던 말라리아 원충이 혈액 내로 들어간 원충은 사람의 간으로

들어가서 성장하며 잠복기가 끝나면 사람의 적혈구로 침입하여 발열하게 되고, 원충이

적혈구에서 다시 성장하면서 암수 생식모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데 이 때 말라리아

매개모기인 중국 얼룩날개모기가 사람의 피를 흡혈하면 이들이 다시 모기를

감염시킴으로써 점차 전파되는 병으로 “학질” 또는 “하루거리

”(간일학(間日瘧)라고도 부릅니다.

 

이 전염병으로 동갑내기인 김 동기 신부님은

그때 파푸아 뉴기니에서 전교하시다가 모기에 물려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시다가 용케도 살아서 중앙 아시아 카자흐스탄 알마티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CIS)에 위치하고 북으로는 러시아, 동으로는

키르키스탄, 남으로는 우즈벡스탄으로 둘러 쌓여있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로,

수도는 아스타나이고 알마티는 경제수도라고나 할까요. 면적은 남한의 27배이고

 인구는 1,500만 명이며 세계 5대 산유국으로써 자원은 풍부하지만 빈부격차가

 많이 나는 나라로 나자로바에프 대통령이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할 때부터

 일인 독재체제로 군림하고 있는 나라로 공무원들의 부패로 썩을 대로

은 나라로 국민들만 고생하는 그런 나라)에서 전교를 하시다가

 지금은 귀국하여 경북 산간 지방에서 여생을 보내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병은 주로 모기에서 물려서 앓는 것으로

 때로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전염병으로 주로 열대

지방에서 발병되는 질병으로 조선시대 이전부터 한반도

에서도 흔한병으로 1945년 해방 전후로 농촌에서 많이 앓던

병으로 생각 납니다. 원인인 기생충은 삼일열원충, 열대열원충, 사

일열원충, 난형열원충등으로 분류되는 위험한 전염병이라고 생각 됩니다.

이 기행문은 저에게는 이토록 지울수 없는 많은 추억남아 있습니다.   당시

30여명의 한국 외방전교 후원 고문단행중에 아무도 자원을 하지 않았지만

저는 순교의 정신으로 파푸아 뉴기니를 김 남수 주교님의 부탁으로 오지를

갔다 왔습니다. 그때 홍콩, 대만, 파푸아 뉴기니, 호주 시드니, 일본 동경

교포 사목지를 방문한 많은 추억이 떠오름니다. 춘하추동방송 덕분에

또 다른 차원의 기록을 남기게 되어 감개가 무량합니다.

 

 

윤후현(팔방미남)선생님 글

 

 

파푸아 뉴기니, 기행문을 쓰신 양방수님!

대단 하십니다. 이 글을 보니 아프리카 케냐,에서

선교 활동을 하시다가, 운명을 달리하신 "울지마 톤스!'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님!이 생각 납니다. 인류의 공존과 기독교

 정신의 합체를 위하여 애쓰신 선인들의 노고에 새삼 고개가

 숙여집니다. 미주 방송인 협회 양방수 총무국장님! 수고가

너무 많으셨습니다. 미래의 체험 앞에 한발 더 다가가신,
용기와 신념앞에 고개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소식 감사합니다.춘하추동방송,

이장춘 사장님!...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자신의 생활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바치신 분들의 선교와 개척의 이야기 잘 읽었

습니다. 두고두고 읽게 될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어느 부족은 자체 문자가 없어서 한국에서 나가신 선교사

께서 우리 한글을 그들에게 그들의 문자로 사용하게 하려고

가르치신다고 오래전에 들었습니다. 신앙에 관한한 제가

우럴어보고, 본받아야할 분들이시고 주께서

 많은 상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파푸아 4.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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