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대한민국 첫 방송터 2013 기념식 정동1번지

이장춘 2013. 4. 28. 04:37

 

 

 

방우회 (한국방송인 동우회 -회장 한영섭-)가

 주최하는 2013년 첫 방송터 기념식이 4월 27일 첫 방송터이자

그 유허비가 있는 서울 정동 1번지 덕수초등학교 교정에서 있었습니다.

한영섭방우회 회장 정근춘 KBS 사우회 회장, 조옥래 문공회 회장, 박경환,

강영숙, 전영우, 박종세, 김명희님 등 방우회원로 회원을 비롯해서 많은

방송인이 참여한 가운데 이날 기념식에서 방송 86년이  되는해에

이곳에 모야 지난날의 방송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방송발전을 기원했습니다.

 

 

대한민국 첫 방송터 2013, 기념식 정동1번지

 

 

 

 

우리나라 방송은 1927년 2월 16일

 이곳정동 1번지에서 첫 발사 된 이래 1950년

 6.25로 인해서 폭파될 때가지 이곳에서 이어왔고

 6.25때 6.25로 피난갔던 방송국이 1953년 서울로

돌아 오면서 역시 정동 1번지 정동연주소 부근에 있었던

 조선방송협회 사무실을 임시개조해서 방송하던중 1957년

 남산방송국으로 옮겼다가 1976년 12월 여의도로

옮기면서 여의도 시대가 열렸습니다.

 

1954년 최초의 민영방송 CBS 기독교방송

1956년 최초의 TV방송 HLKZ TV,  1959년 부산문화방송,

 1961년 서울 문화방송 1963년 DBS 동아방송, 1964년 RSB 라디오

서울로부터 시작된 TBC동양방송 등은 첫 방송터에서 배출한 방송인들이

 주축이 되어 방송을 내 보냈습니다. 첫 방송터는 우리나라 방송을 시작한

역사적인 사적이고 이나라 방송의 주춧돌이었습니다. 방우회는 이 첫

방송터를 기리기 위해 1987년 이나라 방송 60주년을 맞던

해에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해마다

 이곳을 잦고  있습니다.

 

 

 

  아래사진 참석하신 분들의 모습입니다. 앞줄 왼쪽부터 최만린, 강영숙, 김영희,

이철호, 정근춘(KBS 사우회 회장), 이종봉,  한영섭(방우회 회장), 조옥래(문공회 회장),

 전영우,박종세, 두번째 줄 이형균, 박민정, 김규홍, 안현태, 김영효, 권영원, 이용실, 오승룡,

김선초, 한이수, 정항구, 변용규, 김기호, 셋째줄 우제탁, 조남민, 고흥복,  강정도, 박경환,

정관영, 한영신, 한분건너 노익중, 뒷줄 강창우님이 참석 하셧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박진호님께서 

첫 방송터 기념행사 글을 보고 여러차례에 걸쳐

댓글을 올리셨기에 방송인이나 방송에 관심있는 분이면

공감하실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댓글 내용

전문을 이곳  본문에 옮겼습니다.

 

 

박진호님엥 관한 얘기는 영문자 주소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읍니다.

 

KBS 내일을 위하여 / 미국에서 보내온 박진호님 편지 박재윤

http://blog.daum.net/jc21th/17781357

 

 

 

- 춘하추동방송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제언 -

 

 

새번째 댓글

 

 

존경하는 아저씨! 아저씨께서

 이번에 올리신 "첫 방송터 기념식"의 글과

사진들이 왠지 자꾸 제 마음에 걸리네요. "이건 아닌데...?"

하는 속상한 생각을 넘어서 화가 날 정도입니다. 어떻게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한국방송동호인회에서 주최한 이 뜻깊은 기념식에,

참석하신 분들이 70세가 훨씬 넘으신 대한민국의 방송을 개척하시고

 이끌어 오신 원로 방송인들 뿐인지... 현역에 있는 후배 방송인들이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을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kbs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방송이 오늘날 이렇게 성장할수

있었던 기반과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

저는 감히 말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 kbs나 방송에

입문한 사람들을 진정한 방송인이라 할수 없다고

봅니다. 그들이 현재 방송사에서 일하면서 누리는 사회적인 명예와

대우에 비해서 50, 60, 70년대 방송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과 처우속에서도

개척자 정신으로 방송을 천직으로 삼고 꼿꼿한 선비 정신과 철저한 국가관을 갖고

 대한민국의 방송을 지켜왔는지, 이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방송인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별히 소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치명적안 아픔과 돌이킬수 없는 상처는

 이념 갈등과 함께 세대 갈등으로 말미암아 젊은 세대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몰이해와 왜곡이

 너무도 심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 땅바닦에 떨어지다 보니,

공영방송인 kbs 조차도 상업방송과 구분이 안될 정도로 너무도 상업적으로

가고 있지 않나 심히 우려하지 않을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 결과로 인해 예전의 소중한 방송의 전통적 가치와 함께

 방송인들의 진정한 멋이 사라져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에 

춘하추동방송과 아저씨와 같으신 진정한 방송인들이신 원로 방송인들이 더욱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춘하추동방송과 원로 방송인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아니면 최소한 현역 후배 방송인들이 최대한 존중하고 존경하녀

제도적으로도 후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를 들어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협회 또는 kbs와 kbs사우회에서 더 늦기전에

 공식적으로 춘하추동방송을 계승 발전시킬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수 있기를 강력히 건의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방송 발전을 위해서...

 


- 춘하추동방송 지킴이 박진호 -

 

 

두번째 댓글

 

 

춘하추동방송을 "대한민국의

공식 사이버 방송사료 박물관"으로

 그리고 아저씨를 초대 대한민국 공식 사이버

 방송사료 박물관장으로 추대 임명할 것을 문화

체육관광부 장관과 방송협회장에게

강력하게 건의 드립니다.

 

 

- 춘하추동방송 지킴이 박진호 올림 -

 

 

 

첫번째 댓글

 

 

아저씨! 안녕하세요. 올리신

 "첫 방송터 기념식"에 대한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평생을 방송과 kbs와 함께 하신 아저씨께서

 이날 기념식에 참석하셔서 또한 이글과 사진을 작업하시고

 올리시며 느끼셨을 안타까운 마음을 감히 제가 조금은 느낄수 있을것

 같네요.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 나가시는 영원한 방송인이신

아저씨의 아름답고 귀한 마음을, 아저씨께서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kbs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사의 후배 방송인들이

 배우고 느낄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아저씨! 파이팅!!!^^

 

 

 

 

첫 방송터 기념식에 참석했던

벽산 우제탁님께서 메일로 글을 보내

 오셨기에 옮겼습니다.

 

 

 

우리나라 첫 방송 터,,,,기념행사 ,,,,

 

 

두번째 글

 

 

" 첫방송 터 기념행사" 이야기,,,,

그리고 또,,,또,,,그렇고 보니 이는 우리 방송사에

저버릴수 없는 귀중한 자료 이야기,,,,그 날 행사에서

최만린 교수의 이야기,,, 즉  " 이 행사 자체를 현 관게당국,,,

방송통신위원회? 들도 모르고 있을 것 " 그 뿐 안니다,,,오늘의

방송인 들은 어쩧고,,,,사실 그간 80,,,산수? 를 훨신 넘은 노령들

 몇사람이 본 행사 그리고 " 물망비", "바른말 보도상" 등의 행사를

 보기에도 초라하게 유지 계승하고 있는데 ? 그 누구의 말 ,,,


" 과거 역사를 무시 하면 내일도 없다 " 는 말

우리는 되색여 보아야,,,,잊을 수 없는 정동방송국

 이야기,,,,그 자리가 흔적도 없어 젓으니,,,,할 수 없이 그 이웃 ?

  초등학교 담벼락 절벽 나무 그늘에 숨겨져 있어 일부러 찾아 보기에도

힘든 그 모습 ?,,, 무언가 깊은 생각에,,,,당시 1953 ? 1955 ? 년 인가 기억도

가물 가물,,, 당시 지방방송국에 근무 하면서 자기녹음기가 처음 도입이 되여

녹음기 인수차,,, 서울 출장,,,정동 빙송국에,,,,한기선 씨가 기술과장,,,

유병은 게장의 안내로 이곳 저곳 구경,,,최당 씨가 기술 서무라고

소개,,,그 애띤? 모습 ,,,,그런데 이제 모두가

그옛날 사람,,,고인이 되였구나


최만린 교수 ? 나는 잊어지지 않는다,

사실 나 같은 촌사람은 대면 할 일도 없었지만,

여이도 " 물망비 " 문시형 유병은 두 선배 이야기,,,

당시 돈이 없어,,, 그 경비 마련할 길이 없는 데, 아나운서

였던 최만린 교수 (조각가 라고 들었음) " 재료비만 마련해

 주면 봉사,,,제작 해주겠다고 해서 시작 했다 " 고 ,,, 건립 된
물망비,,,,그 글씨를 본인이 쓰게된 사연,,, 당시 서예가

 국회의원 이라던 윤길중씨 에게 부탁,,,써 온 글씨를

모두 같이 보고 불만,,,,나에게 써 보라고

해서 쓰게된 사연,,,


방우회 이야기,,,이는 초창기 부터

재정적인 뒷바침 등 어려움이,,,그 간 희생 봉사,,,

극복 속에서  "바른 말 보도 상,,, " 이는 적지 않는 소요경비,,,

(기념품 ) 가 들고 3개 방송사 ,,, 2개 방송사는 해당 인사 추천만 할 뿐,,,

관심도 없는 것 같은 ? 행사 계승 유지,,,,이런 방우회 실상을 아는 사람은

그 누구 누구,,,,,?이제 그 선배,,, 그사람 그사람들 대부분 고인이 되여

만날 길이 없으니,,, 인생무상을 새삼스럽게,,,,  세상은 너무나

 타산적?,,,,우리는 이제 그 무언가 뜻있는 일에 봉사,,

헌신,,, 하는 자세를 갖여야 될것이라고

 생각 해 본다,    

 

 

첫번째 글

 


이제 아주 그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나도 1952년도? 엔가 방문 했던

 " 정동 방송국,,,," 3층 창고에 안내 되여 이것 저것

 챙겨주던 그 ? 선배님은 이제 고인이 된지 여렇해가 되였구나
그런데 그 옛날의 그 모습은 모두 어데 가고 초등학교 담벼락 절벽에

조그마한 표식을 하나 해 놓았으니사실 이를 알고 있는 현 방송인은 그누구

 누구 인고 ,,, 당시 그 ? 도로에서 바로 현관으로 연결되여 있었고,,,, 스튜디오는

 검은 비로도 천을 걸쳐 있었고 ,,,,,지하실이 식당,,,,그 곳에서 맜났던 그들 그들은
이제 옛날 사람이 되여 잊어버린지 오래 이구 나 그런데 오늘의 이 행사도 모두

 7-80대 노령 들만,,,,현대에 살고 있는 방송인은 아무도 없고,,, 머지않아

이 촌사람도 그 옛날 사람이 되겠지,,,,? 그런데 그때 이 장소에서

 만났던 그 사람 그 사람은 하나도 안보이고 나 홀로

 외로이 옛생각 잠겨보 네,,,, 

      

첫 방송터 유허비를 설계하고 세우는데 크게 기여하신 최만린님의 회고담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개선행진곡-1.wma

개선행진곡-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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