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안병원님 육성으로 듣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삶의 예기

이장춘 2012. 11. 13. 19:45

 

 

 

일제 강점기 36년, 압박과 설움을

 받아오던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일제는 물러갔어도 또 다른 미국과 소련이

들어와 남과 북을 나누어 통치하던 시절, 아직도 우리는

 갈구하던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그 독립을 

바라는 소원을 담아 부른 노래가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습니다. 해방 후 

두 번째 맞는 1947년 3.1절을 맞아 특집방송을 하기로 했습니다. 30분간의 어린이

특집 드라마를 방송 하기로 한 KBS가 “봉선화 동요회”와 함께 방송국을 자주 드나들던

 안병원님을 찾았습니다. 언론인으로 신문사에서 글을 쓰던 아버지 안석주선생님에게 

드라마를 원고료 없이 주셨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꺼이 응락한 안석주님은

그 드라마를 쓰면서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동요를 넣어서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동요까지 작사 해 주셨습니다. 

 그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우리의 소원은 독립”으로 해서

  시작과 끝남의 시그널로 하기로 했습니다.

 

 

안병원님의 육성으로 듣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삶의 예기

 

 

아버지가 작사한 그때 노래에 곡을 붙이신 분이

 22살의 서울대학교 학생이자 봉선화 동요회 지휘자였던

안병원이었습니다. 이 노래가 방송되면서 처음부터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남과 북의 국민들이 삼팔선을 초월해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독립을 바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뜻이 이루어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곧이어 북한에서도

나름대로의 정부가 들어서자 남북이 완전히 갈라져 이때부터 통일이  우리의 최대

소원이 되면서 이 노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었습니다. 듣고 계시는

음향은 1990년 12월 남북 음악인이 만나 손에 손를 잡고 함께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와 이 노래의 작곡가 안병원, 부인

노선영여사, 6.25전쟁중의 어린이 합창단원이었던

전영자(테리 송)님 함께 나눈 얘기입니다.

 

 

식사 자리에서 한 얘기를 녹음, 녹화 한

것이어서 상태가 고르지 못할 지라도 직접 듣기 어려운

육성이어서 2시간에 걸친 얘기를 12분으로 요약해서 지난회와

 이번 회에 올린 것입니다. 아래 부분에 동영상이 있습니다.

 

 

 

 

노래가 불리기 시작한지 올해로 65년

길고 신 세월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통일을 염원해 왔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려서 학교에서도

배우며 부르고 국민들은 남녀노소, 때와 장소 구분 없이 국경을

초월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제일 많이 부른 노래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1948년 북한정권이 따로  들어서면서 남한의

 노래 라고 해서 잠시 금지 된 적도 있었다지만 어느 때 부터인지 북한에서도

 이 노래가 열광적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행사 때도 불리고 시가행진을

하면서도 부르고 학교에서도 불렸습니다. 1980년대 이산가족이

남북을 오갈 때 북한에 간 남한의 이산가족들이 가는 곳마다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오늘 올려드린 우리의 소원은

1990년 말 남북음악인들이 서울에서 만나

함께 부른 노래입니다.

 

 

 

 

너무 즐거운 모습으로 또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이 노래의

진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안병원선생님은 말합니다. “2001년

북한에 초대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이 노래를 불러요.  김일성 찬가,

 김정일 노래와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하루 종일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등

 어디가나 이 노래를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보다 더 많이 들을 수가 있었어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제가 가는 곳이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면서 그 노래예기를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노래와 함께 큰 보람을

느끼며 하루속히 통일이 와서 이 노래가 흘러간 노래로 불렸으면 합니다.”

 

캐나다 토론토 국립묘지 부근에 살며

 6.25 한국전쟁에서 숨져간 519명 영령들의

묘비를 바라보며 살고 있는 안병원님은 할 수 있는 날까지

 나라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살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돈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 하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그려 본적도 없지만 어느 날 집에 있는 도자기를 그림

으로 옮겼더니 괜찮은 작품이 나와 그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995년

토론토 현지에서 50여점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전시회는 깊은 관심 속에

그 전시관이 발족한 이래 제일많은 관람객이 찾아들었다는 평가 속에

 성황리에 끝나 전시된 작품이 다 팔려나가면서 그 대금을

 모두 불우이웃 돕기에 썼습니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우리나라에 와서,

프레스센터 1층 서울 갤러리 넓은 전시관에서

북한 어린이이 돕기 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언론

에서도 대단한 관심을 가져 주어 전시장은 날마다 가득 매웠습니다.

남한 어린이들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데 북한 어린이를 돕자는 것이냐.

 항의 하신분도 있었고 불우 아동 돕기 전시회로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 하는 분도

 있었지만 북한에 초대되어 북한 어린이들의 실상을 본이래 그들을 돕겠다는 생각이

깊어져 북한 어린이 돕기로 전시회는 계속되었습니다. 그 그림은 다 팔려나가. 체제비와

 비용을 제외한 전액이 북한 어린이 돕기 기금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그 뒤에도 작품 활동은

계속되어 또 한 차례 전시회를 가질 준비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바쁜 일이 많아 어렵고

내년에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한차례 가질 예정입니다. 돈은 없으니 다른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봉사하면서 살아 갈 생각입니다”

 

 

 

 

해방된 후 1945년 봉선화 동요회를 창립하고

 지휘를 맡으며 방송국을 드나들기 시작한지 67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작곡해서 부르기 시작한지 65년,

올해는 그 65년을 맞아 특별연주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11월 2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우리 가곡의 날 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리는

이 연주회에는 “그리운 금강산”이 불리기 시작한지 50년을 맞아

그리운 금강산도 특별연주가 있을 예정입니다.

  

안병원님 길고 긴 일생동안 그 많은

일들을 해 오셨고 겪은 일이 많아서 지나온

얘기, 할 예기 끝이 없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

습니다. 다음 영문자를 클릭하시면 지난 날 

쓴 글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6.25 전쟁중의 어린이 합창단,안병원, 전영자 테리송 (육성) 우리의 소원은 통일

http://blog.daum.net/jc21th/17781492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와 봉선화 동요회

http://blog.daum.net/jc21th/17780323

 

민족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

http://blog.daum.net/jc21th/17780815

 

6.25 전쟁 중의 어린이 합창단과 정명화, 전영자(테리 송), 한동일, 안병원

http://blog.daum.net/jc21th/17781341

 

KBS 1기(50년대) 어린이 합창단 전영자님과 라스베가스(Las Vegas) 극장

http://blog.daum.net/jc21th/17781355

 

 

동영상 보기

 

동영상을 보시기 전에 음향을 꺼 주셔요.

 

 

 

 

 

 

안병원선생님 내외분 (부인 노선영)과 전영자 여사(테리 송)님, 필자 이장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11월 26일에 갖는 가곡의 날 기념음악회 프로그램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안병원 우리의 소원은 통일.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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