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희 송신소시절 방송기술인들
연희송신소는 1932년 8월 6일에 공사를 시작해서 1933년 4월 26일부터 10Kw로 방송이 송출되었습니다. 그때의 이름은 연희방송소로 해방후 연희송신소로 바뀌어 1971년 3월 31일 소래 송신소에서 500Kw로 제1방송을 내 보낼 때까지 40년 가까운 세월 방송을 송출했습니다. 방송제작은 연주소에서 하지만 송신소에서 전파가 송출되어야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한덕봉, 이남용님등 당시 최고의 무선기술인 반열에 계셨던 분들이 연희방송소 시설을 주도하셨고 1937년 4월 17일부터 방송된 50Kw 송신시설은 일본에서 무선교육을 받고 돌아온 천재기술자 황태영님이 주도하셨습니다. 1940년 연희송신소에는 황태영님을 비롯해서 이종훈, 김성재, 정일모님이 계셨습니다.
황태영님은 20대의 젊은 기술자로 뛰어난 실력을 지녀 일본인도 누리기 어려웠던 연희방송소 사택이 주어졌고 또 우리 기술인으로는 최초로 이리방송국 기술과장 보직을 가졌습니다. 이무렵 한덕봉님도 함흥 기술과장으로 가셨습니다.
1943년 항일 단파방송 해내외 연락운동으로 방송국을 그만 두실 때까지 한덕봉 선생님과 더불어 이 나라 방송기술의 최선봉에 계시던 분이었습니다.
해방 될때까지 연희방송소장은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인 마지막 방송소장은 나가도모 쇼이지(長友正一)였고 해방되면서 이인관님이 소장자리를 물려 받았습니다. 이인관님은 1948년 정부 수립될 무렵 제신부로 가시고 김도현님이 오셨습니다. 김도현님은 불행히도 6.25때 납북되어 그 뒤 소식이 두절되었습니다.
이인관선생님이나 김도현님이 소장을 하시던 시절에는 김규환. 김봉근, 한기선, 양중석, 정일모, 이사동님등이 계셨고 그뒤, 성기석, 정규섭, 권오진, 권혁래, 김영진, 윤헌영, 이중집, 이덕빈님등 이름있던 방송기술자들이 연희송신소 소장이나 간부를 거쳐 가셨습니다.
위는 1947년 연희방송소 직원들과 가족들이 함께 한 사진이고 아래는1948년 월 연희방송소에 근무했던 분들의 모인 연우회 회원들이 연희 방송소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입니다.
1950년 6.25 공산군의 남침으로
남산 연주소는 6월 28일 세벽 공산군에게
점령되고 방송인들은 피난길에 올라 방송이 불가능
하게된 상태에서 송신소에서는 새벽방송이 시작되어
아침 7시 45분까지 음악방송이 송출된 일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이때의 방송진행자는 이성실기사로
이 기사는 방송을 더 이상 진행 할수없게되었을때
그날 마포나루를 거쳐 피난길에 올랐고 그 뒤 1.4후퇴때
다시 부산에 내려가 비상송신기를 제작하다가 감전사고로
순직, 대한민국 순직방송인 제 1 호가 되셨습니다.
6.25로 정동 방송시설은 폭파되고
연희송신소의 기능도 파괴되어 9.28수복 후에는
이곳에 방송을 할 수있는 간이시설을 갖추고 비상 스튜디오를
만들어 10월3일부터 11월 25일, 정동연주소에서 방송을
할 수있게 되기까지 임시방송 연주소 겸
송신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1.4후퇴로 다시
수도가 함락되면서 부산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이해 6월 KBS선발대가 서울에 왔지만 처음에는 유선
가두방송만 실시하다가 임시 방송시설을 갖추어 방송을
실시 했습니다. 전쟁기간중 부산 피난시절에는 대구나 대전에
10Kw송신소를 세워서 활용했고 연희송신소가 정상적인
방송을 송출 한것은 1953년 7월 28일 10Kw
송신기 준공 이후부터입니다.
1955년에는 출력이 100Kw로 늘어났고 인원도 늘어 났습니다. 사진은 이인관, 이규일, 성기석, 김익모, 김시욱님입니다. 1958년에 이곳에 계셨던분은 소장 : 성기석
계장 : 윤헌영
엔지니어
강기경, 조봉수, 최순용, 김응즉,
진윤영, 최상룡, 김오기, 장도형, 한영신,
이춘명, 서병호, 안희전, 김영택, 지명수,
김명득님등입니다.
세월이 가면서 전파장애가 심해져
방송상태가 불량하게 된 연희송신소의 제1방송
송출의 기능은 1966년 남양의 대 출력 500Kw로 이전되고
100Kw송신기는 대구로 이전되었으며 10Kw로 제2방송만을
하게 되면서 인원도 많이 줄어든 가운데 1971년 3월 말
소래 송신소에서 500Kw출력으로 제1방송을
내 보낼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종일방송 개시 10,000시간 망송 송출을 기념하는 사진입니다. 1960년 8월 15일 사진으로 두번째 줄에 오재경 전 공보실장, 이운용 중앙방송국장, 이규일방송관리국장, 이인관 기감, 성기석 연희송신소장, 이종훈 기술과장, 송영호 방송과장, 한기선 시설과장, 유병은, 방능상등 방송간부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 1 방송의 기능이 남양 송신소로
이양되기 전 1964년말 현재의 연희 송신소
방송기술인을 보면
소 장 : 이 종 훈
엔지니어 : 강기경, 권혁래, 김익모,
장도형, 서병호, 신붕균, 안희전, 장석재, 이윤하,
이종호, 김원기, 김영일, 권재중, 박의래, 최진성, 천영환,
이정형, 남상훈, 박상수, 정운화, 이성권님이 계셨습니다.
성기석님의 뒤를 이어 이곳에 오신 이종훈님은 오랜기간
이곳에 계셨고 소래송신소가 신설된 뒤에는 이종훈님을
비롯해서 연희송신소에 계시던 대부분의 기술인이
소래 송신소로 가셨습니다. 1971년 3월에 개소된
소래송신소 초기의 방송기술인들을 봅니다.
소장 : 이종훈
계장 : 윤헌영, 권영원
이윤하, 이정형, 천영환, 김준형,
지찬수, 서은석, 이석민, 이진우, 이전,
박창걸, 배우진, 이상복, 이동명, 전유중,
최용철, 배석진, 한희, 이순봉,
박승길, 박봉선, 전의호
1933년 4월 우리나라에서 우리말
전담방송이 시작된 이래 오랫동안 방송 송출의
중심역할을 해오던 연희 송신소가 다한 후 이곳에 방송 쎈타를
건설하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주변에 주택지가 들어서고
또 보안상의 문제가 있어 새로운 방송쎈터 후보지를 물색 하던 중
당시 여의도 개발과 맞물려 여의도를 적지로 선정하게 됐고
여의도 부지를 연희송신소 부지와 교환해서 결국
여의도 방송쎈타가 탄생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송신소 얘기도 기회되는대로
올려드리겠습니다. 회원님들의 수정보완에 관한
기탄없는 의견과 자료제공에 고마운 말씀 드리며
앞으로 계속적인 성원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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