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물

KBS-TV 반공드라마 실화극장과 작가 김동현님

이장춘 2011. 2. 12. 16:03

 

 
 
 KBS-TV 반공드라마 실화극장과 작가 김동현님  
 
 
이 글은 고 김동현님이 직접 쓰신 글입니다.
김동현님은 중앙 정보부 계장 때 부터 과장 때 까지
실화극장을 쓰시다가 과로로 병을 얻었지만 몇년 후 다시
글을 쓰셔서 1985년 말 실화극장이 막을 내릴때 까지 쓰셨고
 1982년 방송의 날에 훈장을 받으셨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5년이 넘는 기간 우니나라에서 제일 바쁜신 분 중의
한 분으로 통했습니다 .  
 

 

1961년 조봉순 중앙방송국장으로 부터 신춘문예당선 기념패를 받는 김동현님 

 

 

1961년 2월 28일 나는 KBS라디오
신춘문예에 일일연속극 ‘서울로 가는 길’로
당선되어 드디어 대망의 방송작가로 입문하게
되었으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전혀 반응이 없는

방송국에다 사교성이 전무한 나, 이대로 언제까지 갈

것인가?그러던 참에 63년 9월에 KBS-TV 단막극 모집에

있어 응모를 했는데 여기서도 당선이 되어 이남섭 연출로

 방영까지 됐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무반응이었다.

 

 

 

 

  
두 작품 모두가 반공을 주제로 한
내용이기 때문이었을까?  반공은 나의 천직이

 아닌가.  51년 9월부터 62년까지 나는 미공군 6006

백령도 파견대장을 하며, 62년 5월엔 중앙정보부 대북

첩보국원으로 일해오지 않았는가? 마침내 64년 7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KBS-TV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연인 즉은 ‘증인’

이라는 프로가 생겼는데여기엔 자수간첩을 출연시켜 북의 참상을

폭로하는데 대담자로 나와 달라는 게 아닌가.  다음 순간 정보

부원은 신분을 노출시키면 파면 당하는 규정이 생각났으나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출연자를 내가 선정

하여 일요일 18시 30분에 방송을 했다.

 

 

 

김동현과 (미 공군 6006 백령도 파견대장) 도널드 니클스
 
 
 

 

 

월요일 출근한 나는 사표를 써 상사에게

  제출하고 있을 때 돌연 정보부장 앞으로 출두 하라는 

전화가 왔다. “잘했어. 반응이 너무 좋아. 그 대신 방송시간을

 골든타임으로 옮겨.” 그로부터 방송시간의 조정으로 들어갔으나

 의외로 난항,  나중엔공보부장관까지 개입하게 되자 다급한

 KBS국장은 “그토록 방송 계몽이 절실하다면 정보부에서

직접 반공드라마를 내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리하여 내 윗선에서 협의가 이루어 졌는데
제작비는 정보부에서 대고 타이틀을 “희망부대”로 하나,
 반공물이  나가면 시청률이  감소되니  반공물을  격주제로
하기로 한다. 그래서 방송이 나가게 된 것이 64년 11월 3일.
나는 재빨리 바로 한달 전에 있었던 동경 올림픽의
 신금단 사건을 다루기로 했다.
 
 

 



그리고 영화배우 거성 김승호를 찾아가
출연을 교섭했고, 딸은 태현실로 결정하여
‘아바이 잘 가요’가 나가게 된 것이다.
 
녹화 당일 나는 ‘희망무대’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내 임의대로 타이틀 ‘실화극장’으로 대치 시켰다.
자 첫 방송이 나가자 과연 반응이 어떠했겠는가. 영화배우
두 거성이 출연하여 신금단 사건을 재현했으니 무슨 말이  필요

하겠는가. 압승 석권이었다. 그러자 ‘희망무대’의 시시비비도 무산됐고

격주로 하자던 홈 드라마도 날라가 버렸다.  봇물이 터진 것 같은 실화극장은

노도의 불길처럼 치솟아 ‘돌무지’, ‘8240KLO’, ‘사화산’, ‘제3의 지대’,

‘스타베리김’, ‘방콕의 하리마오’등등이 나갔는데 69년 12월

나는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실화극장에서 하차했고 정보부도
사직을 해야 했다. 야인 김동현에게 찾아온 시련은
 검찰청의 소환이었다. 그것도 실화극장이 용공성이라는

것이다. 59년 7월 평양방송은 ‘청천강까지 올라와 어선 7,8척을

 나포해간 김동현 영원히 저주받으리라’고 했고, ‘판문점에서

 실화극장을 쓰고 있는 정보부 앞잡이 오래 살고 싶으면

문패 떼고 살아. 손님이 찾아 갈테니…’

 

 
결국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며
나는 반공과는 관련 없는 MBC-TV에서
일일연속극 ‘아버지’, ‘개구리 남편’을 쓰며 비교적
평탄한 길을 가고 있었는데 또다시 정보부로 불려가

시청률이 땅에 떨어진 실화극장을 살리라는 엄명을 받게

된다. 74년 8.15의 육 여사 저격사건이 터지고 8월 22일에

 저격범 문세광을 다룬 ‘조총련’이 나가게 됐는데 이것이

 역시 공전의 히트를 쳐 나중엔 김종필 총리가 녹화장

까지 와 격려해 주신 기억이 난다.

 

 

 

 

 
 
82년 9월 3일!  방송의 날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게 된다. 이에 보답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
 ‘지금 평양에선’이다.  83년 11월 30일부터 85년 5월 15일까지
 실로 2년 반 동안 방송이 됐는데 단일 프로그램으로선 장수 프로였을

것이다. 이로써 실화극장의 막은 내려졌는데 실로 20여 년 간 한사람의

작품이 이어진 것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실화극장을 연출해

 주신 여섯 분의 연출자와 출연자들께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여기서 내가 작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작품을 사랑하는 집념과 끈기다. 나는 나의 모든

작품의 연습장과 녹화장에 한 번도 빠짐없이 꼭 참석해

있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작품의 시기성이다.

굳이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며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가를 꿰뚫어 봐야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북녘 땅에 두고 온 어머님! 그들로부터 저주받을

놈이란 소리를 듣던아들을 두셨으니 어찌 방관만

 했겠는가! 이씻을 수 없는 불효자식의 죄!

  이제 하늘나라에 가 엎드려 속죄할

 뿐이니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위는 필자와 알고 지내던 김동현님이

대공방송 프로듀서 김운채님과 함께 춘천에 들려

춘천방송국 최학수님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고 아래는

실화극장 돌무지 제작때 작가 김동현, 연출 이납섭,

김승호님과 출연진이 함께 한 사진이빈다.


 


관련글 보기 영문자 클릭


KBS, 최장수 주간 반공 TV드라마 실화극장

http://blog.daum.net/jc21th/17780716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