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자유대한의 소리 대북방송 (후편)
대공방송에서 오랫동안 방송되던 프로그램은 논설, 시사해설, 두고온 형제에게,
자유의 종, 자유의 메아리, 자유의 등대, 자유통신,
만경대는 알고 있다, 부엉새, 남과 북의 대화, 사실은 이렇다, 인민군의 시간, 난의일기, 사할린 동포에게. 북한노동자에게.
공산당간부에게, 진상은 이렇다, 남북의 휴게실, 민주주의 해설,
공산주의 해부, 조국은 새롭다. 인민군 비행사에게, 목격자,
연속방송극, 희망무대, 희망의 속삭임, 북간도
동포에게 등이 있었습니다.
논 설 밤 12시 시보와 함께 대한민국 방송의 모든 체널에서동시에 방송되던
이 프로그램은 방필주님의 글에 강찬선님의
낭독으로 방송 되었고 방필주님의 글이 아니면
논설이 논설같지 않았고강찬선님의 낭독이 아니면
역시 논설이 논설 같지 않았다고 할만큼논설은
두 분의 합작 프로 그로그램 이었습니다.
라면글씨라고 불리워진 글은 강찬선님만이낭독할 수 있는 독특한
글씨체로서 1972년 10월 유신 계엄령이
선포되었을때 원고 겸열관이 이 글을 읽을
수가 없어 투정 대다가 녹음으로 검열 하던
일화를 당시 담당PD 김기찬님이 기록
으로 남긴 적이 있습니다.
시사 해설
그날 그날의 세상 돌아가는일을
알기쉽게 해설 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김창순, 홍태식, 엄기형, 양흥모, 홍용기님등, 공산권을 비롯한 국내외 정세에 밝으신 분들이 1주일에 요일별로 돌아가면서 1회씩을 맡아 주셨습니다. 자 유 의 종 1962년초부터 대공방송이 막을 내릴 때까지하루도 쉬지 않고
방송되던 “자유의 종” 오대산 상원사의
우람한 종소리가 멀리멀리 울려 퍼지면서
여기에 실린 맨트“자유를 갈망하는 북한
동포여러분! 그리고 살길을 찾는
대남공작원 여러분! ............ 다이알을
알맞게 맞추시고 이 자유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송경원, 고은정, 박민아님 등 아름다운 목소리가이 씨그널에
장식되었고 당시 박기석 원호처장
의 육성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대공방송은 시그널을 중요시 했습니다. 두고 온 형제에게 “눈 감으면 아련히 떠 오르는 북녘땅! 그리운 얼굴들..... 그대들은 지금도 예나 다름없이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
형제들이여! 벗들이여! 그대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될 그날은 언제 이려나? “
스와니강, 고향의 봄등이 B.G로
깔리는 씨그널이 끝나면서 북한에서
오신 분들의 5분 편지가 낭독 되는
이프로그램은 씨그날이 좋아서 국내
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들었다는
분 들이 많았습니다.
자유의 메아리 갈메기 울음소리에 실려 울려 퍼지는 시그널 맨트“압록강 두만강 까지 멀리 멀리
울려 퍼지는 자유의 메아리......” 대중가요와
함께 공산권의 모든 실상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현숙,이광자님이 오랫동안 진행했습니다. 자유의 등대
이필은 북한의 해군대위가
배를 타고 월남 귀순하고 최송식 가족이
한꺼번에 넘어 오면서 북한의 해군과 어민들을
대상으로 편성된 프로그램으로 날마다 15분씩
방송되었습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음향은
그때의자유의 등대 씨그널이고 맨트는 그 시절의 최고의 성우였던 이혜경님입니다. 구민, 이혜경, 신원균, 오정한
연속방송극
드라마를 통해서 공산주의
사회상의 모순과 죄악상을 파 해치면서
본연의 인간상과사회상을 부각시켜 자유사회에
대한 동경심을불러 일으키던 프로그램으로
날마다 방송되었습니다.
새 출발 하기 위해서저물어 가던 1972년! 남북대화와 맛물려 한 해 동안 무려 6번이나 프로그램이 바뀌었습니다. 체널 호칭도 대북방송
에서 제 3 방송으로 바뀌고 (72.2.14) 또 사회교육방송
으로 바뀌었습니다. 방필주님께 원고초안을, 강찬선님께
낭독을 의뢰해서 방송한 1972년 11월 10일 오후 두시! 그
날의 사회교육방송 첫 방송을 시작하면서 내 보낸
대공방송의 종료 맨트로 대공방송이라는 말이
사라졌음을 의미 히는 것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제가 보관해 오던 그때
그 장면입니다.
강찬선님의 대공방송 종료맨트 방송장면
“북한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친숙한 방송이었던 대한민국 중앙방송국
제 3 방송은 11일 0시를 기하여 중지 됩니다.“.......
여러분들 에게 향하는 전파가 비록 멈춰졌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조국의수도 서울의 맥박을 항상 느끼면서 유구한 우리 민족 역사의 흐름 속에 살아가리라고 생각 합니다.
.....어러분들은 서울로 부터의 따뜻한 위로와 힘찬격려를 직접 듣지 못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민족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유로운 조국의 휘황한 내일을 위해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나아가리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북한동포 여러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면서.... 청취자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프로그램 제작에 열중하는 엔지니어 이석대님
대공방송이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회교육방송이 새로 들어 왔지만 북한의 대남방송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도 없었습니다. 대공방송이나, 대북방송
이라는 이름이 사라진그 뒤에도 남북대화가 수시로 중단되면서
북한의 대남방송이 더 강화되고 통일혁명당 목소리니 뭐니 하면서
위장방송을 해 대는 상황 속에서 여기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송이
실시되었고 방송망은 확장되었습니다. 대공방송, 대북방송이라는
방송체널이 다시 살아나지는 않았어도사회교육방송, 한민족
방송이라는 채널 명칭으로 북한동포들을 비롯해서
그때의 공산권동포들을 위한 방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속 방송극 <대지의 맥박> 녹음장면, 마이크앞 김수일,
안영주, 바로뒤 오해영님, 김영상님입니다.
다큐멘타리 사실은 이렇다. 녹음장면 왼쪽부터 강애덕, 오해영, 최을선, 김영상, 김민규님
성우 김영상은 대공방송의 여러 프로그램의 낭독자로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희망의 속삭임의 성우 김순자님 공사가 되던날 대공방송 요원들
앞줄 왼쪽부터 이내수, 이순자, 김용석,
전옥배(과장), 곽영자, 손종만, 송현식, 뒷줄
왼쪽부터 이병웅, 장영오, 이공진, 강정수,
대공방송이 사라지던 때의 대공방송 요원
대공과장 전옥배
계장 : 장영오, 지용수
P D 강정수, 김근호, 이순자, 채선경, 최영춘, 김용석, 손종만, 곽영자, 김기찬,
송현식, 이내수, 장민구, 이춘자, 이병웅,
김기흥, 박휘서, 임대길, 이장춘
위 사진은 1972년 사내 체육대회를
마치고 찍은 사진입니다. 위 앞줄 오른쪽 부터
김기흥, 장민구, 송현식, 지용수, 장영오, 김기찬,
채선경, 이내수. 이공진, 곽영자, 강정수, 손종만,
이창훈, 전옥배, 윤진영, 우길명, 임대길,
맨 뒷줄 네사람, 오른쪽부터 김용석,
이장춘, 방필주, 최광일님
기술은 중앙방송국에서 일괄해서
담당하던 때라 엔지니어는 따로 구분하기가
어려워 다른 난에서 올리겠습니다,
KBS, 자유대한의 소리 대북방송 (후편) (tistory.com) 대북방송 1950년대 60년대 그 방송 그 목소리 http://blog.daum.net/jc21th/17783177 아래 사진은 1966년 8월 9일
대공방송 요원들이 최전방 애기봉을
방문해서 북한의 대남방송 상황등 제반사항을
시찰하기위해 군 해병대의 안내를 받아 현장설명을
듣고 촬엉한 사진입니다. 이용상 국제방송국장님을
비롯해서 엄복영, 이동린, 배덕환, 이용억, 이순자,
곽영자, 남상훈, 조용중님등이 함게 하셨고
이 사진은 그때 함께 하셨던 이용억님의
제공으로 올렸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
강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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