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6월 9일부터 12일까지 우리나라 광고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제35차 세계광고대회가 열렸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폐쇄적 이기기만 했던 광고시장이 올림픽을 계기로 개방화되고 1990년대에 이르러 세계 10위권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 큰 시장으로 국제적 수준에 이르자 세계광고대회 유치에 나서 아세아 국가들을 비롯해서 많은 나라들의 지원을 받아 서울에서 이 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언론 올림픽이라고 불린 IPI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데 이어 광고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세계광고대회가 열리게 되어 국내외 관심사가 되었다.
제35차 세계광고대회(35th World Advertising Congress) 1996년
필자는 그때 KBS 수입원인 수신료와 광고책임을 맡고 있었던 업무국장직을 수행 하고 있어서 세계광고대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다보니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지만 필자의 생애에 맞이했던 큰 행사이기도 했다. 세계 50개국에 달하는 광고관련 유명인사 1,000여명이 대한민국을 찾았고 국내 에서도 1,000여명, 모두 2,300여명이 참여하는 대단한 규모로 치러졌다. 전 세계 언론사, 광고주, 광고회사 간부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사들이 참여한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1984년 일본에서 처음 열린 이래 두 번째로 서울에서 열렸다. 1938년 국제광고협회 IAA가 출범한 이래 차음으로 대한민국의 김 석년(金 石年) 회장이 선임되어 이 대회를 이끌어갔다. 6월 9일 첫날의 오프닝 행사는 서울 예술의 전당 야외마당에서 그 막이 올랐다. KBS가 주관한 이날의 행사는 우면산 자락의 넓은 마당에서 각 나라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팡파르가 울려 퍼지면서 각국 대표들이 손에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곧이어 공연장으로 옮겨 대한민국 전통문화를 선보였고 참여자들은 대한민국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에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10일 무역센터 한국종합전시장에 열린 대 토론회에서 羅雄培 부총리의 「커뮤니케이션의 혁명- 좁아지는 세계」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 이어 홍콩스타 TV의 라클란 머독 부회장, 마틴 소렐 WPP회장, 테드터너 美CNN회장, 도시다타 나카에 아사히신문 회장, 일본 덴츠社의 신지 후쿠가와 종합연구소장, AC닐슨의 피터 웰든 부사장 등 총 40명이 연사와 토론자로 참여해서 열띤 토론을 벌렸다.
KOEX 1층 전시장에는 국제광고물 및 기자재전, 아트디렉터즈 클럽 작품전, 광고사진 전시회, 국제판촉물 전시회 등 4개 광고단체의 전시회가 열렸으며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광고작품을 비롯해서, 북한 광고사진도 전시되는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찬, 만친 등 뜻 깊은 모임이 있었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는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서 모처럼의 큰 행사를 널리 알리기에 바빴다. 필자가 지금 같으면 생각을 가졌더라면 사진이나 그 밖의 여러 기록을 넘겼겠지만 그때는 그저 바삐 다니다 보니 뭐가 뭔지도 모른 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앨범을 뒤져보니 필자가 들어있는 사진 몇 장만이 남아있어서 미흡하지만 추억을 되살린다는 마음으로 올렸다.
1960년대, 70년대 체력은 국력이라고 했듯이 오늘날은 광고가 국력이라고 한다. 국제간의 경쟁, 산업의 뒷 바침이 광고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한류의 열풍과 광고는 양바퀴의 수래처럼 돌며 대한민국의 국력을 세계로 키워나간다. 자람스런 대한민국이다.
제35차 IAA세계광고대회를 기념하는 우표 300만장이 발행되었다.
Lotte World Adventure에서 KBS광고부 사원들과 만찬준비를 끝내고 잠시 틈을내어 사진을 촬영했다.
동아일보 특설전시관에서 - 그때 수고가 많았던 정종철 광고부장-
만찬장에서 만난 오명 동아일보 사장, 1980년대 체신부장관을 지내는등 많은 활동을 벌리시던 분이다
그때 제작한 기념가방, 별것 아닌것 같았는데 지금까지 오랜세월 사용하다 보니, 정이 들었다.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사람이든 국가든 물건이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요. 가진 능력이 열이면 열을 가졌다고 알려야만이 알려지는게 이치입니다. 국장님께서 하신 일들과 과업들도 기록으로 정리해서 남기시면 후세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리라 믿습니다. 20년이 더된 가방도 그만큼 오래 돼 보이지 않는걸 보면, 그저 행사용이 아니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 입니다. 무어든 그래야 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때 그 때 보람을 느끼며하는 일도 많지만, 정신없이 바삐 지나놓고 날 돌이켜 보면, 스스로 생각 해도 큰 일을 했다는 뿌듯함으로 돌아보게 되는 일들이 많게 마련입니다. 국장님께서 왕성하게 일 하시던 시절을 돌아보시면,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시는 일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만은 광고라는 개념자체가 겸손을 미덕으로하며, 자랑거리가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정서였던 우리에겐 친숙한 단어가 아니였을 시절 이였지요. 정서나 개념의 전환점이 되었을겁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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