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에 안양에서 태어나 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사회부 기자로 출발한 이서구선생님은 조선일보 동경특파원, 연극 최초 토월회 구성원, 방송국 연예담당 직원, 동양극장 지배인, 서울시 공무원, 방송작가, 소설가, 수필가, 회곡작가, 영화대본, 노래작사 등 그 활동영역은 넓고 깊었으며 특히 방송에 큰 발자욱을 남기셨습니다.
이서구(李瑞求), 언론인, 방송인, 방송작가, 소설가
구한말 박정양대감의 아들 박승희가 연극 활동을 본격화 하기위해 1922년 토월회를 구성할 때 그 구성멤버로 연극 활동을 벌렸습니다. 1930년대 중반부터 방송국 연극담당, 지금으로 말하면 방송 드라마 연예담당 프로듀서를 지냈으며 그러면서 수많은 소설과 시나리오 작품을 썼습니다.「홍도야 울지 마라.」영화를 써 이름을 날린 임선규와 더불어 영화계에서도 활동했고 님이 쓴 노래 「홍도야 우지 마라」「장희빈」 등은 오랜 세월 불려온 불후의 명곡이 되었습니다.
해방되어 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서울시 공보 처장 직을 맡아 행정공무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6.25때도 방송극을 썼고 6.25후 다른 일로 대구에 머무르다가 1957년 서울로 돌아오면서 방송드라마에 전념했습니다. 1957년 방송작가 협회가 출발하면서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또 10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님이 1961년 1월부터 쓴 사극 장희빈, 곧이어 방송된 강하도령은 모든 청취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우리나라 사극 드라마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 이래 장희빈, 강화도령은 라디오, TV, 영화 등에서 수시로 접할 수 있게 되어 훌륭한 방송 소재가 되었습니다. 님이 드라마에 전념하던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각 라디오 TV방송에서는 님의 작품이 방송되었고 영화로도 여러 편 제작되어 상영되었습니다.
60년대를 사신 분들은 조풍연님과 함께 날마다 15분씩 방송되었던 「이 얘기 저 얘기」를 기억하실 줄 압니다. 폭 넓고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방송되었던 두 분의 얘기는 오랜 기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말로 하는 얘기이지만 드라마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1981년 5월 25일 세상을 뜬 선생님이 이 나라 방송발전에 기여한 공이 큽니다.
위는 1961년 조풍연님과 함께 한 이 얘기 저 얘기 방송모습이고 아래는 조풍연, 유치진, 복혜숙님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고범, 고성, 이춘풍 이라고도 불리는 이서구선생님이 1958년 8월호 방송지에 쓴 글을 보면 선생님이 1940년 전후해서 방송국에 편성원으로 연예프로를 담당하셨다고 하셨습니다.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방송국에 근무 하셨을까? 1962년에 발행된 KBS연감 창간호를 보면 경성 중앙방송국 제3대 심우섭 제2방송과장이 부임하면서 편성은 강연담당에 김억, 시사강연에 이정섭, 연극담당에 이서구, 오케스트라 지휘에 홍난파, 어린이 시간담당에 양제현 제씨로 진용을 갖추었다고 했습니다. 심우섭과장님이 취임한 것은 1936년이고 또 1938년 10월 1일자 삼천리지에 ◀방송국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는가,▶라는 글을 썼으며 그에 앞서 ◀방송이 어떻게 하야 여러분의 귀에까지 가는가.▶라는 글을 썼다고 했으므로 1936년 이후 근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방송국을 떠난 것은 항일단파방송 연락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 마지막 발악에 견딜 수 없어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님이 써 놓은 여러 글들은 그 시절의 방송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일제 강점기에 쓴 작품들은 삼천리지나 동광 등 그 시절, 이름 있던 잡지나 신문에 실려 있습니다. 그 주요 작품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밖의 얘기는 그동안 본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올라있는 글을 연결하겠습니다.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요.
내가 겪은 방송사 - 이서구선생님 회고록 http://blog.daum.net/jc21th/17781203
경성방송국 편성원 이서구님이 남긴 1930년대 방송야화 http://blog.daum.net/jc21th/17780660
일제강점기 영화 "홍도야 우지마라" 주제곡 http://blog.daum.net/jc21th/17780668
1961년의 라디오 연속사극 장희빈과 그 주제곡
장희빈, 1961년 라디오 드라마와 2003년 TV 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1211
일제 강점기 작품과 실려있는 매체
희 곡
- 동백꽃,신민,1931.6 - 청빈,야담,1938.11 - 만월,성군,1944.3 - 곡산 영감,성군,1944.3
소 설
- 누흔,동아,1923.12.3 - 회한,매일신보,1927.10 - 눈물에 젓는 사람들,매일신보,1927.11.14 - 사랑의 지옥,매일신보,1928.5 - 박연행,매일신보,1928.8.19 - 룸펜대장 출세담,중앙,1934.11 - 거인구락부,중앙,1935.1 - 유선형부부도,중앙,1935.7 - 구쓰와 영애와 여급,삼천리,1935.12 - 결혼태평기,중앙,1936.1 - 공포광 시대,중앙,1936.2 - 행복의 운하,중앙,1936.2 - 마음의 달,삼천리,1936.12
소설집
- 참패자,경성서관,1924
수 필
- 빈촌야화,문예시대,1926.11 - 병든 청춘,문예시대,1927.1 - 신문기자를 내놓으면 무엇을 할까,별건곤,1927.7 - 홍수중의 보도기자의 고심,별건곤,1927.7 - 스틱(동지로써 동지들에게),별건곤,1928.7 - 다섯가지 승락을 받고야,별건곤,1928.7 - 괴상한 남학생과 좋은 동요,별건곤,1929.1 - 국립 국민제조장을 설치,별건곤,1932.1 - 경성의 째즈,별건곤,1929.10 - 대경성 암흑가 종군기,별건곤,1932.1 - 여배우의 정조와 사랑 ,삼천리,1932.2 - 가면신사와 가면숙녀,동광,1932.11 - 찌그러진 남비,별건곤,1934.1 - 이십팔만풍,별건곤,1934.1 - 우리집의 봄빛,중앙,1934.4 - 종로야화,개벽,1934.11 - 아낙의 비밀,개벽,1934.12 - 차디찬 심경,삼천리,1936.2 - 백의춘희애가,삼천리,1936.4 - 애인데리고 갈 사랑의 하이킹코스,삼천리,1936.6 - 대경성 식구경,중앙,1936.6 - 미희와 백골,삼천리,1936.8 - 무모생활,조광,1940.9 - 기자시절,신태양,1958.5 - 염문.기행.만화,신태양,1958.6 - 나의 기자시절,신태양,1958.8 - 사상기생이야기,신태양,1958.9
시
- 산나물 가자,별건곤,1933.3 - 아버지,학등,1934.1 - 가을 거둬,삼천리,1941.9 - 푸른 하늘,삼천리,1941.9
평 론
- 조선극단의 금석,혜성,1931.12 - 조선의 유행가,삼천리,1932.10
상 훈
- 금성화랑훈장,1951
이서구님을 비롯해서 1960년대 이전부터 활동하던 작가분들입니다. 1, 박영만, 2.이보라, 3. 박정자? 5. 김의경?, 6. 이진섭, 7. 장수철, 8. 이서구, 11. 한석연, 12. 임희재, 13. 박화목, 15. 이호원, 16. 주태익, 17. 정순일, 18. 이경재, 20. 최요안님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
'방송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운영, KBS 음악계장을 지낸 불멸의 음악가, 교향곡 1번 한국전쟁 (0) | 2012.07.03 |
---|---|
방송인 이홍수님, 1960년대 KBS TV방송국장, 서울 중앙방송국장 (0) | 2012.06.20 |
대공 심리전에 힘을 쏟았던 방송인 전옥배 (全玉培)님 (0) | 2012.04.12 |
민재호 아나운서, 그리고 미망인 민귀영(나귀영) 여사 6.25 회고록 (0) | 2012.04.04 |
아나운서 전성시대 방송의 얼굴 아나운서 실장 최승주, 강익수 (0) | 2012.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