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포화속에서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생명이 붙어 있던 사람도 살곳, 입을것, 먹을것 없던시절이라 전 국민이 어려웁기는 마찬가지여서 방송인들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방송국은 3년간 부산에 있다가 휴전후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간에 촬영한 방송인들의 옷차림은 군복을 입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간인이 군복을 입는것은 일반적으로 금지 되었지만 방송인들에게는 그런대로 허용되었습니다. 견장에 HLKA 마크를 달고 다녔습니다. 여기 그때의 복장차람의 사진을 모았습니다.
6.25 전쟁기간 중 방송인들 군복입은 옷차림 사진을 모아
군복입은 노창성 전시중앙방송국장님이 UN군 GHQ 심리전부대를 방문, 장병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군 점퍼를 입고 방송하는 윤길구 아나운서실장! 님은 이 옷을 사시사철 겨울에도 여름에도 입었다고 합니다. 왜? 여름에도 그런 옷을 입느냐고 물으면 "여름에도 두터운 옷을 입어야 더운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 올 수 없다" 면서 유므러스하게 넘기곤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실은 입을만한 옷이 없던 시절에...........
퇴로가 맊힌 영, 호남의 빨지산들이 몰려든 전북 남원지구의 민심수습과 공비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전방송을 위해 방송국을 세울 준비를 할 무렵, 남원방송국을 세울 장비를 싫고 온 방송인들이 주민들에게 줄 구호품을 같이 가지고 와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부산에서 남원까지는 멀고 먼 산길을 거쳐야 해서 완전무장한 군의 호송을 받으며 움직여야 했기에 軍출입을 했던 KBS 한영섭기자는 UN군 심리전 당국의 협조를 받아 구호품을 마련, GMC 추럭에 싫고 중 무장한 UN군 군인 5명과 함께 격전지 남원을 찾아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함과 동시에 방송국 설립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때 지리산을 끼고 있는 남원지구 에는 퇴로가 막힌 영, 호남의 빨지산들이 모여들어 군과 전투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공산당이 지배 하면서 주민들은 극도의 시달림을 받았고 민심은 흉흉 했습니다.
부산에 온 방송인들이 함께 촬영힌 사진으로 대부분 군복을 입은 모습이고 일반복을 입었어도 피난살이의 옷차림을그대로 보여줍니다. 송영호 방송과장 한영섭, 조한긍, 이근정, 조용하, 이용태기자와 조남사 연출계장, 배준호 PD, 윤길구, 홍양보 (VUNC에서 다니러 왔다가), 강익수, 양대석, 김경자 아나운서가 함께한 사진입니다.
6.25 사진 더 보기 영문자 클릭
끝나지 않은 6.25전쟁 ! 그때 그사진 발췌 http://blog.daum.net/jc21th/17780112
부산피난 시절 선발된 강찬선, 임택근 아나운서가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두 분은 70년대 80년대까지 대한민국 대표 아나운서로 활약했습니다.
노창성 전시중앙방송국장님과 왼쪽부터 안명원, 강찬선, 이상송, 송영호, 강익수, 유덕훈, 김창구님이 합께 한 사진입니다.
1 , 2 이상송, 3 송영호, 5 강찬선, 6 노천명, 7 김창구, 8 방필주, 9 김용환, 10 이상만, 11 안병원, 13 조백봉,14 강정수, 15 문시형, 17 배준호, 19 최요안, 21 강익수, 그리고 공승규, 조규택님 등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1.황우겸, 2.김경자, 3.박인자, 4.서명석, 5.최창숙, 6.김순철, 7.정순형, 8.임택근, 9.한희동, 10.이수열, 11.송영호, 12.윤길구, 13.양재현, 14.장기범아나운서입니다.
위는 조용하기자와 서명석 아나운서가 마국 대통령 특사로 온 덜레스 국무장관과 인터뷰하는 장면이고 (1953년) 아래는 서명석 아나운서와 진백림 엔지니어가 밴프리트 UN군 사령관과 인터뷰 하는 장면입니다.
위는 1951년 3월 10일 500W송신기를 설치하고 기술인들이 모여 촬영한 기념사진으로 1 박능상, 2 이덕빈, 3 고세혁, 4 , 5 장병량, 6 이길선, 7 , 8 이성실님이고 아래는 김인지 제주방송국장님, 기술과장 이사동님, 중앙방송국 박능상, 정경순, 이성실님 등이 함깨한 사진입니다.
제주방송국에서 축구대회를 최초로 중계방송하는 정의진 아나운서
전쟁중 공연에 나선 손목인 작곡가와 유호님
앞에 선 세분 왼쪽부터 최창숙, 김순철, 정순형.뒷줄왼쪽부터 강찬선, 강익수, 양재현, 양대석, 윤길구,이수열, 임택근, 한희동님 입니다.
군복을 입은 노창성 중앙방송국장님이 이리방송국을 순시하는 장면
부산에 있던 중앙방송국이 서울로 오기전 그 준비를 위해 먼저 서울에 온 선발대입니다. 대부분 군복차림으로 왔습니다. (1951년 8월 22일) 앞줄 왼쪽부터 조한긍기자, 통역관, 이종희(원고 번역관), Straus중위 (미 극동 사령부 심리전국 서울파견대장 )변천수, 이종훈 가운데줄 왼쪽부터 운전수, 양중석, 한사람건너 최승주아나운서, 김석봉, 이영기, 박광서, 경찰, 뒷줄 왼쪽부터 김익모, 진백림, 정유원, 김성배님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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