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향해 자동차로 40분정도 달리다가 보면 왼쪽 야산 기슭에 큰 3층 석탑 2기가 있습니다. 이 석탑이 국보 제112호이고 그 탑이 서 있는 자리는 사적 제 31호 감은사 터(感恩寺址)입니다. 지도를 크게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부근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
감은사는 3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짓기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다음에 들어선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682년(신문왕 2년)에 완공한 절로 지금은 그 터에 탑이 있고 그때 사용되었던 석재가 있지만 원래의 절터 대부분은 마을의 민가나 밭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라 문무왕릉 (수중릉)과 감은사지, 국보 제 112호
1960년 및 1996년 석탑을 해체 보수할 때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 설치하였던 매우 정교하고 귀중한 사리장치(舍利裝置)가 발견되었으며, 보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전시 중입니다.
이 절을 완성한 신문왕은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곳의 국보 쌍 탑은 높이 약 9.5m, 그 위에 높이 약 3.4m의 철제 찰주(刹柱)가 서 있고 기단 1변의 넓이는 6.9m²이며, 상층을 향해 현저히 체감(遞減)되어 가는 신라초기 석탑의 특색을 보입니다. 1959년의 발굴조사로 금당, 강당, 회랑의 위치 등 쌍 탑식 가람의 배치가 밝혀졌으며, 다음해 서쪽 탑 보수 당시 제3층 탑신 내부 석함에서 금동 사리구 (⇒사리용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문무왕 능
감은사지에서 5분정도 더 가면 바다가 있고 그 바다 가에서 약 200m떨어진 바다 가운데 바위로 된 사적 58호로 지정된 신라 30대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 - 재위 661∼681)이 있습니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이루었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은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신문왕은 그 유언에 따라 바다에 능을 조성하고 용이 된 문무왕이 감은사를 오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덤이 있는 바위가 대왕암으로 자연 바위를 이용했고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습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했고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여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고 합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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