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孫仁鎬)! 가수인가? 녹음 기술자인가? 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가수라고도 하고 영화녹음을 하는 기사라고도 한다. 2013년 4월 22일 1319회 가요무대 특집에 나온 87세의 가객 손인호는 비 내리는 호남선, 한 많은 대동강, 나는 울었네. 해운대 엘레지 등 그 인생에 가장 의미 있는 노래를 직접 부르 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 듣고 계시는 음향은 그날의 가요무대 51분 중 7분 반의 도입부분 두곡이다.
손인호(孫仁鎬) 비 내리는 호남선, 한 많은 대동강, 영화녹음기사
본명이 손효찬(孫孝贊)이었던 손인호가 부른 노래 1954년의 「나는 울었네.」가 그의 데뷔곡이라면 1956년의「비 내리는 호남선」은 대통령선거 투표일 열흘을 앞두고 세상을 뜬 신익희선생님을 추모하면서 순식간에 전 국민적인 노래로 승화 되었지만 결국은 금지곡이 되어버린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고 넓게 새겨지면서 불길처럼 번져나갔던 그 노래 이미 써 올린 글이 있어 밑에 연결한다. 「해운대 엘레지」가 손인호를 가수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해 준 노래라면 「한 많은 대동강」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특히 실향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노래다. 그는 150여곡의 대 히트곡을 남겼다. 제2의 남인수라고 말하느 사람도 있다.
손효찬이 가수였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노래를 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르고 따라 부르면서 번져나갔고 또 그를 가르켜 가수라고 부르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손인호가 얘기를 하던 중 가요무대 객석에 앉았던 부인 이선자 여사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도 결혼할 때는 가수임을 몰랐다고 하자 부인은 그렇다고 했다. 손효찬(孫孝贊)이란 본명으로 영화 녹음 기사를 했기 때문이다. 국립영화 제작소, 영화진흥공사 등에서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 등등 대한미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2,000여 편의 주옥같은 영화 녹음을 했고 7회의 녹음부문의 영화 대종상을 받은 그를 당연히 녹음기사라고 했고 1955년에 결혼을 한 부인도 한참동안을 그리 알고 살다가 어느 날 라디오방송에서 그의 노래가 나오는 시간에 이 노래가 나의 노래라고 했기에 그 방송을 듣고서야 아! 남편이 가수이기도 한 것을 알았다.
부인 이선자 여사
수풍 땜 수몰지에 살았던 손효찬은 수풍 땜이 건설될 때 집이 사라져 만주로 갔다. 10년을 거기서 살다가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 왔을 때 관서지방을 대상으로 하는 평양 콩쿠르가 있었다. 여기에 응모한 손효찬이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면서 그 대회에서 장원이 되었고 그것을 본 심사위원들은 서울에 가면 가수로 대성 할 것이라고 서울행을 권유했다. 그 권유따라 서울로 왔을때 마침 김해송(이난영의 남편)이 거느린 우리나라 최고의 쇼단 KPK에서 단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응모해서 300명의응모자 가운데 단연코 1등으로 입선되어 우리나라 최고의 쇼단 단원이 되었다. 2, 3년을 하는 동안 6.25가 일어나고 쇼단을 이끌던 김해송이 납북되는 등 인연이 끊겨 오갈길이 없던 손효찬은 전쟁중 군생활을 거쳐 영화녹음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시작된 영화녹음은 일생동안 녹음기사라는 직업표지가 붙었다. 그러면서 노래를 계속했다. 1954년 작곡가 박시춘으로부터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하면서 가수로서의 길이 열렸다. 그러던 중 1956년「비 내리는 호남선」을 부르고 곧이어 신익희 선생님의 서거소식이 전해지면서 묘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사람들은 신익희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라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이 노래를 불러 손인호는 어려움을 겪었고 노래는 금지곡이 된 것이다.
그 무렵부터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짝사랑, 사랑찾아 칠백리, 이별의 부산항, 물새야 왜 우느냐 등을 불러 히트시킨 손인호는 1960년 백영호 작사 해운대 엘레지로 그의 가수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레코드가 만들어져 노래가 불리고 라디오방송을 통해서 노래가 전파를 탔지만 텔레비전이나 공연무대에는 선 적이 없어서 “얼굴 없는 가수”라고 했다. 그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 손인호라는 이름으로 얼굴을 보인 것은 2001년 바로 이 가요무대에서였다고 한다. 1954년 그의 첫 노래가 레코드로 취입된지 반세기 세월이 흘러 아! 가수 손인호가 저렇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2013년 4월 22일 가요무대 최고의 가객으로 대접받으면서 김동건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87세된 손인호가 공개무대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불렀고 1956년의 KBS전속가수 명국환을 비롯해서 하춘화, 주현미, 문희옥, 송대관, 오은주, 김광남, 문연주, 김상진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손동준이 나와 울어라 기카줄,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경원선의 기적소리, 원철의 노래, 하룻밤 풋사람, 청춘등대, 사랑 찾아 칠백리, 돌아가자 남해고향 등 왕년의 손인호 히트곡을 불렀다. 누가 부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150곡이 넘는 그 수많은 노래들, 사회자는 이토록 많은 히트곡이 있는 줄은 미쳐 몰랐다고 했다. 사회자는 물었다. 가수냐? 녹음기사냐?"둘 다" 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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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비나리는 호남선과 얽힌사연 http://blog.daum.net/jc21th/17780894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2014.03.16 08:15
노래부르기를 무척 좋아하던
오빠들이 늘 겨 부르던 노래들입니다.저 연세에도 노래를 저렇게 잘 부르시는군요. 당연히 그 재능을 아드님이 물려받으셔서 다행입니다. 얼굴 없는 가수로 지내신 아버님 몫까지, 노래로 대성하여 만인들이 좋아하고 기억되는
비 나리는 호남선
손로원 작사 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 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나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다시 못 올 그 날짜를 믿어야 옳으냐 속는줄을 알면서도 속아야 옳으냐 죄도 많은 청춘인가 비내리는 호남선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
해운대 엘레지
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 노래 손인호
언제 까지나 언제 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혼자 외로이 그때 그시절 그리운 시절 못잊어 내가 운다
울던 물새도 어데로 가고 조각달도 흐르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는 가련다 떠나 가련다 아픈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있거라
한많은 대동강
작사 야인초 작곡 한복남 노래 손인호
한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있느냐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나는 울었네
작사 김동일 작곡 박시춘 노래 손인호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 저달이 날 속일줄 나는 울었네 나는 울었네 나루터 언덕에서 손목을 잡고 다시 오마던 그 님은 소식없고 나만 홀로 이슬에 젖어 달빛에 젖어 밤새도록 나는 울었네
나는 속았네 나는 속았네 무정한 봄바람에 나는 울었네 나는 울었네 강물도 흘러갔소 가슴에 안겨 흐느껴 울던 그대여 어디가고 나만 홀로 이밤을 새워 울어보련다 쓸쓸한 밤 야속한 님아
님도 울어라 님도 울어라 지나간 옛추억에 물새 날으던 물새 날으던 아득한 그 옛날 밤 그대는 가고 세월은 흘러 오늘도 강언덕에 홀로앉아 별하나 별둘 헤어가면서 잊지못해 우는 밤이여
아들 손동준, 아버지 히트곡 청춘등대 열창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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