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세계유산

조선조 제 6대 임금 단종릉, 영월 장릉

이장춘 2011. 10. 20. 01:54

 

 

조선조 제 6대 임금 단종릉, 영월 장릉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다가

귀향길에 오르고 마침내 귀향지에서 사약을 받아 시신을

거둔 자는 3족을 멸한다는 엄명 속에 세상을 뜨고 강물에 버려져

떠내려 가다가 그래도 충신을 만나 시신이 보존되어 잠들었으니

조선조 역대 임금 중 가장 슬픈 사연을 안은 단종이고

단종이 묻힌 능이 장릉입니다.

 

 

 

 

새로 들어선 세조 임금의 명을 받아

마지못해 사약을 내린 금부도사 왕방연은 영월을

 떠나다가 청령포가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러 그 마음을

읊은 시조를 남겼기에 교과서에 올라있는 그 글귀를 외우던

 일이나 그 시절에 상영된 영화 단종애사를 생각하며

또 45년 전에 다녀갔던 그때를 생각하며 장릉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TV가 없던 시절 영화 단종애사가

전 국민의 인기리에 상영되면서 눈물을 자아내던

 1960년대 중반이라 그때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세 험한

곳이었지만 요즈음은 서울에서 세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이고

 능이나 그 주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어린 나무들이 자라  

숲이 우거지고 역사박물관이 새로 마련되었습니다. 진입로가

정여각이 있는 곳에서 바로 올라갔지만 요즈음은 입구에서

비스듬한 길 따라 소나무 숲속을 걸어 올라갑니다.

 

 

 

 

 숲이 우거진 산세가 옛날과는 완연히

달라졌고 단풍들기 시작한 아름다운 산에 가을

 하늘이 맑습니다,  영조9년 (1733)에 건립된 정(丁)자각

  단종대왕의 제행시 제를 올리는 곳이 능 아래로 내려다 보입니다.

집 모양이 정(丁)자형으로 건립된 제전이어서 丁자각 혹은 배위청이라

부릅니다. 45년전 이 정자각에서 촬영한 사진이 있어서 지금과

대비되는 옛날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곳에서 단종릉이

 보이고 여기서 급 비탈길로 능에 올랐습니다.

정자각앞에 앉아있는 필자 모습입니다.

 

 

 

정자각 곁에 있는 아래 비각에는 단종에 관한 기록이 쓰인 비가 있습니다.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087번지 장릉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장릉은 조선 6대 임금인 단종(1441~1457)의 능이다.

단종의 이름은 홍위이며 문종의 아들로 세종23년(1441) 7월

23일에 탄생하여 세종30년(1448)왕세손, 그리고 1450년7월20일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그 후 부왕인 문종이 제위 2년 만에 승하 하자

뒤를 이어 12세의 어린 나이로 1452년 5월 18일 경복궁에서 즉위하였다.

단종 원년인 1453년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일으켜 국권을

장악하고 단종을 위협하자 단종3년(1455) 상왕으로 물러났다.

 

 세조2년(1456) 사육신의 단종복위 운동이

 실패하자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하여 노산군으로

 감봉된 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1457년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단종을 복위하려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에 세조는

1457년 10월 24일에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니 17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 하였다.

단종의 유해가 동강에 흘렀는데 영월 호장 엄흥도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 게 받겠다."는 충정으로 옥채를 수습하여 이곳에 밀장을 하였다.

그 후 숙종7년(1681)에 대군으로 추봉되고 숙종 28년 (1698)에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으로 능을 장릉이라 하였다.

 

사육신은 성삼문(成三問:承旨)·박팽년(朴彭年:刑曹參判)·

하위지(河緯地:禮曹參判)·이개(李塏:直提學)·유성원(柳誠源:司藝),

유응부(兪應孚:中樞院同知事)와 1982년 국사편찬위원회의에서

 현창된 김문기(金文起:工曹判書)를 말합니다.

 

 

 

 

왕뱡연의 시조비로 사약을 내리고

돌아가다가 청룡포가 보이는곳에서 을픈

시조가 새겨져있습니다. 이 비에는 원래의 글자로

쓰여 있지만 요즈음의 글자로 고쳐쓰면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듸 없서 냇가에 안자이다

저 물도 내안가도다 우러 밤길 녜놓다.

 

 

이 글을 다시 쉽게 풀어보면

 

천만리나 되는 멀고 먼 길에서 고운님(단종)과 이별하니

내 슬픈 마음을 어디 기댈 곳 없어 시냇가에 앉아있다.

저 냇물도 내 마음 같은지 울며 밤길을 여기에 흘러가는구나.

 

천만리 되는 멀고 먼 길이라는것은 이승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단종을 호송하고

왔던 왕방연이 돌아가다가 울픈 시조라고 했지만 천만리

멀고 먼 갈의 뜻을 되새기고 사료를 찾아 확인해서 왕방연이

사약을 내리고 돌아가다가 을픈 시조로 고쳤습니다. 왕방연은

지금 남양주의 먹골사람으로 먹골배를 최초로 심어

먹골베의 원조로 불리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문화유산의 현장을 들릴

때 마다 현장탐방을 해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울 종묘, 강화 고인돌, 영월 장릉 (단종릉),

경기도 서오릉, 광주 민주화 운동을 춘하추동방송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아래 영문자 주소를

클릭하셔서 보실 수 있습니다.

 

동구릉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 왕릉 사적 제 193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198

 

선정릉(선릉) 조선왕조 성종, 중종대왕릉 사적 199호 세계문화유산

http://blog.daum.net/jc21th/17781439

 

서오릉,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 사적 제 198호

http://blog.daum.net/jc21th/17781060

 

조선조 제 6대 임금 단종릉, 영월 장릉

http://blog.daum.net/jc21th/17781002

 

세계문화 유산 종묘와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

http://blog.daum.net/jc21th/17780717

 

강화 역사 박물관과 고인돌 공원

http://blog.daum.net/jc21th/17780874

 

광주 민주화 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http://blog.daum.net/jc21th/17781136

 

 

 그때의 영월호장 엄흥도는 3족을 멸한다는 엄명속에서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3.2Km가 되는 이곳에 옮겨

안장했습니다. 엄홍도는 충신으로 받들어지고 판서로 추서되었습

니다. 청렴포에 가면 엄흥도 소나무가 있습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

 

 

무아지경.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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