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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최초 달 착륙 중계방송으로부터 위성방송 (衛星放送)까지

이장춘 2011. 11. 22. 03:12

 

 

 

우리나라가 돈이 없어 끌어 들였던

아시안게임마져 반환하던 그 시절이었지만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광경을 보지 않으면 안 되던 때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800달러, 수상기 보유대수 30만대 시절이었지만

사람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하는 모습을 본 국민들은

흥분했고 가슴이 탁 트였습니다. 국내 지구국이 건설되기 전이라

중계방송도 힘들었고 TV수상기 보급이 적었지만 그래도 TV 중계

방송은 이루어졌고 이웃집에서, 또는  다방이나 만홧가게 등에

모여 사람이 달에 착륙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텔레비전

최대 공적이라고도 했으며 과학도들에게

꿈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최초 달 착륙 중계방송과 위성방송 (衛星放送)

 

 

 

 

이 방송을 위해 KBS 송한규, 오택섭 아나운서와

 이정하씨가 미국 케이프 케네디에 파견되어 중계방송했고

 스튜디오에서는 홍성표(공군본부 판단과장) 위상규(서울공대 교수) 

 서영희 (사회 아나운서) 조경철(연세대학교 교수) 계원철

 (대한항공 의무실장) 이 해설방송을 했다.

 

 

 

 

위, 1959년 7월 11일 경향신문

아래,   1959년 7월 13일 경향신문

 

 

 

 

1969년 7월 16일 미국 우주인 암스트롱이 탄

아폴로 우주선의 출발로부터  20일 달 착륙에 이르기까지

TV스튜디오에 앉아서 그 과정을 해설해준 분들은  대 스타가

 되었고 그 중에서도 조경철 교수는 아폴로박사로 통하면서

국내 전 방송채널에서 그 목소리가 방송되면서 오랜

기간 그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동서 냉전시대에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닉(Sputnik)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본격적인 우주경쟁시대에 접어들어

 누가 먼저 달에 착륙하느냐가 최대의 화두이던 시절, 우주선 발사에는

 늦었던 미국이 달에 착륙 하는 대는 먼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우주경쟁의

과정에서 통신위성이 발전하고 태평양상이나 인도양 상에 뜬 인텔샛트 통신위성은

 국경을 넘는 TV중계방송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7년 국제 전기통신위성기구

(INTELSAT)에 가입해서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TV 중계방송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이 아폴로 달 착륙실황을 본 것이지만 그때만 해도 지구국이 설치되기

전이라 어려운 과정을 거쳐 달 착륙실황이 중계방송 되었습니다.

 

화면과 음성은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서 중계방송

되었습니다. 화면은 미국 케이프케네디 발사현장에서 미국

 ABC방송에 의해 인공위성 인텔샛트 2호에 쏘아 올렸고 이것을 일본

NHK가 지구국에서 받아 전국에 중계하는 한편 한국을 위해 대마도에서

마이크로웨이브로 보내 주었습니다. 이것을 부산 금련산에서 받아

서울에 보내서 텔레비전방송을 실시했던 것입니다.

 

음성은 VOA협조를 얻었습니다.

텔레비전 스튜디오에는 서울 공대 교수 위상규,

연세대 교수 조경철, 공군본부 홍성규 판단관이 앉아

 발사로부터 달 착륙광경, 귀환까지의 과정을 설명 해 주었습

니다.이때의 일은 KBS와 TBC, VOA가 공동으로 추진했던

것으로 중계방송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1970년 6월 2일부터 금산에 지구국이

생기면서 위성을 통한 중계방송이나 보도 영상물

등이 잘 소통되었고 1984년 LA올림픽중계방송에 이어서

 KBS가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주관 방송기관으로 참여 함으로써

국내의 위성방송 이용이 본격적인

도약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무궁화호 발사광경을 지켜보는 관객들

 

 

1995년 8월 무궁화 (KOREA SAT) 1호를 발사해서

 세계 22번째 위성 보유국이 되었으며, 1996년 1월에 중형

 방송·통신 복합위성 무궁화2호를 발사하면서 1996년 7월 1일 

10시를 기해서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과 홍두표 방송협회

회장을 비롯한 각계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위성 시험방송

기념식을 갖고 기념식을 위성방송으로 내

보내면서 시험방송을 실시했습니다.

 

 

 

 

1999년 9월 2일에는 1, 2호 위성을 합친

크기의 대용량·최첨단 방송 통신위성인 무궁화 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2,000년대 들어 법률적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져 본격적 초고속 위성통신, 방송위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경 없는 정보화시대, 디지털시대, 위성방송시대라고 하는

다 미디어 다 채널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위성 시험방송 스윗칭 모습(위) 위성방송 스튜디오(아래)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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