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열일곱 살의 소녀같이 살았던 가수 신 카나리아! (본명 신경녀), 제일 오랜세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신 카나리아! 1912년에 태어나 1928년 17살의 나이로 데뷔곡 뻐꾹새를 부르며 시작된 노래인생은 너무도 잘 얄려진 왕수복, 이난영 보다도 더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2002년 추석특집 가요무대를 끝으로 은퇴 할때 까지 70 여년에 걸친 실로 길고 긴 세월 노래를 부르시면서 수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신 카나리아, 만년 소녀가수, 노래 나는 열일곱 살 이예요
지금 듣고 계시는 「나는 열일곱 살 이예요.」 이 노래는 그 시절 남인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을 쓴 최고의 작사가 이부풍이 노래 밀을 쓰고 황성옛터의 곡을 만든 전수린이 곡을 붙혀 신 카나리아가 부른 이래 우리나라에서 살아온 청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행복하게 해 주었고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노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예명을 썼다는 신 카나리아는 일생을 예명 그대로 카나리아 같은 삶을 이어 가셨습니다.
1931년 7월 5일자 동아일보 칼럼 논단 여우(女優) 언파레이드 신 카나리아 양 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17세의 귀여운 존재 신 카나리아 양은 뒤ㅅ 동산 골짜기에서 졸졸 흐르는 냇물소리의 「리듬」처럼 청아한 목소리를 가졋다.” 로 시작된 긴 글이 올라 있습니다. 사진은 그때 그 글과 함께 동아일보에 올라있는 그 사진입니다.
1931년 민족지 동아일보가 극찬 할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왕수복, 이난영, 선우일선이 노래를 불러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1933년부터이니 그 보다도 더 먼저 신 카나리아는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연극무대에서도 활동했던 신 카나리아는 해방되어 김해송이 이끄는 KPK악단에서 활동하다가 남편 이익(김화랑)과 함께 스스로 새별(샛별) 악극단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공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예기를 동아일보 1981년 8월 1일자 컬럼 논단 나의 교유록 원로 여우가 엮는 회고 144편, 원로 여우(女優)가 엮는 신 카나리아 편에 샛별 악극단이라는 제목으로 올라 있습니다. 1931년 동아일보에서 신 카나리아 에 관한 칼럼이 게재된 이래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게재된 또 하나의 동아일보 칼럼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해방공간의 연예활동에 관해서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6.25를 만나 북한군에게 잡혀가던 신 카나리아님이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일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6.25전쟁 중에는 위문공연 등에 힘을 기울였던 신 카나리아는 6.25후 오랜 세월 가수활동을 했습니다. 70이 넘어 문을 연 다방은 문화인들의 만남의 장소였고 쉼터였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던 님의 목소리는 늘 정겹고 다정다감해서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 했고 지칠 줄 모르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열 일곱 살이에요>, <노들강변>, <그 님은 떠나고>, <강남달> <선창의 블루스>, <삼천리 강산, 에헤라 좋구나>, <동백꽃>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나는 열일곱 살 이예요
이부풍 작사 전수린 작곡 신카나리아 노래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아르켜 드릴까요 열일곱 살이에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 별빛도 수집은 버드나무 아래로 가만히 오세요
나는 얼굴이 붉어졌어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예요 살금 살금이 오세요 요리 저리로 언제나 정다운 버드나무 아래로 살며시 오세요.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아르켜 드릴까요. 열일곱 살 이예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조리로 별빛도 수집은 버드나무 아래로 가만히 오세요
신카나리아님 (신경녀) 약력
출생 1912년 10월 26일 사망 2006년 11월 24일 함경남도 원산 원산 루씨 고녀 중퇴
데뷔1928년 뻐국새 1932 신무대악극단 단원 1932 조선예술단 단원 1947년 새별 악극단 운영
원로 연예인 상록회 최고위원 한국가수협회 부회장 한국무대예술원 중앙위원
수 상
1998년 문화포장 1997년 제4회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 문체부장관표창
신 카나리아가 부른 강남달 보기 -> 클릭 http://blog.daum.net/jc21th/17780465
왼쪽 위 사진 1957년 고복수님 은퇴 공연장에서 남인수 신카나리아, 황금심, 고복수님이고
왼쪽 아래는 1964년 연말특집 남녀 노래자랑에서 여자팀으로 왼쩍부터신 카나리아, 최숙자, 박재란, 이금희님입니다. 오른쪽 위의 사진은 60년 대 초에 활동한 가수 권혜경, 왕숙랑, 오정심, 백난아, 금사향, 장세정, 한명숙, 신 카나리아, 황금심님이 함께 했습니다. 오른쪽 아래는 50년대 극장 포스터로 가요계 황제-남인수, 가요계 여왕- 신카나리아모던가수- 고운봉, 오리엔트 전속- 김용태,
가요계의호프- 김백희 등의 광고문구가 보입니다.
신 카나리아 남편 김화랑이 경영하던 새별 악극단과 반도 악극단의 합동공연을 알리는 1948년 8월 5일 경향신문 광고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어머니 안심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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