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항일 애국지사 이근창선생님,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73회 순국 선열의 날

이장춘 2012. 11. 17. 22:27

 

 

 

일제 강점기 암흑세계에서 단파방송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잡혀 갖은 고문과

시달림으로 1944년 1월 27일 옥중에서 세상을 떠나야 했던

이근창선생님이 가신지 70년이 다되어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건립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되어 2012년 11월 17일

73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습니다.

 

 

 

 

항일 애국지사 이근창선생님,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73회 순국 선열의 날

 

 

2012년 11월 17일 KBS 1TV를 통해서

국내외에 중계방송 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이날의 행사에서 48명의 훈, 표창을 받는 가운데

맨 앞자리에 선 이근창선생님 아들 이휘웅님에게 이근창선생님의

애족장이 추서된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조선,

동아, 그때의 중앙일보 등 모든 민족지는 폐간되고 남은 신문과 방송은

일본을 찬양하며 외부세계와 단절되었던 시절, 목숨을 건 경성

송국의 조선방송인들은 해외에서 들려오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고 이웃과 독립 운동가들에게 전달해서

조선인의 사기를 돋우고 항일정신을

불러 넣었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퍼져가는 해외소식에

 놀란 일제는 그 원천치를 찾아 조선방송인들을

감시했고 단파수신기로 해외방송을 들으며 항일 독립운동을

 벌리던 방송인들은 일본경찰에 끌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국의

직원들뿐만 아니라 라디오상회나 그 부속상회, 그리고 단파방송과 관련된

 독립운동가들이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비밀재판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형기를 정해 옥살이를 시켰습니다. 끌려간 사람이 350

여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수형자만도 78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 6분이 옥중에 서세상을

 떴습니다. 이근창선생님도 그분 중에 

한분이었습니다.

 

78명 중에서 지금까지 5분이 훈 포장을

받으신 받으셨고 이근창선생님이 6번째 수훈자가

 되었습니다. 원로방송인들의 모임인 방우회(한국방송인

동우회 회장 한영섭)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분들의 업적을 

발굴해서 세상에 알리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세상에 알릴

계획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40여편의 글이 저장되어있고 그 중에

 몇편을 이곳에 링크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단파사건 옥사자 이근창 李根昌 (이고길)

http://blog.daum.net/jc21th/17780942

 

이근창 (이고길) 재판기록 

 http://blog.daum.net/jc21th/17781118

 

일제강점기 단파방송 독립운동 6명의 옥사자(獄死者) 그 실상

http://blog.daum.net/jc21th/17780944

 

일제강점기 단파방송 독립운동 수형자 명단

http://blog.daum.net/jc21th/17780946

 

항일 단파방송 해내외 연락운동 (종합편 2)

http://blog.daum.net/jc21th/17780627

 

 

KBS 1TV 저녁 9시뉴스 보도내용.

‘순국선열의 날’ 68년만에 빛 본 방송 항일운동

 

<앵커 멘트>

냉혹했던 일제강점기,

단파 방송을 통해 항일 투쟁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가 68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순국 선열의 날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김용덕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일제는 불리해진 전황을 숨기기 위해 외국

방송 청취를 일절 금지합니다. 당시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하던 20대 중반의 고 이근창 선생은 그러나

임시정부의 라디오 단파방송 등을 몰래 듣고

주변 사람에게 전달했습니다.

 

<내레이션>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미국이 이겨

조선을 독립시킬 것이니 조선 동포들은

미국과 영국을 도와라.

방송으로 항일운동을 하던

이 선생은 1년 만에 결국 일본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른바 '단파방송 수신 사건'에

연루된 방송인들은 3백여 명, 이들의 업적을

기려 훗날 기념비까지 세워졌습니다.

<인터뷰>

 

이장춘(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 :

"그때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로 외국의 방송을 듣는 것은 자기

생명을 내놓는겁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이 선생은 광복도 맞이하지 못한 채 28살의

나이에 옥사하고 맙니다.

당시 3살이던 아들 이휘웅 씨.

아버지의 유품은커녕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았지만 방송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부친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휘웅(故 이근창 선생 아들) :

 

"이런 곳에서 고생하시고

옥사하면서 고문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죠." 정부는 순국

선열의 날을 맞아 68년 만에 고 이근창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KBS 뉴스 김용덕입니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성명

이근창

생존기간 1916.09.20 ~ 1944.01.21
출생지 경기 양주
운동계열 국내항일
훈격(연도)

애족장 (2012)

공적내용

1942~1943년 서울에서 조선방송협회(朝鮮放送協會) 보수과(保修課) 기술원(技
術員)으로 단파방송을 청취하고 내용을 전파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1941년 9월 경성부(京城府) 봉래정(蓬萊町)에 소재한 조선무선공학강습회(朝鮮
無線工學講習會)를 졸업한 뒤, 1942년 2월 6일에 조선방송협회 사업부(事業部)
보수과에 입사하여 기술원으로 근무하였다. 동년 2월경 경성부 봉래정의 김종
호(金鍾浩)의 하숙집에서 단파수신기 <컨버터(converter)>로 외국방송을 들었으며,
동년 5월경 조선방송협회 사업부 보수과 검정실에서 동(同) 과원(課員)인 신상
운(申相雲)의 단파수신기 <컨버터>로 두 사람이 여러 차례 외국 방송을 청취하였
다. 이후 동년 12월 1일부터 동월 5일경까지 보수과에서 야근 중, 동년 4일경
조종국(趙琮國)으로부터 보수과에 보관 중인 경성정유사(京城精乳舍)의 전파수
신기로 동일 야근 중인 홍근호(洪瑾鎬)·김안방(金安邦)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김건이(金健二) 등과 더불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조선어 방송을 청취하였다.

방송 내용은 "조선동포들아, 이번의 세계대전은 물자가 풍부하고 병기도 우수
함으로 장기전이라면 차츰 유리하며 최후의 승리는 미영 연합국 측에 있다. (중
략) 이번 전쟁이 미영 연합국의 승리로 종료되면 미영 연합국은 반드시 조선을
독립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미영 연합군은 항공모함·전함을 기간으로 한 대함
대(大艦隊)로써 일거에 일본 본토를 공략할 준비 중이지만, 연합군이 일본 본토
를 공략할 때에 조선에도 상륙과 함께 비행기로써 조선 동포에 대하여 병기 및
탄약을 공급할 것이므로 조선동포는 이를 사용하여 연합군과 긴밀히 연락하여
일거에 내란을 일으켜 철도 및 군수창고의 파괴, 전신전화의 절단 등을 감행하
여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
다. 동 방송 내용을 1942년 12월 6·7일경 경성부 성북정(城北町)에 거주하는 조
선방송협회 회원인 김병욱(金炳昱)에게, 동년 12월 중순경 보수과 상담소(相談
所)에서 동(同) 과원 고득제(高得濟)에게, 1943년 2월 20일경 경성부 성북정에
거주하는 동 과원 노현중(盧鉉重)에게 전달하였다.
1943년 7월 4일에 체포되어 1943년 9월 2일 육군형법(陸軍刑法) 제99조, 해군
형법(海軍刑法) 제100조, 조선임시보안령(朝鮮臨時保安令) 제20조, 무선전신법(無
線電信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1월 21일 서대
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陸海軍刑法違反事件에 관한 건(警察部高等警察課, 1943. 7. 4)
·意見書(京畿道警察部:1943. 7. 21)
·公判請求書(京城地方法院檢事局:1943. 8. 4)
·公判調書(京城地方法院:1943. 8. 26)
·公判調書 제2회(京城地方法院:1943. 8. 26)
·上訴權抛棄申立書(1943. 9. 2)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 (國史編纂委員會, 2007) 제70권 432~456면
·韓國言論史(鄭晋錫, 나남, 1990) 600~602면
·短波放送連絡運動-日帝下 京城放送局(兪炳殷, kbs文化事業團, 1991) 240면


 

 

 

 

이근창선생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휘웅님

 내외분과 오늘의 중계방송을 한 KBS 성기영 아나운서가

 선배님의 건국훈장을 받는 실황을 중계방송한것이

 "자랑스러웁다" 면서 사진을 함께 촬영했습니다. 

 

 

 

 

동길운동가들의 수훈, 수상하는 모습

 

 

 

 

 

 

 

 

건국훈장을 받으신 이근창선생님의 아들 이휘웅님 내외분과

13세가 된 어린시절 서대문 형무소에 이근창선생님을 면회갔다가 용수 쓴

 모습을 보았던 이종익옹 그리고 필자 이장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이종익선생님 얘기는 이근창선생님 편에 있습니다.

 

 

오늘 글은 KBS 정치외교부

 김용덕기자, 방우회 노익중이사님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이근창 애국장(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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