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단법인 방우회 부회장 재직중이신 박종세 아나운서가 5,16 첫 새벽방송을 내 보낸지 51년을 맞으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간단한 소감을 남기셔서 옮겼습니다. 5.16과 박종세 아나운서의 인연은 많은 분들의 관심사이기에 이 글과 함께 그간에 올렸던 두 편의 글을 연결했고 5.16 그때의 동영상 한편을 골라 올렸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5.16 새벽 첫 방송 그로부터 반세기 / 박종세
전혀 뜻밖에 닥친 5.16새벽이었다. 내 인생을 내 의지대로 살아온 부분이 많지만 1961년 5.16 첫 새벽은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 었다. 방송국 아나운서, 야구중계방송, 대한뉴스, 국방뉴스, 해태 타이거즈 단장, 나의 인생에 스쳐가는 일이 많지만 5.16은 이 나라 역사가 바뀌는 그 순간이었고 어쩌면 내 생명까지도 걸렸던 일이라 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벌써 반세기가 넘는 51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날은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날의 얘기는 2004년 회고록을 통해서 공개되었고 그 회고록을 기초로 한 얘기들이 인터넷 등 여러 매체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그 얘기는 회고록으로 대신한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만약 그때 그 군사혁명이 없었더라면 이 나라는 어찌 되었을까? 만약 실패 했다면 이 나라는 어찌 되었을 것이며 내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만약 당시 박정희 소장이 직접 '혁명공약'을 발표했다면 방송이 제대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인가? 방송이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5.16 첫방송이 나가던 그때 혁명군이 장악한 남산 방송국 7호 스튜디오에서 5시 정각에 내가 '혁명공약'을 발표하던 순간 연희송신소 담당 엔지니어인 정용문씨는 난데없이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방송이 나오자 뭔가 잘못 됐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다시 들어보니 전날부터 같이 숙직을 한 제가 방송하는 걸 확인하고서야 스위치를 내리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여러 가정을 하며 또 나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다.
그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생활도 바뀌어 왔다. 나는 5.16 그 방송을 하고 한 달이 되던 6월 18일 군에 입대해서 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TBC동양방송에서 TV방송을 준비하면서 아나운서 실장직을 맡아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도 내 생애에 가장 애착을 갖고 살아오던 아나운서, 그 중에서도 야구중계방송, 그리고 국립 영화제작소에서 제작되어 전국영화관 등에서 상영된 「대한뉴스」와, 국방부에서 제작한 국방뉴스 해설을 맡아 욌던 일은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점한다. 1958년부터 시작된 대한뉴스 해설은 10년을 이어왔고 1966년에 시작된 「국방뉴스」는 「배달의 기수」와 함께 1996년까지 30년을 이어오면서 늘 국민과 함게 국군과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1980년 방송 통폐합으로 친정인 KBS에 다시 돌아와 방송주간(국장)으로 재직하다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프로야구가 창단되던 1981년 해태로 옮겨 해태 타이거즈를 창단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강력한 프로야구팀으로 키웠다. 야구에 애착이 있었던 나는 또 하나의 다른 야구생활을 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생동안 애환을 같이 한 아나운서생활을 쉽게 정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침 국방뉴스는 계속 할 수 있었기에 마음 굳게 먹고 해태 타이거즈로 옮길 수 있었다.
격동기를 살아온 나에게는 나름대로 여러 일을 하며 뜻있는 삶을 이어왔다고 생각하며 지금은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아내 구숙자와 자랑스러운 두 아들 준수, 증수, 며느리 유선영, 황재선을 비롯한 가족과 선배, 친지 동료, 후배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노래를 잘하지 않던 아내가 어느 땐가 마이크를 잡고 부르던 노래 한곡을 올리면서 글을 마친다.
박종세 아나운서와 부인 구숙자여사님
당신과 함께 한 긴 세월 나에겐 무슨 의미로 남아 있는지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나네요.
당신이 울면 따라서 울고 당신이 웃으면 따라서 웃고 당신 곁에서 가슴 조이며 살아온 수많은 날들
꿈 많던 시절 당신을 만나 내 꿈을 당신께 묻고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 내게 무슨 의미 있나요.
무심한 세월, 흘러간 청춘,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렇게 가슴이 허전한 것은 여자의 일생이 너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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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새벽 첫 방송과 박종세 아나운서 http://blog.daum.net/jc21th/17780461
박종세 아나운서 야구중계방송, 한국야구 반세기 생생한 현장기록 http://blog.daum.net/jc21th/17781157
먼저 음향을 끄셔요.
2012년 첫 방송터를 찾던날 선후배 아나운서들이 함께 했습니다. 앞줄 왼쪽이 박종세 아나운서이고 차례대로 전영우, 황우겸 아나운서, 한영섭 방우회 회장님, 강영숙, 최만린 아나운서. 뒷줄 왼쪽부터 황인우, 박민정, 정경래, 김규홍 아나운서 입니다.
황우겸 아나운서와 박종세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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