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단상

1990년 방송민주화운동 그때 그 얘기 (4)

이장춘 2010. 12. 10. 01:25
 

 

 

1990년 방송민주화운동 그때 그 얘기 (4)
 
 
1990년 4월 12일! 새로운 사장님의
취임식이 있던 그날 KBS의 간부사원을
포함한 모든 사원들은 무자비한 군화발이
휩쓸고 간 자리를 보면서 분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연행된 숫자가 400명이라고도  하고
  200명이라고도 하는 등 말이 달랐지만 어쨌든
 본관 2층 로비나 복도에 나타난 사원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모두 연행되어 갔습니다.
 
뒤에 경찰에서 117명이라고
확인 해 주었지만 처음 연행된 숫자는 그보다
많았던 것이 틀림없어서 사원들이 보기에는 200명이
넘게 끌려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많은 KBS사원들을
 작전 하듯이 끌어 간 것은 KBS인뿐만 아니라
전 방송인을 분노케 했습니다.
 
방송민주화에 찬물을 퍼 부으려는
 밑바닥  실체를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는 KBS사원 모두가 나서서 방송민주화를 지켜야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불러 넣었습니다. 이날 오후 4시부터는
누가 하랄 것도 없이 모두가 시위장으로 뛰쳐 나와
 목이 터져라 방송 민주화를 외쳤습니다.
 
지방에서도 왔고 민방에서도 왔습니다,
뜻있는 단체에서 많은 격려가 있었고 방송민주화를
결코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는 성명이 이어 졌습니다. PD 수뇌
사건과 법정수당문제를 기화로 이것을 교묘하게 왜곡 과장하면서  
KBS가 부도덕하고 일 적게 하면서  돈만 많이 받으려는  이기적인
집단임을 국민들의 마음속에 심어가면서 방송민주화를 후퇴시키려는 
 목적달성을 위해 집요한 공작을 펼치는 세력이 있었고  그 내막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처음에 그런 줄로 알았지만 일들이
진행되어 가면서  차츰 그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원들은 방송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감수한다는 결연한 의지가 불 타
올랐습니다.  노동조합원이거나 아니거나 일반사원이나
간부 사원이나를 막론하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밤을 새우면서 방송 민주화를 외쳤습니다.
 
이 때에도 6층과 KBS주변에는 경찰이
있었지만 이런 것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방송기능을 유지 시켜야 되는 송출요원과 국익에
직결되는국제방송, 사회교육방송 요원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리를 지키도록 했습니다. 이들도 나오려고 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려 자리를 지켰습니다.
 
방송인이 방송 현업을 떠난 자리에
국가적인 차원의 국제방송과 사회교육 방송
그리고 송출기능을 제외한 다른 방송기능은
제대로 이어 질 수가 없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은 1TV와 2TV를
 유지 했지만 재방송만 하는 것도 힘이 벅찼
습니다. 라디오는 1방송과 2방송 동시방송을 실시하고
 1FM과  2FM 동시 방송이 이루어지면서 방송내용도
음악중심으로 송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일이 오게된  배경과 진실, 국민에 대한
송구스러움 등을   알리려는 노력도 곁들였습니다.
노동조합의 전직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국민들에게 직접 알려 나가기로 했습니다.
 
부장 급 사원들도 이런 일에 같이 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방송민주화 운동의 표면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실. 국장님들도 방송민주화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은
하나였지만 당장  방송을 유지해야 된다는 명제 앞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12일 오후부터  사원들의
방송민주화 함성이 울려 퍼지던 본관 2층
중앙로비가  13일 초저녁에는 비어 있었습니다.
모든 사원들이 9시 뉴스 시간에 맞추어 KBS에서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보도본부 9시 뉴스 스튜디오 앞으로
시위장을 옮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뜻을 9시뉴스에 반영해 주겠다는
사전 약속에 따라  현장으로 시위장을 옮겼지만
 여러가지 사연으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MBC, CBS등  방송사에서는 KBS에 관한 내용이
집중적으로 방송되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KBS만은 그런내용의 방송이 없었습니다.
 
사원들은 이날 밤 KBS를 통해서
그것을 알리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날 밤 13분 동안 진행된 9시 뉴스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이날 뉴스는 21분간에 걸쳐
 13개의  아이템을 방송 할 예정이었지만 13분 만에 끝나면서
 7개 아이템만 방송 된 채 끝 맨트도 없이 40초의
공백이 있은후 다른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었습니다.
 
KBS-TV의 저녁 9시 뉴스가 이토록
비정상적으로 방송된 것은 9시 뉴스가 편성된이래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습니다. 이날까지 오랫동안
 9시 뉴스를 맡았던 앵커는 다음날부터는 
다른 앵커로 바뀌었습니다.
 
14일 서기원 사장님이 주제한  처음
확대 간부 회의가 열렸습니다.  실.국장님들이
참여한 이 확대 간부 회의에서 서기원 사장님은 부장들까지  
돌아서 버렸으니 여러분들의  태도를 명확히 하라는 것이었지만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처지는 어려웠습니다.  그 역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대표를 선임해서 위.
아래로 넘나들며  얘기를 해 보았지만
실효성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고 어떤 형태로던지 의사 표시를 해야
했기에  실국장님들은 4월 16일 전체회합을 갖고
 밤늦게까지  얘기를 한 끝에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사원들의 민주화 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사장은 공권력 투입 등으로 인한 제반 문제에 대해
相應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상응이라는
 말이 오래 동안 여러 가지  뜻으로  얘기 되었습니다. 그 때 설명된 내용들로 
 보면 KBS 실.국장들도 사원들과 동참하는  것이라고 보도 되었습니다.
최병열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설명 될 때에는중립을 지키는 것으로
얘기 되었고 이사회에  보고 될 때에는 중재를 맏는
뜻이라고 얘기 되었습니다.
 
  4월 17일 서기원 사장님 취임 후
 처음 갖는    이사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이사회나 이사 간담회를 바로 열어야 된다는
얘기도있었지만 자칫하면 잘 못 될 수도 있어서
조금 늦추어 화요일인 17일에 열었습니다.
 
사내에서 열 분위기가 아니어서
밖에서 열렸지만그 좁은 음식점에 많은
기자들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서기원 사장님과 감사님에게 연락해서
 참석하시도록 했습니다.
 
방송민주화를 저해하려는 큰 파도 앞에서
이사회인들  힘 쓸 상황은 아니었기에   이사간담회나
이사회가 열린다고  일의 실마리가 풀릴  상황은 아니었지만 
노력은 해야 했습니다. 이날도 서기원사장님이 참석한 가운데
 여러 가지 얘기는 있었지만 결론을 낼 수도 없었고
 결론 날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사회가 방송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이사회 안에 방송정상화 소위원회를
구성해서 대처하기로 하고 네 분의 위원을 선임
했습니다.  이날 새로 선임된 네 분의 위원 중 세분의 이사를
모시고  중앙로비의 시위모습을 창 너머로 참관 했습니다.
 현장에 들어 가 보려는 생각도 했지만 또 다른 오해가
빚어질 우려도 있어서 현장에는 가질 않고 여기서
해어져 저는 사무실로 돌아 왔습니다.
 
이 때가 저녁 8시였는데  중앙로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이사 한분이 그곳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위원회 멤버는 아니셨지만
  또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제 사무실은 신관 8층에 있었습니다.
거리도 있었지만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한운사
이사님께서 얘기를 한참 진행하고 계셨는데 특별한 말씀은
아니고 그 동안 이시회에서 있었던 경과를 얘기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원들로서는 새로운 사실로 받아드릴 만한 얘기도 있었고
기자들도 기사거리를 쓸만한 얘기도 있어서 거기 참여 하신 사원들이나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 되는 가운데  박수를 받으면서 얘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KBS안에 외부의
많은 기자들이 와 있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방송계에 몸담아 오신 분이라
심정적으로 방송인들과 뜻을 같이 한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12분의 이사님들 어느분인들 말씀은 모두 방송민주화는 지켜져야 하고 
 정부의 태도는 옳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투표를 하거나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 결과가달리 나오니
어찌된 일인지?  알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날 여기에 나오신 이사님도 그런 심정을
얘기하시기 위해서 말씀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특별히 못하실 말씀을 하시는 것도 아닌데 말릴 이유도  없어서
말씀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렸다가 모시고 왔습니다. 이 때 10여명의
 사원들이 접근해서 잠시 사무실로 들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있어서 본관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사님은
 저에게 내가 못할 얘기를 했느냐? 나를 고발하라 !
지금 나를 납치하는 것이냐? 라고
고함을 치셨습니다.
 
러는 동안 5층에 자리 잡은
 기획제작실에 도착했고 여기에는 20여명의
사원들이 eng와 스틸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사진을
찍었는가 하면 외부기자들도 따라와 취재 했습니다.
그 일이 다음날부터 여러 날에 걸쳐 신문에서
여러 가지로 보도 되었습니다.

 

17일에 구성된 KBS이사회 방송정상화
소위원회는 18일 아침 9시에 KBS청사로 출근해서
 제 3회의실에서 활동을 시작 했습니다. 먼저 비상대책
위원회에 속해 있던 사원들을 만났습니다.
 
고범중, 최창훈, 김학수, 한동화님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원들은 이 자리에서 이사회가
사원들과 서기원 사장님을 강제 결혼 시킨 것이므로
혼 할 수 있도록 조치 해 달라고 했습니다.  2시간정도의
 얘기를 나누고 회의장을 이사장실로 옮겨 서기원 사장님과
 이정석 본부장님, 김우철 시청자 본부장님등과 차례로
면담이 진행 되었습니다.  서기원 사장님은 KBS가
 정상화 되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사회는 또  최병열 장관과
강원용 방송위원장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분 사이에는 뚜렷한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최병열 장관이 통치권 얘기까지 곁들이면서
서기원 사장  사퇴가 절대 불가함을 강조 한 반면
강원용 위원장은 서기원 사장님이 사퇴하는 쪽이 옳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는 없었겠지요? 그 이유는 이 글을

읽으시는 회원님들이 더 잘 아실 줄 압니다. 19일에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국회문공위원회가 열리는

날 입니다. 다음회에서 쓰겠습니다.

 
 
 

 

춘하추동방송 이장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