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2월 16일 이 띵에서 방송전파가 발사된 이래 어떤 형태로든 방송드라마는 있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무대연극을 연극을 보지 않고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도록 방송을 내 보내다가 차츰 방송을 위한 드라마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출연자들도 연극이나 영화배우들의 소리가 그대로 방송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는 따로 성우를 모집한것이 아니었습니다. 해방후까지 벙송극에 출연한 배우는 복혜숙, 서월영, 김선영, 박상익, 장진, 한은진, 이향, 김서영, 송재노, 박학, 이영옥, 김승호, 김복자. 남궁연, 정애란님등이 활약했습니다.
박용기(KBS 1기성우)님이 말하는 성우(聲優, 聲友)의 유래
해방되어 방송극을 위한 요원이 따로 선발되었 습니다. 1947년에 조남사(작가, 연출가), 황정순(영화배우) 민구 (연출가) ,장민호, 위진록 (아나운서), 황태수님이 선발되었고
1948년 최무룡, 구 민, 윤 진, 윤일봉, 이춘사, 이혜경, 백금녀(본명 김정분), 남해연, 장서일, 박현숙님등이 선발되었습니다. 그때는 성우라는 이름이 없고 방송극 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선발되었다고 합니다. 이분들에게는 성우 특 1기, 특 2기라는 명칭이 붙습니다. 그리고 1954년에 선발된 성우를 성우 1기라고 해서 기수를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우라는 말은 언제부턴 어떻게 해서 사용되게 되었을까요. 이 문제에 관해사 필자는 늘 궁금하게 생각 해 오던중 미국에서 사는 1기성우 박용기님을 만났습니다. 오늘 올려드린 목소리는 1012년 11월 5일 박용기님을 만났을때의 얘기입니다. 1957년 방송문화 연구소가 발족했고 그 방송문화 연구실장 한운사님이 쓴 드라마 "소녀" 작품발표회에서 그 모임의 이름을 성우 (聲友)라고 한것이 성우라는 말을 쓰게 된 최초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954년에 모집한 성우가 1기가 되어 기수가 계산되어 왔다는 얘기입니다. 아래 영문자를 클릭하시면 성우에 관한 여러 얘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용기님, 성우 1기 1954년 http://blog.daum.net/jc21th/17781486
KBS 성우 인명록 (해방공간 특 1기 2기로부터) http://blog.daum.net/jc21th/17781192
경성방송국 드라마와 그 드라마를 이끌던 사람들/ 단일방송 시절 http://blog.daum.net/jc21th/17780887
일제 강점기 방송극 (드라마) / 제 2 방송시절 http://blog.daum.net/jc21th/17780888
KBS, 남산 방송시절의 성우 -1-
http://blog.daum.net/jc21th/17780704
남산 방송시절 방송의 꽃 성우 (2) http://blog.daum.net/jc21th/17780705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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