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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 한국말 첫방송 1965년 그때 그 목소리 김영우 아나운서와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2014. 3. 28. 12:18

 

 

 

그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1965년 6월12일 오전 7시 반부터 미국의

 하늘 아래서 울려 퍼진 한국인에 의해서 실시한

 최초의 한국어방송 그때 그 방송을 듣는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와 음향이다.      LA 한인사회의

 싹이 터 오르던 그때의 방송이다. 부분에

관련 동영상 네편을 올렸다.

 

 

미국내 한국말 첫방송 1965년 6월 12일 그때 그 목소리

 

 

미국 잉글우드에 있는 KTYM FM

 103.9 M/C 주파수에서 김영우아나운서의

개시맨트에 이어 미국땅에서 그토록 그리던 ‘애국가와

아리랑이’ 울리면서 미국에서 한인방송은 시작되었다. 그

방송의 주인공 김영우 아나운서가 일생동안 모은 방송자료를

춘하추동방송에 보내오셨다. 그 자료를 받는 순간 벅찬 감격과 

고마움에 다른 일들을 뒤로하고  춘하추동방송 버전에

 맞도록 인코딩, 시청하면서 편집했다.

 

 

 

 

김영우 아나운서가 살아온 얘기를

비롯해서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동요의 역사 안병원, 권길상 선생님회고록 , 독립운동의 상징

안창호선생님의 큰 딸 수산 안 카디 가족이야기, 미국 우주공학에

기여한 정재훈박사, 원로언론인 이종성회장 회고록, 여장부 소니아 석의

 미주생활 반세기, 일제강점기 남인수와 쌍벽을 이루었던 가수 백년설 등  

미국, 캐나다 등 미주지역에서 자랑스럽게 살아온 분들의 얘기가 있다. 사진과

 영상, 음성 등으로 엮은 다큐멘터리 내용물은 어느 개인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일제강점기부터릐 한민족, 한겨레의 숨결이 담겨있고   미국 이민사가

담겨있으며 미주방송 50년사가 담겨있는 한민족, 한겨레가

걸어온 서사시이고 대하드라마다.

 

우리민족 삶과 역사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주이민사, 그리고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모으고 꿈을 일깨워준 50년의

미주방송사는 대한민국 방송사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주방송에 대해서는 국내에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미주방송인협회의 노력으로 

부분적으로 알려져 오던 미주방송사 (미주放送史)가 

이번에 보내주신 자료로 더 널리 더 깊게 알려질 수

 있어서 가뭄에 물을 만났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2년여에 걸쳐

MBC 아나운서로 활약했던 김영우님이 그때의

자료도 함께 보내주셔서 초기 MBC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1961년 MBC가 개국을 앞두고 그해 5월, 1기

아나운서를 선발, 9월에 5명의 새로운 아나운서를 발령했다.

 김영우, 이장우, 원종관, 박진현, 장인숙 등이 그분들이다.  이장우,

원종관 아나운서는 TBC, KBS 등 국내에서 오랜 세월 활동해서

알려져 있다. 장인숙 아나운서는 MBC프로듀서와 보도국장을 지낸

김준철의 부인이기도 하다. 김준철님은 1950년대 KBS에서

근무하다가 MBC로 옮겨 MBC개국요원이 되었고 장인숙

아나운서는 MBC 개국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가까이 지내다가 부부 연을 맺었다.

 

 

 

 

장인숙 아나운서는 1957년

KBS에서 최초 공개모집한 프로듀서

김영우님의 부인 김신실 여사와 절친한 친구로

뒷날 가까운 인척이 되었다. 김영우 프로듀서와 형제

처럼 가까이 지내는 필자가 김영우님 내외분으로부터

 장인숙 얘기를 들어왔다. LA에 사는 장인숙아나운서

 3년전까지만 해도 자주 국내에 왕래가 있었지만

 요즈음은 발걸음이 뜸해졌다.

 

김영우 아나운서를 김영호 아나운서와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다. 처음에는 필자가 김영우

아나운서를 가르켜 미국에서 최초로 한인 방송을 창설한분

이라고 말하면 그분이 김영호 아나운서이지 김영우 아나운서가

 아니라고 오히려 필자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는 분도 있었다. 김영우

아나운서가 1963년이래 미국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즈음은 김영우 아나운서가

국내에서 알려지고 있고 이성화, 정흥숙 아나운서 그

시대에 아나운서생활을 함께 했다는 분들이 

계셔서 친근감을 더 해가고 있다.

 

 

 

 

 

필자도 김영호 아나운서를 안다. 김영호

아나운서는 1961 KBS TV 개국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훌륭한 인품에 아나운서로 재능이 있어 공개방송 등 처음부터

중요한 프로그램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가 송한규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1967년 미국의 소리 VOA로 파견 갔다가 미국에 머물렀다. 오랜기간

 미국 동부에 사셨다.  요즈음 국내에 오셨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자세한

 소식은 모른다. 위 사진은 김영호 아나운서가 LA에 왔을 때 KTYM

 FM 칭설 때부터 김영우 아나운서를 도와 방송한 서정자와

 엔지니어 이순재, 김세대가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KBS 성우출신 서정자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김영우 아나운서와 만나 방송을

 시작할 때 공지사항과 시낭송, 소설낭독 등을

 맡았다. 지금은 시애틀 ‘라디오 한국’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 미8군 AFKN-TV엔지니어

였던 이순재님은 기술를 맡았다.

 

 

 

 

김영우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라디오 코리아’ 방송의 개국을 알리면서

당시 안광수 LA총영사의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축사와 조영삼 초대 남가주 한인회장의 인사말이 방송

됐다. 위, 아래 사진은 두 분의 모습이다. LA를

우리말로 나성이라고 부른다.

 

 

 

 

 

 

KTYM FM 한인방송을 창설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 소니아 석 여사다. 김치공장과

부동산업으로 많은 돈을 모은 소니아 석은 당시 재미

한인회 홍보이사로 있으면서 30 달러의 전파료를

부담 하는 등 큰 역할을 담당했다.

 

  

 

 

미주한인방송 개국의 주인공 김영우

아나운서는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서대문에

있는 미동국민학교를 다니고 6년제 서울농업학교 수의 축산과를

나왔다. 6.25전쟁이 끝나면서 1954년 홍익대학교 미술학과를 갔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수의과를 포기하고 미술학과를

택한 것이다. 미국유학 꿈을 그리던 김영우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시청각교육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1961년 MBC가 개국준비를 하면서 아나운서가

 되어 2년여를 근무 하다가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중 카메라멘을 하기도 하고

 노동을 하기도 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만화

 영화사에 입사 수많은 만화를 그리면서 만화영화에 힘을

기울이던 중 1965년 6월 12일 최초의 미주 한인방송 전파를

 내보내면서 오늘날 미주 한인방송의 첫 기틀을 마련했다.

오랜 세월 방송을 해 오셨고 자료를 모아오셨다.

 

 

 

김영우 아나운서 옆에 서 계신분이 부인  김인광( 지인광)여사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1965년 도미 1966년 부터 미국 병원에서

근무했고  50 여년의 간호사 경력이 있으며 두분 사이에  1 남 2녀를 두었다.

 김영우 아나운서가 대학시절 유학준비를 하면서 기독교 태화사회관

에서 영어공부를 했을때 만난분들과 함께 한 사진이다.

 

 

은퇴하던 날 미주방송인협회 김정수회장님으로 부터 감사패를 받는 깅영우 아나운서

 

 

올해 84세가 되어 올 2월 12일 방송일선에서

은퇴하며 그동안 사용하던 장비와 자료를 UCC도서관에

 이관했고 또 한편으로는 춘하추동방송에도 자료를 보내 주신

 것이다.    아직 보내주시지 못한 자료도   준비 되는대로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성심성의껏 관리하면서  이 자료를

바탕으로 미주방송의 역사, 미주 이민사를 널리

 알리는데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김무생 선생님(아나운서) 글  

 

*대선배님 김영우 아나운서님의 방송으로

엮어진 삶을 통해서 "또 하나의 인생의 불꽃"을 발견

하게 됩니다. 이국땅에서도 방송을 통해서 제2의 방송의 역사를

 기록하셨군요! 이렇게 생생한 자료들을 여기 "춘하추동 방송" 까지 항공

우편으로 공수가 돼 자료의 보고(寶庫)의 이 곳간이 더 풍성하게 된 것 같아

 행복해집니다. 연세가 꽤 되셨는데도 아직도 해야 할일이 있다고 말씀하시다 못해

 그 일을 하시는 모습에서 삶의 의지를 배웁니다. "춘하추동 방송"을 이끌어 가시는

 이장춘 이사님과 여기에 기록되는 모든 분들의 그 삶의 모습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보배 중의 보배 같아서 볼 때마다 '보석의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기분입니다. 김영우 대선배님 더 건강하게 지내시고

 하시고자 하시는 그 일들이 만사형통 하시며

 축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유경환(유카리나) 여사님 글

 

비록 고국을 떠나 이국에 살고 계신다해도,

 내 어머니의 나라를 한시인들 잊을리야 있었을까만은
고국을 떠나보면, 진정 자신이 얼마나 내 나라를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꿈속에서라도 그리게 되지요. 해외에 계시는 방송인

들에게는 KBS나 MBC 보다도 한국에 '춘하추동 방송'이 더 따뜻하고

 형제간의 우애같은걸 느끼며 찾게되는 고향집 같은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장춘 국장님의 열성으로, 흩어지고 묻혀있던 사진이나 기록들이

 많은 분들앞에 알려지고 보여지니, 이 귀한 기록들이

 잘 보전되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

 

 

답 글

 

오랜세월 해외에 계시던 유여사님이라

해외에 계신 동포들의 마음알 잘 아시는 군요.

제가 국제방송국에서 근무한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인터넷이나 위성방송이 없던시절이라 대출력 송신 중파방송이나

단파방송으로 세계 각지에 방송을 내 보냈지요. 이역만리 남의나라 땅에서

애국가를 듣고 아리랑을 듣는순간, 또 고국의 방송을 듣는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고국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깊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한다고 했습니다. 세계 어느곳에

살던지 한겨레 한민족은 하나였습니다.

올리신 글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정부 아나운서님 글

 

재미 김영우 선배님이 보내주신

귀한 자료들을보고 읽고 음성까지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방송이라는 단어에 세상에 널리 알린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들어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한분의 노력으로

이렇게 귀하고 방대한 자료가 오래전부터 완벽하게 보존되어온 사실이

 놀라웠고, 그것을 역시 한분의 노력으로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기적같은 일을

이뤄내고 있는 춘하추동 방송에 보내,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에게 널리

알리게 된 쾌거를 바라보며 후배로서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재미 김영우 선배님과 춘하추동방송이장춘 선배님! 두분 합작의 시너지를

 물씬 느낍니다. 구경이나 하고 있는 저희는 손바닥이 닳도록 끊임없이

 박수라도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명 두분 다. 청사 없는

방송사의 연봉없는 영원한 회장님이십니다. 두 선배님의

 방송에 대한 애정과 헌신에 거듭 경의를 표합니다.

 

 

 

관련글 보기

 

 

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내(미주) 한인(한국어)방송 ( 4 )

http://blog.daum.net/jc21th/17782092

 

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내(미주) 한인(한국어)방송 ( 3 )

http://blog.daum.net/jc21th/17782089

 

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내(미주) 한인(한국어)방송 ( 2 )

http://blog.daum.net/jc21th/17782087

 

김영우아나운서 미국 이민사회와 함께 한 방송 50년

http://blog.daum.net/jc21th/17782051

 

김영우(Richard Khim) , MBC개국 아나운서 미국내의 방송활동 50년을 축하합니다.

http://blog.daum.net/jc21th/17782043

 

미국에 사는 한국인, 한국방송인들

http://blog.daum.net/jc21th/17781990

 

 

 

미국내 한인(한국어)방송 동영상으로 보기

 

 

김영우 아나운서와 함께 한 미국내

한인(한국어)방송을 네게의 동영상으로 나누어

올렸습니다. 그때의 방송은 라디오방송이라 소리만

 있던것을 뒷날 김영우 아나운서가 사진과 영상을

넣어 동영상으로 제작한것입니다. 동영상을

보시기전에 음향을 끄시고 보셔요.

 

 

 

 

미주 한인방송 첫 전파발사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B7DY7g0RPq4 

 

미국내 한국인 방송 2

 

 

 

 

미국내 한국인 방송 3

 

 

 

 

미국내 한국인 방송 4

 

 

 

 

 

 

귀중한 자료를 항공우편으로 보내주신

김영우 선생님과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신 미주방송인협회 김정수회장님, 양방수

총무국장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김영우 한인방송.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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