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낙산 정상 부근에서부터 혜화동성당을 돌아 혜화문 부근까지 뻗어 내린 성곽과 저 멀리 백운대, 도봉산, 수락산까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낙산은 백악 동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조선왕궁의 좌청룡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산세가 수려해서 문인 대가들이 많이 살았으며 유배된 단종 비 정순왕후도 이곳에서 지냈다. 산 높이 125m의 낮은 산이지만 얽힌 얘기가 많고 북악, 인왕, 남산이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북으로 멀리는 보현봉 (普賢峰), 백운대, 인수봉,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이 보여 전경이 훌륭하다. 산 모양이 낙타(駱駝)와 같다고 해서 낙타산, 타락산, 낙산 등으로 불렸다. 종로구와 성북구, 동대문구에 걸쳐있는 낙산은 대부분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동대문에서 혜화문까지 산 정상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양도성 역사탐방 (9) 낙산 길
1960년대, 70년대에 보았던 낙산을 오늘에 보고 필자는 깜짝놀랐다. 1960년대 필자가 실제로 살았던 청계천의 판자촌, 필자의 눈으로 명확히 보고 지나 다녔던 낙산 판자촌, 동작동 국군묘지 뒷 능선따라 세워진 봉천동의 판자촌, 신촌지나 모레네 황토땅에 있던 판자촌, 그때의 그 판자촌은 말이 판자촌이지 험하기 이를데 없었고, 땅을 파고 사람 겨우 두 세사람이 들어가 잠잘 수 있도록 해 놓고 가마니 깔고 둘러치고 살던 움막들도 많았다. 화장실이 무엇인가?. 차마 글로는 쓸 수 없는 그때의 그 삶의 모습, 이 글을 보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그런 모습을 보시지도 못했을 것이고 들어도 믿지 못 하시겠지만 필자는 실제로 체험하고 보았기에 오늘의 변해버린 서울의 모습을 보며 너무 감개무량하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개무량하다. 그 감개무량함을 이곳 낙산에서도 느낀다.
본론으로 들어가 옛 낙산 얘기를 한다. 아름다운 산수따라 그린 겸재 정선의 동소문이다. 동소문(혜화문)과 연결되는 낙산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낙산은 화감암반으로 되어있던 산이었지만 숲이 우거지고 깨끗한 수석과 약수터가 있는 등 산수가 좋았다고 전해진다. 서쪽 산 기슭에 있던 쌍계동은 암석이 기이하고 수림이 우거져 물이 흐르는 절경으로 삼청, 인왕, 빅운 청학동과 더불어 도성안의 5대 명승지로 꼽혔던 곳이다. 문인들이 인근에 별장을 짓고 살았던 곳으로 효종의 동생 인평대군이 거처했던 석양루(夕陽樓)가 있었고, 이화정(梨花亭), 일옹정(一翁亭), 백림정(柏林亭) 등의 정자가 있었다. 중앙 놀이공원과 함께 있는전시관에는 낙산에 관한 모습을 형상화 시켜 놓았다.
여러 일화 가운데 단종왕비 정순왕후에 관한 일화가 있다. 동망봉은 정순왕후가 단종이 있는 동쪽을 향해 바라보았든 봉우리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날 때 정순왕후(定順王后)는 서인이 되어 낙산 아래 청룡사의 승려가 되었고 창신동 골짜기에서 비단에 자색 물을 들여 시장에 내다팔며 살았다. 정순왕후가 머물던 곳의 바위에는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동천이라는 샘에서 자라는 지초라는 풀로 염색을 하면 보라색으로 물드는데 이것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기에 쓰인 글자라고도 한다. 동네사람들이 정순왕후를 돕기 위해 물건을 내다 팔던 곳이 동묘 옆 여인시장이다. 지금은 주말 벼룩시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숭신초등학교 교문 앞에 여인시장 터였다. 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황인아나운서가 보내온 메일 중에서)
공원을 지나다 보니 "흥덕이밭"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어서 보니 효종이 청나라 볼모로 있을 때 나인 흥덕이가 채소를 길러 김치를 담가 주었던지라 돌아와서 임금이 되었어도 그 음식을 잊을수가 없어 이곳에 밭을 주어 놀사를 짛어 올리라고 한데서 "흥덕이밭" 이라는 지명이 유래 된다고 했다.
아래는 성곽길에 있는 지장암으로 1924년 강재희가 이곳에 이 암자를 중창하면서 서울시 유형문화재 270호 지장암 감로도 (地藏庵甘露圖) 와271호 지장암 신중도 (地藏庵神衆圖)등 주요한 문화재를 보유한 암자지만 기와지붕을 비닐로 넢어 놓는등 관리가 허술함을 엿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낙산은 경시되어 낙산의 정상에는 포대가 설치되고 낙산의 풍류도 사라졌다. 나라 잃은 백성들은 이곳을 찾아 움막(토막)을 짛고 살기 시작해서 토막촌이라는 빈민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6.25로 잿더미가 되어 오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토막이나 판자집을 지었고 1960년대 들어 무작정 상경하는 농촌인구의 유입으로 토막집, 파자짐은 늘어만 가 빽빽하게 들어찼다. 그 집들은 1980년대까지 대부분 그대로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정비 한다는 얘기가 들린이래 이곳을 가본적이 없었던 필자가 오랫만에 찾은 낙산은 대부분 공원으로 변했다. 아직도 브르크 집들이 있지만 그래도 옛날 그런 집들은 아니다. 아래 길은 이화장에서 낙산 공원을 오르는 길이다.
이화장에서 이런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끝 부분 성곽과 마주하는 곳에 이화마루 텃밭이 있고 작은 쉼터가 있다. 집 벽에 그려놓은 그림들을 자주 볼 수 있고 또 작은 공연장도 있다. 부근에 '벽화마을' 이라는 표지가 서 있다. 여기서 때로는 작은 공연도 한다. 고한다, 이 길을 통해서도 꽤 많은 관광객들이 오르 내린다. 중국어나 일본어를 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한양도성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곽길을 따라 오르내린다. 성 안길이나 밖으로 다니는 길이나 모두 잘 조성되어 있고 여러곳에 쉼터가 있어서 성곽을 노르내리는 분들이나 동네분들이 활용한다. 성곽길 따라 가 보기로 한다.
성곽길 따라
종로구와 성북구, 동대문구가 갈라지는 정상에는 "낙산공원"이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가 있고 여기에 제일 전망대가 있으며 마을뻐스 종점이다. 이곳에서 동대문과 혜화문으로 통하는 길이있다. 동대문으로는 안 밖으로 오르 내릴 수 있지만 혜화문 쪽으로는 성곽으로부터 혜화역까지 혜화동성당이 자리하고 있어 성 밖으로만 갈 수 있다. 성을 끼고 내려가면 혜화문에 이르고 한성대 역이 있다.
성곽부근에 한성대학교가 있고 혜화문에 한성대학교 역이 있다.
아래 사진은 제 3전망대(혜화동 성당과 접해 있음)에서 위를 보고 촬영했다.
아래 사진이 낙산공원의 정상으로 일제강점기 고사포부대가 있던 곳이다. 이 부근에 사셨던 방우회 정항구 이사님이 일제강점기 말 B-29 두대가 서울 하늘을 날은적이 있어서 이곳에서 고사포를 쏘았으나 비행기에 이르지 못해 비행기는 안전하게 돌아 갔다고 한다. 해방후 이곳에 큰 태극기가 올라 있었고 6.25 수복후 큰 재극깃발이 날리던 곳으로 이 부근에서 오래 사시던 분들은 그때의 추억을 떠 올린다. 지금은 성이 싸여 있어서 가까이서는 그 정상을 볼수가 없고 연결된 곳에는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성곽 중간에는 성안과 밖을 드나들 수 있다. 이 앞문의 폭이 7m에서 10m에 이른다.
동대문 가까이 내려오면 옛 이화여자대학교 동대문 병원자리에 거대한 디자인 지원센터 빌딩이 세워져 있다. 마주 보이는 곳에는 팔각정 쉽터가 있고 그 곁에 동대문 성곽공원이라는 거대한 글자가 쓰여있다. 성곽공원이 별도로 있는 줄 알고 찾아 보았더니 큰 교회만 있을 뿐이다. 낙산 성곽이 바로 성곽공원이라는 얘기다.
성곽을 밑으로 돌았더니 성곽 오르는 길이다. 성벽이 높은곳에 있어서 성을 보호하기 위한 높은 옹벽이 싸여있고 그 위로 계단식 성곽이 있다.
오름 성곽 입구에 있는 쉼터에서 디자인 지원센터 빌딩이 보인다.
낙산에서 본 전경
낙산공원 전망 종은 곳에 낙산정이 있다. 높고 푸른 초 가을 날씨가 어찌나 선명한지 카메라 닿는 데로 몇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낙산공원의 다른 전망좋은 사진과 함께 올린다.
아래 사진은 삼선동 넘어로 수락산이 보인다.
창신동 성곽길과 맞은편 마루의 주택을 촬영한 사진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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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도 선생님
우~와~대단하십니다. 역사 탐방에 살아 있는 사학자십니다. 또 방송 발전사를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 하여 정말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이렇게 세심 하게 자료 수집하고 직접 탐방한 사진과 글 대단하십니다.
낙산공원 제 1전망대 제 3전망대까지 있다.
방우회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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