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

KBS 남산시절 방송기술인들 (전편)

이장춘 2010. 4. 19. 02:07

 

 

 

KBS 남산시절 방송기술인들 (전편)

 

방송기술은 방송에 있어서 뿌리에

해당합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나 풀이

자라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훌륭한 열매를 맺습니다.

땅속에 묻혀 세상에 잘 나타나지 않았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일해서 훌륭한 방송을 꽃피웠습니다. 

이 땅에 방송이 태동될 때 제일먼저 참여한

분들은 무선기술자였습니다.

 

 

 

 

노창성, 한덕봉님이 그렇고 비록

일본인이기는 했어도 시노하라님이 그렇습니다.

방송초창기에는 방송기술자들이 실재로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기술자들이 방송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오늘날 방송이 자동화 되고 현대화되기

전까지 산간벽지, 험한 산꼭대기 시설까지 방송기술자의

 머리와 손발, 온몸으로 어루만지며 지켜왔습니다.

 

 

 

 

인공위성시대, 디지털시대, 정보화시대에

방송기술자의 역할이 옛날과 달라졌어도 방송을

지탱하는 뿌리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KBS남산시절은

방송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기이고  방송기술이

 어느 때보다도 바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시기 방송기술자들은 춘하추동,

밤낮없이, 전국방방곡곡에서 숨 돌릴 사이 없이

 일을 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방송기술정책이나 시설은

 공보부에서 현업은 각 방송국별로 실시하던 시절이었지만  방송

전체로는 하나로 볼 수 있어서 공보부 또는 문화공보부의

방송기술인도 포함시켜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기 방송기술인들은 남산으로

 이전을 위해서 새로운 청사를 지어야 했고,

TV방송국을 새로 만들었으며, 전국의 난청, 난시청을

해소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500Kw소래송신소를 비롯해서

 남양, 김제, 제주, 영일, 김포, 화성 등  본사 직속의 대 출력 송신소를

 마련하고 모든 지역방송국의 출력을 대폭 올렸으며 전국방방곡곡에 라디오

중계소를 세우고 운영했습니다. 남산에 새로운 텔레비전 방송국을 세울 때는

1961년 8월, 계획 수립단계부터 방송국 터를 마련해서 연주소를 짓고 기계를

들여오고 시설을 하고 남산의 송신소를 세워 시설을 1961년 12월 31일

 방송이 나가기까지  불과 5개월도 채 못 되는 기간이었으니

방송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었고 따라서

기술자들의 노고는 말과 글로 어찌 표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기간 중 2Kw로 시작된 남산 송신소는

10Kw, 50Kw로 늘어났고 전국 고지에 TV송신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인공위성은 물론 마이크로웨이브도 갖추어져

있지 않던 시절, 송신시설과 송수신시설간의 링크를 구성하면서

방송망을 확장하기 위해서 방송기술인들은 전국의 높은 산들을,

길도 없던 그 험한 산들을 모두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송수신 적지가 선정되면 그곳에 집을 짓고

기계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지켰습니다.

길도 없는 고지에 건축자재를 나르고 기계를 옮겨다가

시설을 하고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식수원을 마련,

물을 길러 올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해서 설치된

송 중계소에  적막에 싸인 그 속에서 가족과

 떨어져 며칠씩 생활해야 했습니다.

 

 

 

 

먼 거리에 식수원을 찾아  그곳에서

 식수를  날라다  먹다가  파이프라도 묻고

양수기라도 설치해서 물을 공급 해오기라도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지만 겨울이 되어 꽁꽁

얼어 버리면 식수마저 공급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 추운 겨울날 안테나에 오를 일이라도

생기면  앞이 캄캄했습니다. 눈 싸인 겨울의 고지는

 사람이 오르내리기가 어려워 교대 근무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현지기술로는 고칠 수없는 기계 고장이라도 나서 방송이

나 갈 수 없게라도 되면 사람의 간을 태웠습니다.

 

 

 

 

 기계수선을 위해서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에 사람들의 인적이 없던 그 험한

눈길 빙판길의 산을 오르내리며 방송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이 없던 무인중계소에서

고장이라도 나면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즉시 수선해서 방송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했고

그 고생하며 일을 해도 격려대신 책임추궁 당 할 때가

 많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기술자도 아닌 제가 이런 일들

 어떻게 아느냐. 고 얘기 하시는 분이 많지만 저는 KBS가

 공사 될 무렵 기획관리실 차장으로 있을 때 그런

일들을 담당해서 그런 일을 목격했고

얘기를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얘기는

일부분에 불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사례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더 발굴되고

 정리되어 우리방송사에 기록되어 길이

보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시간에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방우회 이사 이장춘 춘하추동방송