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님! 서울 FM과 라디오서울 동아방송과 TBC동양방송, KBS 등 여러방송사를 오가며 오랜세월 방송과 함께 해 오신 박광희님이 모교이자 조선조부터 이어온 우리나라 대학의 효시 성균관을 탐방해서 보내오셨습니다. 박광희님은 춘하추동방송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던날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랜세월 큰 도움을 주신분입니다.
박광희님과 춘하추동방송, 성균관 역사탐방
특히 TBC동양방송의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계시는 박광희님이 춘하추동방송에 적극적으로 도와 주실 터이니 민영방송에 관한 글을 써서 방송사의 균형을 맞추면서 써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에 따라 민영방송 얘기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방송에 관한 폭을 넖히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해 주시지만 과연 그럴 힘과 역량이 있을것인가를 생각하며 그런 일에는 감히 손을 못대고 있습니다.
지금도 날이면 날마다 여러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 주셔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님은 사진촬영이나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그런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며 성균관 탐방의 글을 함께 올립니다.
박광희 님
카메라 스케치 경동 동우회 역사 탐방 한국 대학교의 효시 성균관을 가다
2014.1.15 박광희(삼성갤럭시 노트3로 찍다)
2014년 1월15일 14경동 동우회 역사탐방 팀은 성균관을 탐방했다 건학 615주년,성균관의 역사는 서기 1398년 조선조 태조 7년 이성계가 성균관을 현재의 자리에 설립한 국립 최초 최고의 국가교육기관으로 출발했다. 이 정통을 계승해 오늘에 이른것이 바로 성균관대학교이다. 이는 세계 2번째로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세계적인 글로벌 리딩대학으로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비천당은 강당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조선후기 헌종때 과거 응시자가 급격히 늘어 제2 과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워졌다. 6.25때 소실된 것을 1988년에 중건한것이다
존경각은 대학 도서관의 효시로 성종6년(1475년)한명회의 건의로 건립되었으며, 성종이 1만여권의 책을 하사하여 최고 교육기관에 걸맞는 도서를 갖추게 되었다 임진왜란때 소실 된 것을 영조때 중건했고 고종때 중수했다
성균관 명륜당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문묘)에서 교육의 중심이 되는 강당 건물이다. 성균관은 건물 배치에서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교육공간인 강당 건물을 뒷편에 배치하는 전묘후학의 공간 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성균관에는 전국의 진사, 생원 중 200명 한도로 엄격하게 선발하여 기숙사인 도,서재에 머물고 공부하였다고 한다. 명륜당 월대 앞 마당에서는 과거시험을 치루는 과거장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현판 글씨는 명나라 사신으로 온 朱之蕃의 글씨다
명륜당의 어원은 성균관의 유생들이 이곳에서 글을 배우고 익혔으며, 또한 왕이 직접 유생들에게 강시(講試)한 곳으로 명륜(明倫)이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孟子)』의 《등문공편》에 《학교를 세워 교육의 행함은 모든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 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이곳에서 조선 말기까지 많은 학자와 정치인들이 배출되었을 뿐 아니라 국민의 도의정신과 사회정의를 부식하고 교화하는 근원이 되었다. 뒤의 명륜당 현판 글씨는 朱子의글씨를 集字한것이다
은행나무는 유교의 상징목이라 중국에서는 은행나무를 공자의 행단(杏壇)에 많이 심었는데 조선에서도 문묘(文廟)나 향교, 서원, 사찰의 경내에 많이 심었고, 관가의 뜰에 심기도 하였다.
좌우에 동서(東西) 두 재(齋)가 있는데, 동재(東齋)에는 생원(生員), 서재에는 진사(進士)를 기숙시켰다.
명륜당은 1398년(조선 태조 7)에 성균관 대성전(大成殿) 북쪽에 건립한 것이 시초이다. 좌우에 협실(夾室)이 있고 중간에 당(堂)이 있어 총 18칸이며, 앞에는 각각 18칸의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성균관의 유생들이 기거하던 재실(齋室)이다. 지방의 명륜당이 대성전 앞에 건립되어 있는 데 반하여 성균관의 명륜당은 대성전 뒤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서울 문묘(-文廟)(대성전)은 유교를 집대성한 문성왕(文聖王)인 공자와 그의 제자 및 한국과 중국의 대유(大儒)의 위패를 모시고 봉향하는 사당 건물이다. 문묘는 정전인 대성전(大成殿)과 그 앞 마당 좌·우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그리고 삼문(三門, 神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문묘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사성(四聖)·십철(十哲)·육현(六賢) 그리고 한국의 십팔현(十八賢)을 봉향하고 있다. 왼쪽에 서있는 나무는 삼강오륜목이라 불리는 측백나무다.
대성전에 모시지 못한 위패는 위의 동무와 서무에 나뉘어 모셨었는데 모든 위패는 마당에 묻고 현재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수령 600여녀된 은행나무
비각 앞에서 학예관의 설명을 경청하다
《태학지(太學志)》에 기록된 문묘 시설로는 대성전(大成殿)· 동무(東廡)·서무(西廡)·제기고(祭器庫)· 비각(碑閣)·신문(神門)·동삼문(東三門)·동고(東庫)· 동서협문(東西夾門)·수복청(守僕廳)·전사청(典祀廳)· 포주(庖廚)·악기고(樂器庫)·차장고(遮帳庫)·악생고(樂生庫)· 향관청(享官廳)·감찰제집사방(監察諸執事房)· 수라각(水刺閣)·정문이 있고, 교학시설로는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서재(西齋)·대문(大門)·존경각(尊經閣)· 비천당(丕闡堂)·일량재(一兩齋)·벽입재(闢入齋)· 정록청(正錄廳)·식당(食堂)· 양현고(養賢庫)·육일각(六一閣)·어서비각(御書碑閣)이 있다.
식당은 명륜당의 동쪽에 있는데, 남향이며 'ㅁ'자형 평면의 총 33칸 규모이다. 주방 10칸, 기명고(器皿庫) 1칸,창고 1칸, 문 1칸이 있다.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인조 4년(1626)에 중건하였다
성대 출신 동문들
優美한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의 실물 탁본은 又英 趙東元 교수가 기증한 것이다
오공금은 거문고 판에 구멍이 5개 있는 거문고를 말하는데, 조선말의 대표적인 풍류객 이풍익(李豊翼.1804∼1887)이 타던 거문고이다. 전면에 금박을 칠한 거북껍질(玳瑁), 거대한 전복껍질(螺鈿), 호랑이 가죽(虎皮), 백옥으로 만든 매미 등 진귀한 재질로 장식되어 있다. 오공금은 1967년 증손인 이수영(李遂榮)이 이풍익의 금강산 유람화첩인 '동유첩'(東遊帖)과 함께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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