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7일까지 서울정동에서 방송을 하던 중앙방송국이 6.25를 겪으면서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에 이르러 3년간을 지냈고 수복후 서울로 돌아왔어도 불타버린 방송시설로 임시 연주소를 설치해서 방송을 했기때문에 공개방송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개방송 등은 외부 시설을 활용하다가 남산에 새로운 방송시설을 갖추면서 남산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기간 중 1954년 CBS 기독교방송이 탄생했고 1956년부터는 HLKZ TV방송이 탄생했습니다. 기독교방송과 TV방송에 관해서는 다른곳에 얘기와 함께 사진이 올라 있으므로 KBS 라디오 HLKA 방송사진을 시기별로 모아 올리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보잘것 없는 시설에 미비한 방송모습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오를의 방송이 있었음을 생각하면서 이나라 방송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진들입니다. 다른곳에 설명이 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락합니다.
1950년대의 방송사진 HLKA, 정동, 남산시절
부산 임시방송시절
해상 이동방송용 선박입니다. 여기에 400W송신기를 싫고 이동하면서 방송을 했습니다.
1952년에 들어온 이동방송차입니다.
국악인들이 부산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동방송시절
1953년 환도 후 프로그램을 일신하고 새로운 성우를 선발했으며 각종 공개방송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54년 방송된 삿갓마을 목련이 피다. 방송 모습입니다. 성우 1기를 모집하던 그해 생빙송으로 백성희, 박상익등 기성 성우나 배우들과 함께 주상현, 박용기등 1기성우들이 함께 출연했습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이혜경 염석주님과 김순원, 이옥희, 이흥자 학생이 출연했고 이흥자학생은 남자 아역, 김순원 학생은 여자 아역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1960년대 성인 성우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흥자 학생은 똘똘이와 복남이 에서 복남이 역의 이인영 학생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이 무렵 이상만님은 효과에서 여러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1954년 추석 특집극 연습광경입니다. 김승호, 김희갑, 주선태, 최은희, 윤일봉, 한은진님등 뒷날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분들이 많이 참여 하셨습니다. 이때 김영수님은 VUNC에 재직 하셨는데 이때 특집극을 연출하셨나 봅니다.
복혜숙, 염석주, 이상만님이 보입니다.
1955년 처음으로 텔레타이트를 설치하고 윤태로, 박상진, 한기욱님등외신기자를 선발해서 외신 전담팀을 운영하면서 외신부라고 불렀습니다.사진은 최초의 외신기자 박상닌님과 한기욱님입니다. 그때의 보도실장은 조한긍님으로 아래는 그 무렵의 업무처리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윤길구방송과장님이 재직하던 시절 편성회의 한 장면입니다.
스튜디오 방송 모습입니다.
장기범 아나아운서 (위 좌)사회로 진행된 노래자랑 모습으로위 오른편은 노래부르는 장면이고 아래는 관중석입니다.
아래는 그 시절의 임택근 아나운서가 진행한 스무고개와 노래자랑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그 시절의 공개방송은 동화백화점(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카토릭 문화회관 등 방송국 밖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정동방송시절 인기를 모았던 김시스터즈 (위)와 현씨스터즈(아래)입니다.
인천 창녕국민학교를 찾아가 누가 누가 잘하나 공개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프로듀서 한용희님과 아나운서 강영숙님 성우 이혜경등이 현지에서 진행한 공개방송 모습입니다.
명동 카토릭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스무고개
김인숙 아나운서가 진행한 어린이 공개방송 무었일까요 장면을 담은 사진입니다.
드라마를 제작 장면
정동연주소 주 조정실
국악인들의 국악연주장면
위사진은 1956년 9월 1일 창단한 KBS교향악단이 1957년 1월 29일과 30일 양일간 시공관에서 제1회 연주회를 가졌을때의 모습이고아래는 1958년 KBS교향악단 단원일동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영어 명칭으로는 KBS Symphony Orchestra라고 했던 KBS교향악단은 임원식이 1970년까지 지휘를맡으면서 제자리를 잡아갔습니다. 1957년 말 KBS가 남산에 새로운 연주소를 마련하면서 연주활동이 원활해졌고 국내공연 외에도 1958년 한미친선음악회 및 동남아 순회공연 등 장기간의 해외 순회공연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 했습니다,
박종화 선생님과 강찬선 아나운서입니다.
스튜디오에 마이크가 하나밖에 놓여있지 않아 여러 출연자들이 마이크 가까이 옹기종기 않아 방송을 했습니다.
위 사진은 그때의 대한공론사 (지금의 프레스 샌터) 건물로 1957년 7월 이 건물의 3층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공개방송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대한공론사 공개홀 개관시에 출연한 김씨스터즈
남산시절
1957년 남산에 현대식 연주소를 지어 남산시대를 열었습니다. 1976년 여의도로 옮길때까지 20년간 이어갔습니다.
1957년 남산 라디오 연주실을 짛고 있는 모습으로 이처럼 짛고 있는 모습의 사진은 다른곳에서 보기 힘든 사진인업나더. 오른쪽은 그 무렵의 연희 송신소 보습이빈다.
남산 드라마 전용 스튜디오에서 드라마를 녹음하는 장면으로 구봉서, 오승룡, 깁희갑, 복혜숙, 이향자님등 영화배우들과 성우들이 함께 출연하고 있고 김영수님이 연출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1958년에 창단한 서울방송 관현악단
1957년 휴대용 녹음기가 처음 들어와 프로듀서나 기자가 녹음기를 직접 들고 나가 현장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현장녹음을 위해 엔지니어가 동반했습니다.
1956년 전속가수단을 창단하고 방송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전속가수단의 녹음장면입니다. 성우들이 드라마 방송을 하는 모습과 흡사하군요.
황우겸 아나운서가 진행한 스타탄생입니다.
위는 어린이 공개방송 무었일까요 진행장면으로 프로듀서 한용희님과 장금자 아나운서 진행모습이고 아래는 KBS어린이 합창단 방송 모습으로 사회는 장금자 아나운서 입니다.
이승만대통령이 참여한 공개방송입니다.
전속으로 되어 있었던 시절의 서울방송 실내악단
1958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월남의 고딘 디엠 대통령의 김포공항 도착실황을 중계방송하고 있습니다.
1958년 2월 KNA기 납북사건이 있었을때 국민 때기대회실황과 판문점에서 납북인사 귀환실황을 중곕방송했습니다.
경부역전 마라톤대회 중계방송 1958년 11월 23일
방우회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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