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방송

경성방송국 편성원 이서구님이 남긴 1930년대 방송야화

이장춘 2010. 12. 21. 03:25

 

 

 

경성방송국 편성원 이서구님이 남긴 1930년대 방송야화 

 

1930년대 JODK 경성방송국 편성원

이서구(李瑞求)님이  1938년 10월 1일자 

삼천리 제 10권 제 10호에 放送夜話, 어떻게 하야

여러분의 귀에까지 가는가. 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그때의 방송에 관한 실감나는 얘기여서 좋은 자료가 될 줄 압니다.

이서구님은 드라마작가로 널리 얼려지신분이고 1970년대

오랜기간 조풍연님과 대담방송 "이얘기 저얘기"로

청취자들과 친근해진 분입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곡은

이서구선생님이 쓰신 가사에 

 김준영님이 곡을 붙혀 가수 김영춘이

부르는 홍도야 울지마라 입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오늘은 라듸오의 프로크람이

 청취하시는 여러분의 댁으로 전파를 타고

찾어가기까지의 순서를 가장 간략하게 말슴하랴고 합니다.

 라듸오가 어떤 것이며 방송국에서는 어떠한 일을 하는 가는  지난 번

사회 견학 제 1회에 임의 잘 알고 게실 줄노 압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라듸오 프로크람을 편성하는 저의들의 지내는 이약이나 흥미있게

말슴하랴고 합니다. 원체 허락된 시간이 단 10분간이라 잔소리를

석글 새도 없어서 곧 이약이로 드러스겠읍니다. 저이들은

 라듸오 프로크람을 편성하는데 세 가지로

그 부문을 난홈니다.


첫재가 보도


둘재가 교양


셋재가 위안
입니다.

 

보도란 아시는 바와 같이

방송국에서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사명을

 띄인 것으로 그날 그날의 뉴-쓰. 기상 통보. 경제 시항. 각종

실황 방송이 곧 그것입니다. 신문지가 격일 혹은 사흘에 한 번식 도착하는

벽지에 게신 이에게 이 뉴-쓰 방송이 얼마나 반갑고 긴한가는 상상 이상일 줄

 압니다. 뿐 아니라 갓가온 시골에 게신 분께라도 오후에 보내드리는 4시와

7시 반 뉴-쓰는 그날 석간보다 일씀니다. 경제 시항같은 상인에게 분과

초를 닷호으는 보도라든지 항해하는 이와 또는 어업자들에게 

그날의 행동을 작정하는 기상 통보라든지 모도가 다- 이

「보도」라는 종목 속에 드러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교양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강연이 대개 하*에 3번식<192> 드러감니다.

위생 강연, 취인 강연, 가정 강연, 수양 강화, 과학해설

등이 다- 그것입니다. 그 외에 외국말 배호는 시간과 요새는

국어 시간이 드러있어 아즉도 국어를 모르시는

 분께 배호실 기회를 드리고 있읍니다. 


셋재는 위안. 이 위안은 방송국에서

취급하는 종목중에 가장 광범위의 내용과 많은

출연자를 요구하는 관게상 제일 손이 많이 도라가고

 제일, 꾀, 까다로운 일일 줄 압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강연은

 강연하시는 이 그 자신이 늘 새 제목을 걸고 하게되고 보도는

 매일 ニユ-ス는 통신에 의하야 기상 통보는 각 측후소에서

보내는 발표에 쪼차서 하게 되지만 위안 시간에

방송하는 것은 그렇지 않읍니다.

 

라듸오 소설 야담, 라듸오 뜨라마

가요곡, 만요 신작 이약이 등은 번번히 새 재료를

 구해서 거기에 적당한 예술가를 선정해서 몇 번 연습을 거친 후에

 비로소 마이크 앞에 나스게 되는 것입니다. 서도 소리 경기 소리 가사 음율

창극조 같은 종목은 물론 늘 하든 소리를 되푸리 한다고 하시는 분도 게시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가사 즉 노래말과 곡조 즉 그 장단이 꼭 마저 떠러지는

적당한 신 가사를 새로 구하기 전 까지는 하는 수 없이 옛날부터

전해오든 소리를 되푸리 하겠는데 조만간 이 숙제를

해결하고자 목하 연구 중에 있읍니다.


이같이 보도, 교양 위안의 세 가지 종유의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위선 매삭 두 번식의 편성 위원회가

 열닙니다. 대개 초하로 보름으로 열님니다. 그래서 一ケ月을 상하 반기에

 난호와 매회 15일 서식의 프로크람을 회장 이하 십여명 위원이 협외해서

신중히 작성하게 됩니다. 이 편성 회의에서 작정된 프로크람은

 즉시로 인쇄해서 제일작으로 각 신문사로 보냄니다.


왜 그러느냐하하면 아모리 좋은 방송을

하드라도 드르시는 이들이 모르고 게시면 소용없는

 방송이 되고 맘니다. 그러므로 방송국에서는 프로가 작정되면

 의선 손가는 일이 신문사에 기별해서 신문에 발표하는 것입니다.

매일 밤 라듸오로도 당일 프로 발표와 명일 순서의 예보가

있읍니다만은 귀로 듯고 마실 뿐이라

신문만콤 그림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요사히는 특히

각 신문사의 찬동을 받아 라디오 프로크람 중에

 중요한 부분만은 다시 경개 설명과 출연자의 사진까지

 게재케된 것은 가장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이올시다.
라듸오가 전파를 타고 나가기까지에<193> 것처가는 곳이

세 군데가 있읍니다. 몬저가 편성이요 다음이

현업이요 셋재가 기술입니다.


몬저 편성게에서 그날 그날의 방송할

순서를 맨드러 거기에 필요한 재료도 제공하고

예술가도 선정해 놋습니다. 그러면 그네들을 작정된

시간에 청해다가 방송을 하게 하는 일은

현업에서 하는 것입니다.

 

 업현에서는 「아나운스」라는 방송국의

「입」노릇을 하는 중대 책임자가 있읍니다. 교양있고

인격있는 신사 숙녀로서 그 우에 목소리가 곱고 맛가라워야

만점이라는 이 까다로운 조건이 따르는 아나운사. 그들이 프로크람을

 진행하는 틈틈이 들닐는 목소리는 기게와 기게 사히에 도는

기름 같애야 하고 한 끝과 한 끝을 이워가는

매듭 같에야 합니다.

 

그러나 아모리 편성에서 프로를 짜 넘기고

현업에서 그 푸로를 충실히 발표하랴 해도 기술부에서

 스있치를 넣어주지 않으면 또는 이 마크의 조절, 출연자의 음성과

마이크의 관게를 삺여주지 않으면 이 방송은 도저히 여러분의 댁까지

 들녀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방송은 편성에서 현업으로 현업에서

기술부로 것처서야 비로소 여러분께 들녀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도 실내 즉 정동에 있는

방송국 스타듸오로 출연자를 청해서 발표하는

 프로크람이 올시다만은 우리는 이것 뿐으로는 결코

라듸오지의 사명을 다했다고 밋지를 않읍니다.

여기에 비로소 옥외 방송이라는 것을

 자조 하겟됩니다.


최근에도 사회 견학을 하기 위하야

중앙 전화 교환국에 갓었고 오늘 아츰에는

지원병 입소식의 실항을 방송키 위하야 동소문안

제국대학 식장까지 마이크를 가지고 갔읍니다. 이같이

마이크를 들고 거리로 나스게 되면- 드르시는 이에게는 실내

방송이나 아모 차이가 없으시나 그 마이크 뒤에 종사하는

 관게자들의 고심은 여간이 안인 줄노 압니다. 

 

 

이서구님이 방송활동을 하던 시절 함께 방송에 힘을 기우리신

조풍연, 유치진, 복혜숙님이 함께 한 사진입니다.

 


중게 방방은 어듸서 하든지 정동

스다듸오까지는 전선으로 연락을 해야 합니다.

이 전선의 설비가 잘 되야 있는 곳이면 편하기도 하나

그렇지 않으면 그 소고가 대단합니다. 가량 말하자면

지난 4월 금음께 한강 강까에서 달구경을

 한 일이 있읍니다.

 

그때 방송하든 고심담을 말슴하면

 대강 미루어 짐작하실 줄 압니다. 한강 남쪽 언덕은

매오 놉고 캉파랍니다. 노량진 어구에서 거기까지 전선을

3천여 척이나 풀숩과 나무가지 틈으로 느러놓고 겨오 마이크를

<194> 강가까지 꺼러나렸읍니다.   이 전선을 시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로 몬저 줄을 매야 하는데 전*에 한 번 이 전선을

밤중에 끊어간 자가 있다해서 국원이 밤을

새워서 줄을 직혀야 합니다.


줄을 매고 줄 직히기에 남모를

고심을 한 기술부의 수고의 뒤를 받아 이번에는

 현업부의 활동입니다. 이 날은 바람이 몹시 불고 났부터

나리든 비는 겨우 멈첬으나 하늘에는 먹장같은 구름이 끼어서

 달빛이 보힐지도 의문이었읍니다. 캄캄한 밤중에 언덕길을 나려스는

 데도 여간 힘이 들지 않었읍니다. 더욱이 일행 중에는 여배우와

여자 유행가수도 있어서 치워서 달달 떨고 언덕길이 낫부터

나린 비에 저저서 밋그러운 지라 뒤축높은

구두를 신고 쩔쩔맵니다.

 

간신히 강가에 모도혀 그럭저럭 테스트를 맛치고

 방송은 시작했읍니다. 류행가수와 아고데온 악사와 대검 부는

악사는 왼편 언덕 밑에 느러스고 력사 이약이와 시 을풀 냥반과

 질문을 할 여배우는 발은 편 바위 밑에 느러서서 피차에 회중 전등으로

 신호를 해 가며 방송은 시작되였읍니다. 강가에서 배소리가 들녔습니다.만은

그 배사공도 특히 두 명을 뽑아서 국원 한 사람이 쫏아다니며 적당한 시간 적당한

위치에서 배노래를 식힌 것입니다. 방송은 시작되였으나 달은 뜨지 않읍니다.

이날 밤 제목이 달빛과 꽃빛과 한강을 즐기는 날인데 정작 주되는 달이

 안뜨니 어쩜니까. 일행 15,6명은 거의 울고 싶었읍니다.   이렇게

애를 쓰고도 달만 안 뜨면 오늘 방송은 두말없이 실패입니다.

그렇다고 안뜬 달을 떳다고도 할 수 없지 않읍니가.

아나운사는 넉없이 늘말 안치어다.  보고

장탄식이날 지경이었읍니다.


기술부에서 기게를 차고 앉은 언덕에서

전등이 번적 하드니 그 빛이 하늘을 가릇킴니다.

그와 똑같은 시간에 아나운사의 감격하이 넘친 소리

구름 사히로 어였분 자태가 낫하났읍니다.


드르시는 분들은 보통으로 드르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마듸 아나운스를 하랴고 15,6명 현디에서

있는 사람과 수십명의 방송국 당무 관게자들의 심중은 실노

 눈물겨운 점이 있었읍니다. 프로크람이 여러분께 들녀가기까지의

 라듸오 상식 이악이는 이것으로 끗을 박겠읍니다.

<195> <192-195>



유경환 (유카리나) 여사님 글



5년도 넘은 기사에 댓글을 쓰려니,
방송역사의 야사를 읽은 독후감을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홍도야 우지마라'의

가사를 이서구 선생님께서 쓰신 것을 또 공부 했습니다.

6월 28일 오후 6시 도봉구청 화요 음악회 드림페스티발

에서 제가 홍도의 모진 시어머니로 깜짝 출연을 하게

되어국장님 블로그에서 검색을 하니, 무려 10개

가까이 검색에 나오는데 놀랐습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