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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영교수님이 본 유석진박사

이장춘 2012. 6. 12. 03:45

 

유석진박사님과 안병영 교수님 

 

 

 감명깊게 읽은 교육부총리를 지낸 안병영교수님

글입니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님이 쓴「유석진 박사님의

추억」은 안병영교수님 스스로의 체험을 통한 불면증이나 원인

모르는 병의 근본적인 치료를 위한 무료 처방전임과 동시에 유석진

박사님이 길이 남긴 업적을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훌륭한 글로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찾으시는 회원님들과

함께 보고자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 영문자를 클릭하시면 안병영 교수님

블로그를 바로 접 하실 수 있습니다.

http://hyungang.tistory.com/186

 

 

안병영교수님이 본 유석진박사

 

 

고등학교 3학년 (1958년),

한창 대학입시에 열을 올리던 5월 즈음에

나는 불면증에 걸렸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자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정신은 더 말똥말똥해지고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서 멀리 수돗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잠시 눈을 붙이곤 했다. 온 종일

머리는 빠개지는 것같이 아프고 밥도 잘 못 먹어 몸도 여위어 갔다.

그러다 보니 6월 이후 겨우 중간, 기말시험 때만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 고 3이라 학교에서 출석은

관대하게 봐 주었던 것 같다.

 

시기가 시기인 지라 아버지를 따라

유명한 병원 여러 곳을 찾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단은 언제나 신경쇠약이었고, 어떤 의사는

 ‘고3병’이니 대학에 들어가면 낳는다고 했다. 요행이 당시 연세

대학교가 별도의 입학시험 없이 학교성적만으로 뽑는 특차 선발을

 해서 그해 12월에 연대에 일찍 합격이 결정되었다. 마음은 한결

편해졌는데 불면증은 여전했다. 매일 수면제 없이는 거의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한창나이에 심신을 주체하기

힘드니 도무지 사는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삼선교

근처 동소문 고갯길에 <베드루 신경정신과의원>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면서 자주 보았던 간판인데 그날따라

크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곳에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호인 풍의 중년의 의사선생님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셨다.

내 사연을 들으시고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어린 친구가 정신과 문을 혼자 두드리니

 대단하네“ 하시며 “내게 가장 원하는 게 

무언가? ”하고 물으셨다.

 

 나는 대뜸, “잠 좀 자게 해 주십시오.

정말 이러다 죽을 것 같아요. ”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러자 그분은, “자네 명심하게나. 인류 역사상 불면증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하나도 없네. 잠 좀 덜 자면 어떤가, 아무 걱정 말게.

자네가 들척이며 밤 샌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비몽사몽간에 잘 것 다 자는 걸세,

낮에 몇 번 꾸벅 꾸벅해도 그게 다 잠이야. 잠 못 잤다고 걱정하는 거, 그게 바로 병이야.”

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내 뇌리에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깊이 꼽혔다. 머리가 맑아 오는 느낌과 함께, 불면증은 쉽게 극복될

 있을 것 같은 치유에 대한 자신감이 가슴에서 솟구쳤다. 병원 문을 나올 때 나는

 이미 불면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있었다. 지금도 나는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 의사 선생님의 명구(名句), “인류 역사상

 불면증으로…….”를 주문처럼 그대로 읊는다. 그런데 실제로

 내 주변에 그 효험을 본 사람이 의외로 많다.

 

II.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

 가을이 깊어질 때였다. 진로와 연관해서

이래저래 걱정이 많을 때였다. 그런데 뒷등이 뻐근하더니

 통증이 자주 느껴지기 시작했다. 좀 괜찮은 듯 하다가 잊을 만하면

 통증이 다시 찾아오고, 그 강도도 점차 더 심해졌다. 신경이 쓰여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냥 가라앉을 기미는 아닌데,

막상 병원을 가자니 어느 전공의 어떤 의사를 찾아야

할지도 막연했다. 두 달 넘게 큰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불현 듯 <베드루 신경정신과의원>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일이 풀릴 듯했다.

옛 그 의사선생님은 몇 가지 기본 동작을 시켜 본 후, 내 병력(病歷)을

자세히 물으셨다. 나는 고3 때 찾아뵙고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응시하시더니 조금 가라앉은 어조로, “자네, 인생의

갈림길만 되면 병을 만드는 사람이군, 나는 병에서 심리적 도피처를

찾는 사람은 도와줄 수 없네. 자네 스스로 낳든지, 아니면 평생

힘들 때마다 병을 만들어 짊어지고 살든지, 그건 자네가

결정할 일이네. 나는 더 할 말이 없으니 이제

일어나 보게 나.” 라고 하셨다.

 

그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가

멍해지며 마치 철퇴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에도

병원 문을 나오면서 몸과 마음이 하늘을 나는 듯 가벼워지며

 병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동시에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자의식이 강하게 일렁이면서, 그간 때 없이 나를 괴롭히던

 등허리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III.

 

이처럼 그 의사 선생님은 두 번 다

약 한 봉지 주지 않고 몇 마디 말씀으로 나를

 병고(病苦)에서 구해 내셨다. 나에게는 그 분이 ‘허준’(許浚)

이고, ‘화타’(華陀)였다. 고마운 마음에 나는 그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분은 성함이 유석진 박사님으로 한국 정신의학계의 태두로.

 서울의대 교수를 역임하셨고, 우리나라 최초의 단독 정신과 개원의라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돈암동 쪽으로 가는 길이면, 으레 차창 밖으로 내게 마법의 성과 같은

 <베드루 신경정신과의원>이 건재한가 살펴보았고, 언론 등에 나온

 유 박사님에 관한 기사는 눈을 밝히고 찾아보았다.

 

알아본 바로는 유석진 박사님은

이름난 명의셨을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로

정신질환자 유병률 역학조사를 하는 등 전쟁 직후 척박한

우리 정신의학계를 개척하신 선구자였다. 특히 그는 음악, 영화,

연극 등 예술을 환자치료에 접목하는 데 앞장을 섰는데, 현재 정신과

 질환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는 ‘사이코드라마(심리극) 요법’과

 ‘음악요법’ 도 한국에서는 그의 손을 거쳐 태동하였다.

 

정신과 환자들을 시장이나 음식점, 극장 등으로

 데리고 나가 치료하는 ‘사회현장 치료법’을 처음 시도한 것도

 그였다. 예술 전반에 폭넓은 관심과 재능을 가졌던 유 박사님은

 <삼일로 창고극장>을 사비로 구입해 연극인들에게 내어 놓았고,

 ‘마음의 심층’, ‘코끼리 인간’ 등의 희곡을 스스로

번역해 무대에 올리기도 하셨다.

 

삼선교 근처 <베드루 신경정신과의원>은

1955년 역사적 개원 이래 그가 여든한 살 2001년에

 문을 닫기까지 장장 46년간 한 장소에 그대로 머물렀다. 내가

유 박사님에 관한 기사를 마지막 보았던 것이 2002년 그가

평생 모은 2톤 트럭 12대 분량의 장서 1만 5천 권을 서울대

병원에 기증하는 내용이었다. 과연 그 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유 박사님은 2008년 세상을 뜨셨다.

 

IV.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궁합이랄까,

인연이 있는 듯하다.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도

모든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게 아니고, 의술이 뒤지는 의사도

인연이 닿으면 쉽게 병을 고치는 경우가 있다. 유석진 박사님은

 워낙 천하의 명의이기도 했지만, 몇 마디 말씀으로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나를 두 번이나 고치셨으니 정말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큰 은혜에 아무런 보답도 드리지 못했으나,

늘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

 

그분의 일과 예술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개척정신도 내게 큰 교훈이 됐다. 언젠가 내 제가

 한 사람이 내게 엉뚱하게, “선생님, 의사가 되시려는 생각은

 해 보신 적이 없으세요. 잘 어울리실 듯해서요.”라고 물었다.

그때 내 대답은 “한창때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네. 그런데

 나이 들면서, 만약 내가 의사가 되었다면, 아마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유석진 박사님을 떠올렸다. 

 

 

 

 

 

그리운 금강산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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