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방송인협회

파푸아 뉴기니, 1984년 양방수님 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생생한 체험 기행문

이장춘 2015. 1. 15. 21:32

  

 

이 글은 미주방송인협회  양방수 총무국장님이

1984년 3월 천주교 韓國外邦宣敎會(한국외방선교회)

홍보부장으로 파푸아 뉴기니 (papua new guinea) 오지를 가, 

선교활동을 하면서 체험한 생생한 현장 기록입니다.  파푸아 뉴기니!  

지금은 국교가 수립된지 세월이 흘러 사업상의 일로나 관광 등 여러 일로

 왕래가 많아서 잘 알려져 있지만 1984년 그때만 해도 호주로 부터 독립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이고 (1975년 9월 독립) 우리나라와 국교가 수립된지도

얼마 안도어 (1981년 12월 한국 상주공관 개설)우리에게는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이때의 얘기를 엮은 글이라 깊은 관심

속에 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염수정 추기경

 

 

양방수님이 이 글을 보내 오면서

그곳에 가게 된 배경을 함께 보내오셨습니다.

1960년대부터 천주교회 신자가 되어 참으로 열심히

후암동 성당에서 활동하면서 사귀던 친구 "염 수정"씨가

 추기경으로 꿈을 이루어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찬사를 드린다는 말씀과 함께 보내온 글입니다.  (편집자 주

 : 염수정씨는 김수환,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2014년

 2월 22일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추기경

서품을 받게 됨  

 

어느날" ~수정아! 앞으로 뭐 할래?" 하니

 "나 신부 될꺼야!" 하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참으로 많이 흘렀읍니다. 저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다가

김 남수 주교님께서 하신 한국 외방선교 후원회 고문으로 위촉을 받아

주교님의 부탁으로 1984년 3월에 파푸아 뉴기니 오지를 가게 됩니다. 그냥

 사목견학만 하기에는 그렇고 하여 많은 사진을 촬영해서 대치동에서 사진 전시회도

해서 교회의 보탬이 되기도 하였고, 1시간 기록영화를 만들어 온 자료가 있지만 영사기가

없어 볼수가 없고, 저의 육성으로 녹음한 영화 해설한 녹음을 떠빙해서 보관하여 컴퓨터에

 수록한것과 파퓨아 뉴기니 기행문이 남아 있어 보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행문은

 1편부터 10편까지로 되어있고 기록영화에서 떠빙한 녹음은 약 70분으로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1편의 글과 약 10분정도의 육성을 올리고 나머지는 양방수님의

블로그 글을 연결했습니다. 기회 되는데로 리려고 합니다.

 

  

파푸아 뉴기니, 1984년  양방수(미주방송인협회 총무국장)님의 생생한 체험 기행문

 

 

양방수의 파푸아 뉴기니 기행문 1편

 

 

文明(문명)의 異邦地帶(이방지대) 赤道(적도) 파푸아뉴기니를 가다.

 

 

物質文明(물질문명)에 거부반응 깊어,

 

博物館(박물관)뜰에 車(차: CAR) 뒤집어 놔!

 

神父(신부) 4명 派送(파송) 6백여명에 領洗(영세)줘 !

 

 

2백주년의 가장 뚜렸한 結實(결실)은

103위 聖人(성인)이 誕生(탄생)됨과 동시에

韓國外邦宣敎會(한국외방선교회)가 誕生(탄생)하여

[받는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發展(발전)하는

現實(현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김 남수 주교님께서 4신부님을 파견 하시는 장면

 

 

[너희는 가서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라 !]는

 예수님의 말씀은 外邦宣敎會(외방선교회)의 設立(설립)

理念(이념)이다. 創設者(창설자) 최 재선 주교님의 後任(후임)으로

1979년 4월에 김 남수 주교님이 총재로 선임되어 동년 7월 18일 에는

 [복음전파]라는 敎會(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동참하려는 共同體(공동체)

 後援會(후원회)가 창립, 每月(매월) 셋째 水曜日(수요일) 오후 2시

 이태원 聖堂(성당)에서 은인들을 위한 미사와 월례회를 갖고

祈禱(기도)하는 마음으로 후원해 주시는 소수 은인들의

힘을 입어 1981년 3월 7일에 김동기 신부님이

첫 선교 司祭(사제)로 誕生(탄생)되었다.

 

 

 위의 필자는 양방수님임

 

 

 

타 敎區(교구) 세 신부님이 영입되어

 <메리놀> 한국지부에서 宣敎師(선교사)로서의

 교육을 받고, 동년 11월 11일에 출국하여 필립핀 아테네오

대학에서 언어 교육을 수료하고, 파푸아 뉴기니 마당 교구에서

 司牧(사목) 실습을 받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제 제 각기 본당 신부로서

활동 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 외방선교회란 불란서 빠리 외방선교회가 1658년

 7월 29일에 창설된후. 1660년 중국 南京(남경)에 교구가 설정 되면서 朝鮮(조선)

지역은 南京敎區(남경교구)에 포함 되어, 불란서 파리 외방 선교회의 管轄(관할)에

있다가. 한국 가톨릭교회는 1831년 9월 9일에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그 管轄(관할)에서 벗어나 독립 신교구인 “조선교구”로 나래를 펼치고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나타낸 한국 가톨릭 외방 선교회가

 1975년 2월 26일에 韓國(한국) 主敎會議(주교회의)의

 總會(총회)의 결의에 따라 發足(발족)되었다.

 

 1979년 7월 18일에 이 會(회)를 돕기 위한

 韓國(한국) 外邦宣敎會(외방선교회) 後援會(후원회)가

發足(발족)되어 회장에는 3.1독립 운동가로 활약하신 李 甲成

(이 갑성)씨의 부인이신 崔 馬利(최 마리), 마리아 女史(여사)께서

被選(피선)되어 활동하셨고, 이 後援會(후원회)를 돕기 위한 顧問團

(고문단)이 發足(발족)되면서 會長(회장)에는 순천향 병원에서 근무

하시던 정신의학 박사이신 유 석진(베드로)께서 맡아 주었고,

 유 덕천(아벨)씨께서 幹事(간사)로 활동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사진 : 좌로 부터 ~ 홍보부장 : 양 방수(바오로).  총무: 김 용훈

(알렉산드로).  부회장 : 이 경호(시 몬). 간사 : 유 덕천(아 벨).

 

 

용산구 이태원 성당에서 월례회를 마치고 ~

소수 후원 회원들과 함께 ~ 오른쪽 뒷줄에 선 필자

 양 방수(바오로)와 지도 신부님 길 홍균(이냐시오)신부님

좌측에 후원회 회장님이신 최 마리 여사님(1919년 기미독립 운동

 33인중이신 이 갑성 옹의 부인). 다음 수녀님. 다음 부회장 ~ 길 신부님

 오른편에 부회장 이 경호(시 몬)씨와 간사를 맡아 열심히 뛰신 유 덕천

(아벨)씨, 총무를 맡아 수고 하시던 김 용훈(알렉산드로)씨 등

 많은 회원들의 사진이 없어 아쉽다.

 

 

 

 

3백년대를 향한 구체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준

宣敎(선교) 司祭(사제) 해외 파견 3주년을 계기로 선교지

 파푸아 뉴기니 司牧(사목) 現場(현장)을 살펴보고 무엇이 문제인가 ?!

수수께기를 안고, 홍콩에서 보잉 707편으로 8시간을 비행하여 파푸아 뉴기니의

관문 首都(수도) 포오트모레스비(PORTMORESBY)에 도착(1984년 3월 24일)하여

機內(기내)에서 내렸더니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싸 마치 한국의 삼복더위를 연상케

 하였다. 大使館(대사관)에 근무 하시는 정내권(바오로) 부영사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政府

(정부) 청사와 國會議事堂(국회의사당)을 방문하였더니 現代式(현대식) 건물로 잘 되어

있어 石器時代(석기시대)]의 後進國(후진국)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박물관뜰에 부서진 자동차(CAR)를 엎어 놓고 CAR GO CULT라고

전시해 놓은 광경을 보더라도 물질 문명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공항 대합실에는 人種(인종) 展示場(전시장)

같은 느낌으로 혼잡을 이루었고, 대합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는 무더위를 더욱더 부채질 하였다. 40인승의 소형 여객기로

 한시간후엔 [쿠쿠쿠쿠족]이 사는 하일랜드의 도청 소재지

 [고로카:goroka]에 도착 할수 있었다.

 

 

 

 

파푸아 뉴기니, 마당 도청 소재지 공항에서

 필자 이곳에서 20분 정도 비행하여, 다시 교구청이 있는

 인구 2만의 도청 소재지의 “마당”에는 40여개의 섬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港口(항구)가 있었다. 마당 교구가 있는 공항에 도착(1984년

 3월 25일)하였더니 [마당] 교구장님이신 <아르크펠트, 레오>대주교님께서

73세의 高齡(고령)이신데도 자동차를 손수 운전 하시며 마중 나오신 성의에

감탄 하지 않을수 없었고, 더욱이 대주교님께서는 美國(미국) 사람으로

31살에 主敎品(주교품)에 오르시어 오늘날 까지 이곳에서

교구장님으로 선교하고 계신다고 하니 더욱더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나라 4명 신부님들의 활동에 대해서

대주교님의 평가를 들어 봤더니 < 한국의 4명 신부들은

어려운점이 많음에도 불구 하고 대단히 일을 잘하여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들이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파푸아뉴기니>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볼 때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고 칭찬해 주셨다.

이곳 마당 교구는 대주교님을 모시고 한국의 4명 신부와 합해서 12개國(국:나라)의

 37명의 신부님들과 6개국의 平信徒(평신도)가 모인 世界(세계)18개 國籍(국적)을 가진

 宣敎師(선교사)가 파견되어 있는 敎區(교구)로써 韓國(한국)의 선교 神父(신부)들은 파견

된지 2년만에 모두 본당 신부로 발탁된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다. 특대주교님께서는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에게 당부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어느곳에서도

같이 계시고 특히 한국교회에서 예수님께서 활동하셔서 많은 사제들을 배출하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4분의 司祭(사제)가   이땅 <파푸아뉴기니>에 와서

 福音(복음)의 결실을 맺는데 대해 대단히 感謝(감사)하고, 이러한

 일들이 계속적으로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남 태평양 싸이돌의 바닷가 필자가 타고 다닌

 경비행기 대주교님께서 韓國外邦宣敎會(한국외방선교회)

4명 신부님들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시는 말씀을 듣고 가슴 뿌듯한

마음으로 操縱士(조종사) 까지 4人(인)승인 단엽기(P2DWL)를

 타고 김동기 신부님의 전교지 “싸이돌”로 떠났다.

  

<공룡같이 생긴 뉴기니섬의 등을 나르는 비행기는

 <비스마르크>의 동남쪽 해변을 끼고 돌면서 ~ "싸이돌"로

가는 바닷가 전경> 공룡같이 생긴 뉴기니 섬! 공룡의 등을 나르는

단엽기는 <비스마르크>의 해안선을 끼고, 한 시간을 동남쪽으로 날았다.

<뉴기니>는 1883년부터 1914년까지 31년간이나 獨逸(독일) 統治下(통치하)에

있으면서 獨逸帝國(독일제국)을 建設(건설)한 프러시아의 政治家(정치가)인 [비스마르크]

 이름을 따서 이 바다를 비스마아크 바다라고 명명하여 지금까지 불리어 지고 있다.

[비스마아크] 바다의 해안선을 끼고 있는 [싸이돌] 지역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

외방선교회 김동기 신부님이 3년동안 마라리아 병에 시달리면서 傳敎(전교)

하여,    20여군데의 새로운  公所(공소)와 6백  67명이라는 영세자를

 誕生(탄생) 시킨곳이라고 단엽기의 操縱士(조종사)인 <스티븐>

수사님이 안내 해 주었고, 남태평양의 전경은 太古(태고:

ancient time)의 모습 그대로였다.

 

 梁芳秀(양방수) 바오로(Paul)

가톨릭 韓國外邦宣敎後援會(한국외방선교후원회)

顧問團(고문단) 總務部長(총무부장) 兼(겸)

弘報部長(홍보부장)

 

 

양방수님 글 더 보기

 

아래 영문자를 클릭하시면

양방수님의 "파푸아 뉴기니아 기행문"

(카테고리 : 양방수 기행문) 1편부터 10편

 까지를 보실 수 있으며 이 밖에도 수많은

주옥같은 글을 접 하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bangyang/1515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아, 이번에 새로 추대되신

염수정 추기경님과 양방수 선생님

 두분이 친구이시군요. 오랜 우정을 통해

두분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귀히

쓰시는 분들임이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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