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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의 나 가거든 (The Lost Empire) OST (명성황후 주제곡)
KBS 2TV 수목드라마 명성황후는 2002년에 열리는 한일 월드 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특별기획 되어 2001년 5월 9일부터 2002 7월 18일까지 오후 9시 50분부터 10시 50분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입니다. 명성황후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민비, 대원군 등 여러 이름으로 라디오, 텔레비전방송, 영화 등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지만 이때의 방송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고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제작비와 힘을 쏟아 부었으며 그 반응도 대단했습니다.
KBS 드라마 명성황후(2001) 녹화현장사진과 OST (조수미 나 가거든)
식민지 사관을 탈피하고 우리 역사의 바로 보기와 역사를 통한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한다는 기치아래 명성황후와 대원군을 재조명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명성황후를 민비 등으로 격하하면서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를 펴며 비아냥하던 식민지 사관(史觀)을 탈피해서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활동을 재조명하고 당당했던 국모 명성황후의 활동과 최후를 그려가는 작품이었습니다.
고종이 태어난 1852년부터 왕위를 물려준 1907년까지 있었던 조선왕조의 얘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책임프로듀서 윤흥식, 프로듀서 윤용훈, 극본 정하연, 연출 윤창범 신창석, 주요 출연진으로는 어린 시절 명성황후 문근영에 이어 이미연, 최명길로 이어졌습니다. 원래 100회로 계획되어 이미연이 종방까지 출연 할 계획이었지만 폭발하는 인기로 124회까지 연장되면서 최명길이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대원군은 유동근이 처음부터 열연했고 고종은 어린 시절 이준과 고종으로 등극한후의 이진우, 조대비 김용림, 이밖에 정선경, 죄상훈, 송재호,, 이덕희, 허준호, 김정하, 유혜영, 이영후 등이 출연했습니다. 여기서는 KBS가 제공한 그때의 녹화장면을 촬영한 사진과 그때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동영상, 조수미의 나 가거든 (The Lost Empire) OST (명성황후 주제곡) 를 노익중님 제공으로 올렸습니다.
명성황후 방송 기획의도
2002년은 한일월드 컵을 공동으로 개최한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민족 사관에 기초한 우리 역사의 바로 보기와 역사를 통한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NHK TV의 대하 역사극을 통하여 그들의 역사를 가꾸고, 재조명하고 일본성공의 뿌리를 역사를 통해서 확인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식민지 사관에 오염된 역사극들이 우리의 역사를 부끄러운 과거로 만드는 오류를 범했다. 월드컵 개최에 앞서 우리의 역사를 당당하게 내세워 국민적 자긍심을 일깨워줄 필요가 절실하다고 본다. '명성황후'는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민비'로 격하되고 비하되어 있는 '명성황후'에 대한 호칭은 식민지 사관의 산물이다.
'명성황후'에 대한 수많은 부정적 인식들은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조선을 강점한 사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역사적 날조와 변조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권력에 집착한 여인. 친족의 이익을 위해 국가적 이익을 희생한 여인. 투기와 변덕으로 얼룩진 여인. 이 모든 것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이 내세우는 명분들이다. 쇠락해가는 조선왕조, 침략의 발톱을 숨기지 않는 구미 열강과 일제의 야욕 앞에서 마침내 조선의 독립을 얻어낸 '철의 여인 명성황후'. 그녀의 위대함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국모를 시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시 일본 총리대신인 이또오 히로부미의 탄식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 시대에 우리는 명성황후와 더불어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을 만난다. 대원군이다. 척신들과 세도 정치인들에 의해 퇴락한 왕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강력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개혁의 선봉에 선 대원군. 그리고 다시 그 왕실을 지키기 위해 수구로 변신하는 대원군. 그의 몰락의 과정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했다.
①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드라마다.
숙명적인 두 인물의 만남과 갈등 파국을 중심으로 사소한 역사적 사건은 과감히 배제한다. 사건이나 인물 나열식의 역사극은 그 나름대로 교과서적 의미가 있으나 KBS - 2TV의 특성을 고려할 때 주인공 중심의 강력한 스토리 전개가 필요하다.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성격을 부각시킴으로써 스토리의 큰 줄기를 세운다.
② 정사와 야사의 적절한 혼합
정사의 기본적 틀을 따라가되 야사를 적절히 접합시켜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한다.
③ 역사적 이슈에 대한 활용
뮤지컬 [명성황후]가 젊은 층에까지 호응을 얻는데 성공한 것은 일제의 강점기를 패망의 역사가 아니라 승리의 역사로 바꾼데 있다. 명성황후의 생애를 개인적 탐욕으로 몰아세운 것은 일제의 식민지 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명성황후의 화려한 외교술, 긍정적 의미에서의 권모술수, 시대를 꿰뚫어보는 현실 인식 등을 세밀히 그려나간다.
④ 사건과 인물의 입체적 구성
편년체 식의 스토리 전개를 배제하고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갈등과 대립을 효과적으로 추적하기 위한 입체적 구성을 시도한다.
⑤ 멜로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한다.
자칫 딱딱하고 난해해지기 쉬운 역사극의 결함을 신식 서양 문물인 일부일처제를 접한 명성황후가 고종을 둘러싼 여인들에 대해 느끼는 질투와 사건들을 적절히 배합한다.
[시장경제신문 연재-
인보길의 역사 올레길]에올라있는 글을 방우회 정항구 이사님께서 메일로 보내주셔 옮겼습니다.
일본의 국가범죄! 민비는 日정부가 살해했다!
이노우에 공사가 작전완료→이토 정부가 의결→미우라 공사 현장지휘
<을미사변 117주년, 그리고 독도> 추석도 닷새 지난 10월8일(음력 8월20일) 새벽6시 경복궁, 둥근 보름달도 이지러져 기울어가는 시간. 일본인 군-관-민 120여명이다. 마포 공덕리(孔德里) 별장에서 대원군을 데려오느라 H아워는 2시간이나 늦었다. 헐레벌떡 나타난 우범선(禹範善) 등 대원군 동원팀은 대원군 가마를 근정전 뒤 강령전에 내렸다.
동시에 경회루를 지나 북쪽 건청궁으로 치닫는 패들은 민비(閔妃) 살해팀이다. 어둠속에서 감쪽같이 해치우려던 <여우 사냥>작전! 하늘은 벌써 훤하게 밝았다. 작전은 어디까지나 <대원군의 쿠데타>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궁안 경비는 이미 일본군과 일본이 만든 조선 훈련대(2대장 우범선)가 진을 친지 오래다. 민비의 오랜 충신 홍계훈(洪啓勳)만이 광화문에서 저항하다가 칼 맞아 즉사했다. 건청궁 왕의 침전에 난입한 악당들은 고종과 세자 척(拓, 순종)을 감금하고 동시에 왕비 침실 곤령합(坤寧閤)으로 들이닥쳤다.
새벽 잠자리를 덮친 살인마들은 혼비백산
도망치는 여인들을 닥치는 대로 찔렀다.
민비의 얼굴 몽타지를 들고 왔지만 밤새 술 취한 놈들은 무차별 난동에 돌입 했다. 그 얼굴 스케치는 평생 사진 찍기를 거부한 민비의 얼굴 생김새를 확보하고자 일본이 민비에 접근시켜 환심을 샀던 일본녀 고무라(小村室)가 평소에 그려둔 것이었다. “마마...” 그때 달려온 궁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이 엉겁결에 두 팔을 벌려 민비 앞을 가로막았다. “탕탕...” 총소리와 함께 이경직의 두 팔은 칼에 잘려 나가고 순진한 충신은 즉사했다. 왕비를 찾는 살인마들에게 왕비를 가르쳐준 꼴이 되고 말았다.
쫓기는 왕비는 세 번 세자를 불렀다고 한다.
뜰 아래 쓰러진 왕비의 몸을 마구 짓밟는 살인마들!
일본도의 칼질이 몇 차례나 이어졌다.
놈들은 왕비와 용모가 비슷한 궁녀들까지 찾아내 살해할 정도로 치밀하고 잔인했다. "민비가 확실한지 검사해보자"며 알몸을 만들고 '국부검사'까지
했다고 한다. 모욕의 극대화!
“내가 유린해주마” 한 놈이 왕비를 덮쳤다. 천인공노할 만행! 시신을 능욕한 것이다. 실제로 시간(屍 姦)을 자행했는지에 시비가 있지만, 한일 양국 학자들이 전거로 증명하고 있다. 만세를 부른 일본 살인마들은 세자를 데려와 어머니의 얼굴을 재확인시키기까지 했다. 너무나 처참해진 왕비의 시신은 숲속에서 불태워 뼈는 땅에 묻고, 재는 향원지(香遠池)와 우물에 버려졌다.
민비 살해범들 ‘깡패’ 아니다! 日 고관-박사등 지도층! 이토 총리등 정부 직접 결정! ‘대원군 쿠데타’로 위장 명치 천황도 책임! 범행 보고 받자 “할일을 할때 했군” 대한제국의 황후 민비! 청일전쟁으로 청국이 쫓겨간 4개월 만에 44세로 침략의 제물이 되었다. 국권과 왕권을 지키려 고군분투한 가냘픈 왕비! 이미 조선천지를 장악한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려 러시아와 손잡으려던 황후는 러시아를 치려는 일본의 총칼에 고종황제 눈앞에서 능욕당하고 난자당했던 것이다.
이른바 '을미사변'!
인류역사상 이보다 더한 국치(國恥)가 어디 있으랴!
15년뒤 망국국치의 시작!
을미사변으로 대한제국은 사실상 끝난 셈이었다. 일본 정부는 “몇몇 장사(壯士)들의 짓”이라고 변명했다. ‘장사’란 우리말 뜻과 달리 일본어로 ‘무뢰한’ 깡패란 말이다. 그렇다면 당시 일본 정부각료와 천황까지 모두 깡패들이란 말이 된다. 맞다!
총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외상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는 물론 그때 일본천황 무쓰히토(陸仁)가 그러하다.
메이지 천황은
한국 왕비 살해 보고를 받자 이렇게 말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할일을 할 때는 하는군!”
일본의 국가 범죄! 현장지휘를 맡은 미우라(三浦梧樓) 공사란 자는 작전 한 달 앞두고 일본정부가 파견한 육군중장 출신 ‘칼잡이’에 불과하다. 역사상 전후후무한 이웃나라 국모(國母)살해 시나리오는 전임공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짜고 이를 이토 수상이 각의에서 결정했다. 이노우에는 이토 수상과 동향- 동창으로 외상, 재무상, 내상까지 지낸 자로 명치유신 원로다. “조선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며 장관 자리를 버리고 일개 공사로 부임해 와서 작전계획을 본국과 합의, 준비를 완료한 뒤 현장범행 책임을 미우라에게 맡겼던 것이다.
서울의 일본신문 ‘한성신보’ 사장과 주필, 기자들, 국회의원과
“대원군 편을 들어 난동한 그들을 처단하지
차관을 지낸 하버드대 박사, 동경대 법대 출신 외교관, ‘근대조선사’등을 저술한 학자, 사족(士族)출신 지식인들이 자원하여 이 작전에 가담, 역할을 분담하였다. 왕비의 시신을 범한 악당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학도들은 제발 이런 연구에 나서 보기 바란다!)미우라 일당은 각본대로 “대원군이 훈련대를 동원한 쿠데타”라고 우겼다. 국제비난에 몰리자 48명을 일단 히로시마 재판소에 구금하여 ‘진상 탄로’를 차단한 후, 이토 총리는 각국에 엄벌을 약속하면서 말했다.
그 9년 후 일본은 인천 앞바다 러시아 함대 기습으로 러-일전쟁을 일으킨다. 러시아에 기대는 민비 살해로 시작된 러-일전쟁, 조선을 누가 먹느냐는 싸움에서 일본이 또 이겼다.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은 즉각 독도(獨島)를 시마네현으로 몰래 편입시킨다.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한 동해 해전에서 울릉도와 독도의 전략적 가치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독도 카드로 재집권한 일본 노다 정권은 센카쿠 문제는 중국에 양보하는 대신 '독도 강탈'은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민비의 목숨과 더불어 한국 식민화의 첫 희생지가 된 독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두고 비난공세 일색인 한국야당들의 몰골은 임진왜란전 당쟁꾼들, 아니, 민비 살해집단에게 왕궁을 열어준 친일대신들과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대하드라마 더 보기
개국 開國 1983년 KBS 대하드라마 장형일, 이은성, 이태원 http://blog.daum.net/jc21th/17781693
대하 역사드라마 KBS무인시대
각시탈,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의 실상을 그린 KBS 수목 드라마 http://blog.daum.net/jc21th/17781423
KBS 드라마 명성황후(2001) 녹화현장사진과 OST (조수미 나 가거든) http://blog.daum.net/jc21th/17781107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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