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남산시절 TV방송의 초기 단막극
라디오방송 초기 시절부터
드라마는 방송의 꽃이었다. 때로는
드라마가 정서를 해친다느니, 퇴폐풍조를
조장한다느니, 재원이 없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제약을 받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송이라 그 생명력은 강했다.
그렇다해도 방송초기에는 워낙
제작여건이 열악한데다가 재정적 어려움이있었던지라 딘막극 외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설사 연속극을 방송한다 해도 주간 연속극 정도가 고작이었다. 1960말가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금요무대 처럼 장수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대부분 단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60년대 중반은 오락방송의 퇴조기라고 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실화극장과
사극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계속 이어갔다.
유치진 원작 차범석 각본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 로
시작된 금요무대였다. 이 금요 무대는 1972년 KBS무대로
이름이 바뀔 때 까지 10년을 이어 갔다.
금요무대 강여사의 미용실, 좌로부터 김난영, 선우영자, 이자인, 이완균
프로그램 극본은 이용찬, 주태익, 김영수, 하유상 등 이름있는 분들이 썼고
연출은 한운진, 이기하, 정소영이 맡았다. 최길호,
강부자, 박병호, 한은진, 이혜경, 복혜숙등이
주연으로 자주 출연했다.
TV방송극의 순수한 예술성을 지향해서
처음에는 시험무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탄생 했지만
점차 자리를 잡게 되어 장수프로가 되었다. 처음 시도되는
프로그램이었는지라 시행착오가 많아서 제작이 제대로 안될 때에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방송하는 경우도 있었고 방송시간도
45분, 50분, 60분, 30분으로 됐다가 다시 60분으로
바뀌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
탄생한 프로가 매주 일요일에 방송되었던 일요 연속극으로
1964년 1월 일요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기성 연출가 들이 연출을 했지만 TV를 시작 하면서
새로 선발한 PD가 성장하면서 PD도 연출에 참여했다.
특히 이남섭은 1964년 일요극장으로 이름이 바뀐
뒤부터는 이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연출 했다.
붉은산 최성호, 이예춘, 박병호, 박만희, 조기천
TV극장 붉은 산
신금단 (김승호와 태현실
1960년대 중반에 탄생한 실화극장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80년대 초가지 이어갔다.
1964년 11월 기본방송순서 개편 시에 생긴 이 프로그램은
주간 드라마로서 70년대 까지 최 장수프로그램으로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은 프로그램이다. 첫 프로그램은 신금단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이 작품의 작가는 김동현이었고 연출은 김상봉이었다. 김승호,태현실등이 출연했다.
실화극장 연락부
위에 얘기한 프로그램 외에 62년 6월부터 방송된명작의 문이 있었다. 10회 방송을 끝으로 사라진 프로그램이었다. 세계 명작 중에서 텔레비전의 극화가 가능한
작품을 각색해서 방송 했지만 성과가좋지 않아서 폐지되었다.
신인 작가의 등용에도 신경을 썼던 이 프로그램은
신윤생기획으로 연출은 황운진, 신윤생이 했다.
아래 장면은 김석야작 밤에 찾아온 손님의 한 장면입니다.
1962년에는 4.19 2주년을 계기로 4.19특집 드라마그 날이 오면을 연속극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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