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회·독립운동

일제강점기 단파사건 옥사자 이근창 李根昌 (이고길)

이장춘 2011. 8. 27. 04:07
 

 
이근창은 항일단파방송으로 옥사한
여섯 사람 중 한사람이다. 그의 사망지는 경성부 
서대문구 현저町 101번지다.
현저町 101번지, 우리 동포들
압박의 상징이던 경성형무소가 있던 자리이고 지금은 서울 형무소
역사박물관이라 불린다. 이곳에서 고통 받으며 죽어간 선열들이 많다.
 사형을 당해서 죽은 사람도 있지만 시달림과 굶주림, 병마 등으로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옥사 시키지 않았다는 말을 면하려
그 안에서 사경이 되어 죽기직전에 내 보냈다가
 생을 다한 분들도 있다.
 
 
일제강점기 단파사건 옥사자 이근창 李根昌 (이고길)
 
 
 1944년 1월 20일 음력으로는
 아직 해가 바뀌기 전 그 춥던 겨울날에
李根昌(李高吉)은 그 형무소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단파 라디오를 만들어 해외방송을 듣고 그것을 전파했다는
 죄목으로 1943년 7월 4일 경성경찰부에 끌러가 고문 끝에 
 9월 2일 재판에서 8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던 중 그해 겨울에 그 안에서 세상을 뜬것이다.  




지금 듣고 계시는 육성은 이종익 옹이
68년 전 14살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들려준 얘기다.
그때 14살의 어린 이종익은 4살 된 이근창의 아들 휘웅이를
업고 1943년 겨울 형수의 남편 이근창이 있던 경성형무소를
찾았다.
시골에서 살았던 형수 이용희는 남편이 끌려가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고심하다가 경성형무소에있다는연락을 받고
서울 길을 아는 어린
시동생 이종익에게 어린 아들
휘웅이를 엎혀경성형무소를
 찾은 것이
그해 그 춥던 겨울이었다. 
 
 



 
남편이 경찰에게 끌려간 후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용수를 쓴 그 모습에 얘기도 나눌
수없이
한숨지으며 뒤로 돌아섰던 그때다. 그리고 며칠 후에
이근창이
형무소에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이근창은
나라를 위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 안에서 세상을 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일을
잘 모른다. 그 가족들도 이근창이 감옥에
가서
죽은 줄은 
알았지만 왜?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잘 모른다.
이렇게 죽은 선열들이 수없이 많다.  

국가 기록원 홈페이지를 열면
상훈을 전달받을 후손을 찾는다는 안내문이
 뜨고 그 목록을 보면 수많은 인명이 나온다. 혹시
이근창의 이름이 있는지를 보았더니 그 이름은 없다.
어찌되었든 후손도 잘 모르고 주변 사람들도 잘 모르게
 죽어간 애국지사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오늘의
주인공 이근창도 그 중에 한분이다.  

방송국에 근무하다가 감옥을 가서
죽었다는 얘기만 듣고 그 일을 잊고 살았던
당시 14살의 이종익 옹이 82세가 되어 춘하추동방송
블로그를 찾으면 그 내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필자를
찾아 오셨다. 그때 4살이었던 휘웅이는 72살이
되었건만
그때의 일은 모른다.필자가알고 있는 일들을
이분들에게
 들려주고 나라에 상훈신청을
하시라고 일러드렸다.

 


 이근창은 어떤 사람인가?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우고리
 76변지가 그 본적지다. 거기서 1916년
9월
 2일에 태어나 조선무선공학 강습회를
졸업하고 1942년
2월 6일 조선방송협회 보수과에
입사했다. 라디오를 갖고
 있던 분들의 안테나를 설치해
주고
고장 난 라디오를 수리하는
일을 하다 보니 라디오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해외에서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도 만들었고 해외방송도

 들었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이기고 있다는 선전을 하지만
중경에는
임시정부가 있고 미국에는 이승만 박사가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만 알고 말 일이 아니어서 이웃이나
친지, 동료들에게 그 예기를 들러주고 들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소문은 퍼지고 퍼져 일본을
어렵게 만
했다. 그러다가 1943년 7월 4일에 경기도 경찰부
사찰계에 채포
되어 일제강점기의 사상범이 되고 견딜 수
없는 고문을 받았다,
 사상범에게 흔히 적용했던 
 조선임시보안령과육. 해군 형법,
그리고
무선전신법
위반죄로  8개월
징역형을 받은 것이다.
 

이근창의 사건번호는 1943년 형사사건 4225호다.
 
그 내용을 보면 항일단파방송에
관련된
김종호의 하숙방인 봉래정 4정목
188번지의 9호에서
 그 와같이 단파방송을 몰래
들었으며 신상운의 사무실인 수신기
검정실에서도
들었고 조종국, 홍근호, 김건이, 김인방, 김종호 및

 홍진석등과 함께 국제정세 등을 얘기했으며
라디오 상담소 직원인
고득제를 비롯해서
김병욱 노중현등 3인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음이 기록되어있다.  


이근창 (이고길) 재판기록 보기
 
클릭-> http://blog.daum.net/jc21th/17781118


항일 애국지사 이근창선생님,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73회 순국 선열의 날
 
http://blog.daum.net/jc21th/17781501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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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익 육성, 이근창-1.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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